토사구팽 위기 성남의료원,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11 09:19:01
  • 호수 13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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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주역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코로나19 주역 병원, 국내 첫 번째 공공병원. 이는 모두 성남시의료원에 해당되는 말이다. 코로나로 정상 운영이 지연됐지만 성남시민들은 첫 공공병원에 힘을 실어줬다. 개원 3년이 지난 지금 성남시의료원의 ‘공공병원’이라는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

옛 성남시청 부지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성남시의료원은 2020년 7월28일 개원했다. 성남시의료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남시청 직속의 시립 종합병원이다. 2000년대 초 성남 인하병원이 폐업한 후 대안책이었던 공공의료원을 2003년 성남시 시민 발의로 설립한 최초의 시민 발의 시립의료원이다.

시청 직속

인하병원 노동조합에서 시작된 문제 해결 노력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성남시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됐다.

‘성남 시립병원 설립 조례안’은 2년9개월에 걸쳐 2회의 주민발의 조례 청구와 1회의 시의원 조례 발의 끝에 2006년 3월16일 통과됐다. 주민발의 조례 제정를 통한 시민운동 공공병원 설립은 한국 사회에서 처음 생긴 일이다.

처음 있었던 일인 만큼 어려움도 컸다. 조례 제정 이후 ▲부지 선정 ▲대학병원 위탁 여부 ▲예산안 시의회 통과 ▲병상 수 ▲병원 성격 ▲건설공사 방식 ▲건설사 선정과 부실 ▲시민 참여 방식과 범위 ▲의료원장 ▲직업 급여 방식 ▲비정규직 고용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과 논쟁 및 갈등이 있었다.


성남시의료원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9년에 완공됐고 동시에 시범 진료를 시작했다. 509병상 규모로 내과, 외과, 정형외과 등 11개 과목 진료를 시작했다. 정식 개원 후로는 24개 과에 대한 진료가 이뤄졌다.

이 같은 일정은 원래 계획과는 달랐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치료 전담병원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성남시의료원은 정식 개원을 미루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됐고, 일반 입원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성남시의료원이 공공병원의 역할과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이 된 것이다.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이 지난해 10월19일부터 29일까지 SNS로 성남시민을 대상으로 ‘성남시의료원 인식 조사’를 해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응답자 중 80%가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으로 지정한 데 대해 ‘감염병 치료는 공공병원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며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반대로 ‘코로나 진료를 축소하고 일반 진료 확대’ 의견과 ‘일반 진료를 축소하고 코로나 진료 확대’가 각각 11.11%와 8.89%로 뒤따랐다.

시민운동으로 만든 첫 번째 공공병원
지난 3년간 거점 전문병원으로 활약

시민들이 성남시의료원에 바라는 점은 ▲취약계층과 서민을 위한 병원 ▲제대로 된 공공병원의 역할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는 병원 ▲사회적 소외계층 진료 ▲시민 의견 수렴 ▲외래 등 일반진료 활성화시키기 등이 있었다.

성남시의료원은 시민이 시민을 위해 설립한 공공병원이다. 병원이 설립된 지 3년, 공공병원인 성남시의료원의 역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정용한 경기도 성남시의회 의원 등 14명이 ‘성남시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조례안에는 ‘성남시의료원은 코로나 감염병 대응에 최선을 다해왔으나 개원 3년 차가 됐다. 현재 유능한 의료진을 충원하지 못하고, 진료체계가 정비되지 않아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며 ‘성남시의료원을 대학병원 등에 위탁 운영해서 검증된 의료 체계를 통해 진료의 신뢰도와 만족도를 높여 시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의료원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보건 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지난 4일 성남시 의회 앞에서 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 반대‧운영 정상화 시민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성남시의료원 민간위탁 조례를 즉각 폐기하라. 위탁으로 포장한 공공의료 파괴‧의료 민영화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면 성남시의료원은 성남시가 직영할 수 없고 반드시 위탁운영을 해야 한다. 민간병원이나 민간재단도 수탁기관이 될 수 있다. 성남시민이 만든 공공병원이 순식간에 민간병원이나 민간재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개원과 동시에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제 지역 책임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적자 운운하며 민간위탁하겠다고 하는 것은 성남시의료원을 토사구팽하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제대로 된 공공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석열정부가 의료민영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신상진 성남시장도 비판했다. 시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시장실을 옮기고 성남시의료원의 민간위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주민발의로 만들어진 성남시의료원인데 시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개정 조례안을 발의한 점이다.

“시 인력 채용 막아 필수 인력 부족”
“말만 민간위탁이지 사실상 민영화”

민간위탁이 아니라 사실상 민영화라는 의견도 있었다. 민간위탁은 국가 책임을 떠넘기고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 공공의료를 여긴다는 의견도 있다. 즉 공공의료를 사기업에 팔아넘겨 이권 챙겨주기 행보라는 것이다. 

이남희 보건의료노조 성남시의료원지부장은 “2020년 정식 개원을 앞두고 시범진료를 하고 있던 성남시의료원은 감염병 격리병원 운영이 채 준비가 되기도 전에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간호사들은 일반 병동 오픈 준비를 중단하고 갑작스럽게 감염병 격리병동 오픈 준비를 시작해 6병상을 오픈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일반 병상까지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도 모자라 일반 병실에 음압기를 달고 코로나 병동을 확대했다. 코로나 환자를 위한 중환자실, 수술실, 투석실이 문을 열었고 의사들도 전문 분야를 포기하고 코로나 전선에 뛰어들었다. 행정직 보건직 직원들은 지원 업무를 도맡았다”고 성남시의료원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어떻게 활약했는지 설명했다.

이 지부장은 “이렇게 전 직원이 헌신하며 코로나 위기를 이겨왔지만 아직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환자 증감에 따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보조원들은 병동을 옮겨 다니며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개탄했다.

또한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해 의료 인력이 지속적으로 퇴사하고 있지만 성남시가 인력 채용을 막아 필수 인력인 간호사조차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사업을 위한 예산도 막았다”며 “의료원의 정상적인 운영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신상진 성남시장과 국민의힘 시의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다…


보건의료노조와 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 반대·운영정상화 시민공동대책위원회는 ▲정상 운영조차 해보지 않은 성남시의료원의 민간위탁 추진은 정당성이 없음 ▲민간위탁은 진료비 부담을 높이고 공공병원을 돈벌이 병원으로 만듦 ▲지역 책임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성남시의료원 민간위탁은 필수 의료 국가책임제를 훼손하는 일 ▲민간위탁 강제는 상위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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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