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이 있는 가을 정원 ①정선 로미지안가든

사랑이 깊어지는 정원

여기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직접 가꾼 정원이 있다. 아내만큼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도 소중히 여기다 보니 무려 10년 세월이 걸렸다. 자연과 더불어 지낸 시간 동안 자아 성찰과 명상도 이어졌다. 욕심을 비우고 사유를 채운 정원은 2017년 드디어 일반에 공개했다. 강원도 정선에 자리한 로미지안가든 이야기다.

로미지안이란 독특한 이름은 정원 주인 손진익 대표의 호 ‘지안(智眼)’과 연애 시절부터 아내를 부르던 애칭인 ‘로미’를 합한 것이다.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부부는 정선을 여행하다가 맑고 깨끗한 자연에 마음을 빼앗겼다. 손 대표는 무엇보다 천식을 앓던 아내가 숙면하는 것을 보고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명처럼 가리왕산 자락에 있는 울창한 야산을 만나 지금의 로미지안가든이 탄생했다.

이름의 유래

‘삼합수대전망대’에 오르면 오대천과 동강, 조양강이 합수하는 남평뜰이 발아래 펼쳐진다. 고향인 경주 양동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정다운 풍경이 손 대표의 마음을 끌었다. 여기에 숙소를 짓고 정원에 머무는 이들이 언제든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수 있도록 ‘햇빛치유장’을 조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답고, 가을이면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 들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아내를 향한 깊은 애정이 출발점인 만큼 정원 곳곳에 부부가 둘러볼 만한 공간이 즐비하다. 매표소로 향하는 다리 이름부터 ‘험한세상다리되어’다. 하얀 자작나무와 분홍색 수국이 이국적인 산책로 ‘심언사연길’은 인연의 의미를 곱씹어보도록 꾸몄다. 박달나무와 소나무가 다정하게 붙은 연리지 아래 설립자 부부 동상이 반기고, 그 너머로 로미지안가든의 상징으로 통하는 ‘가시버시성’이 보인다. 부부의 순우리말인 가시버시란 이름처럼 사랑과 믿음에 대한 글귀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선 드넓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가리왕산 하봉도 선명하다. 정원 제일 안쪽에 ‘베고니아하우스’가 있다. 화려한 색과 모양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베고니아는 1년 내내 꽃을 피워 관상용으로 인기다. 로미지안가든에는 국내에서 보기 어렵다는 점보베고니아가 있는데, 아이 머리만 한 꽃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베고니아는 손 대표의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란다.


로미지안가든이 자랑하는 또 다른 테마는 명상이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예약자를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계절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전문가와 함께 메타 호흡, 산림 치유 명상을 경험한다. ‘금강송산림욕장’에서 진행하는 숲속 명상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덕분에 로미지안가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년 ‘추천! 웰니스 관광지’에 들었다.

아내를 향한 애정에서 시작한 자연라이프
웰니스 관광지에 선정된 명상 프로그램도

통유리 너머 사계절의 변화가 오롯이 느껴지는 명상실 주변에도 ‘프라나탑’과 ‘붉은자성의언덕’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피라미드형 프라나탑 내부로 들어서면 3D 홀로그램 화면이 진정한 행복과 깨달음에 관해 묻는다. 붉은 흙으로 된 붉은자성의언덕에는 다양한 철학적 물음을 상자 안에 숨겨놓았다. 가시버시성을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포토 존으로 꼽히는 ‘하얀고독의언덕’에는 산자락을 향해 놓은 벤치가 있다. 볼거리에 눈을 뺏기는 대신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고독에 빠져보라는 의미다. 이외에도 산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발견한 석회암 군락 ‘천공의아우라’, 오르락내리락 산세를 담은 트레킹 코스 ‘아라한밸리순례길’ 등 자연에 순응하며 정원을 가꾸는 동안 얻은 깨달음을 다채로운 공간에 녹여냈다.

로미지안가든에는 카페와 식당, 숙소도 있다. 진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가 발길을 잡아끄는 카페 ‘아라미스’는 마치 유럽의 산장에 온 것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일식당 ‘야마노우에’는 창밖으로 가리왕산의 경치와 함께 사누키우동을 맛보는 곳이다. 일본 가가와현에서 기술을 전수해 수준급 손맛을 자랑한다.

4시간이 넘는 트레킹 코스를 갖춘 만큼 ‘마운틴하우스’는 걷기 여행자를 위한 휴식처다. 창밖에 남평뜰이 펼쳐지고 아침저녁으로 산안개가 그윽하게 깔린다. 투숙객은 최상의 음향 시설을 자랑하는 ‘지안아트홀’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이웃한 북카페에서 여유롭게 쉴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가까이에서 누리는 글램핑장 ‘철인의마을’도 운영한다.

로미지안가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명절 당일 휴관), 관람료는 어른 1만5000원, 청소년 7000원이다. 로미지안가든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나전역이 있다. 간이역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로 운영하는 이곳은 정선오일장이 열리는 끝자리 2·7일과 주말에 정선아리랑열차가 정차한다. 장날 기차역에서 흔히 보던 짐을 가득 인 여인, 교복을 입은 학생 등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포토 존이 감성을 더한다. 역무원 제복을 입어보는 체험도 진행한다.

지역 특산물 곤드레를 이용한 크림을 곁들인 나전역크림커피와 크루아상 등 이색 메뉴도 선보인다. 정선아리랑열차의 종착역은 아우라지역이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알려진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사시상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란 가사처럼 강을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처녀상과 총각상도 있다. 아우라지역 바로 옆에는 여행 플랫폼 어름치플레이스를 운영한다. 정선 여행 정보를 얻고, 수리취떡 만들기와 옥수수막걸리 만들기 등 체험도 가능하다.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정선에서 색다른 하룻밤을 경험하고 싶다면 동강전망자연휴양림을 추천한다. 전망이 아름다운 캠핑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곳은 머무는 내내 동강의 비경이 오롯이 함께한다. 이른 아침에는 발아래 운무가 자욱해 마치 구름 위에서 잠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웅장한 산자락에 떠오르는 태양도 텐트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로미지안가든→나전역→아우라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로미지안가든→나전역→아우라지→동강전망자연휴양림 
-둘째 날: 정선오일장→아라리촌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정선관광 www.jeongseon.go.kr/tour 
-로미지안가든 www.romyziangarden.com 
-어름치플레이스 https://eoreumchiplace.modoo.at
-동강전망자연휴양림(정선군시설관리공단) www.jsimc.or.kr/layout/basic/page/page1/page09.html 

문의 전화 
-로미지안가든 033)562-3382 
-정선군콜센터 1544-9053 
-나전역카페 033)563-3646 
-어름치플레이스 010-9609-2827 
-동강전망자연휴양림 033)560-3464 

대중교통 
[버스] 서울-정선,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5회(07:00~ 17:3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서울-평창 진부,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8회(06:40~20:2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정선공영버스터미널이나 진부시외버스터미널 로미지안가든 승강장에서 와와버스 이용.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 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정선공영버스터미널 033)560-4150 진부시외버스터미널 033)335-6307 정선군대중교통정보 080-850-9486, www.jeongseon-pti.com 

자가운전 
광주원주고속도로→경기광주 JC에서 강릉·원주 방면→원주톨게이트→진부 IC에서 진부(오대산)역 방면→오대교교차로에서 정선·진부 방면→하진부교차로에서 태백·정선 방면→나전3교차로에서 어도원 방면→어래길 방면 왼쪽→로미지안가든 

숙박 정보 
-파크로쉬리조트앤웰니스: 북평면 중봉길, 033)560-1111, www.park -roche.com 
-상유재: 정선읍 봉양3길, 033)562-1162, https://sangyouje.modoo.at 
-강과소나무: 북평면 졸드루길, 010-3757-1147, http://www.gangsol.com 
-마을호텔18번가: 고한읍 고한2길, 070-4157-8487, https://hotel18.co.kr

식당 정보 
-동광식당(황기족발·콧등치기국수): 정선읍 녹송1길, 033)563-3100 
-전영진어가(송어비빔회·향어찜): 정선읍 돌다리길, 033) 563-1043 
-회동집(곤드레밥·올챙이국수): 정선읍 5일장길, 033) 562-2634 

주변 볼거리 
정선레일바이크, 화암동굴, 민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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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