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재발견 ③속초 설악산 흔들바위

수학여행의 추억이 방울방울

강원도 속초는 예나 지금이나 수학여행 명소로 통한다. 설악산을 품고 동해에 접한 고장이니, 수학여행에 이보다 맞춤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속초에서도 설악산 흔들바위는 단골 수학여행지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의 힘은 추억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수학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가슴속에 또렷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흔들바위를 찾아가는 길이 여전히 설레는 이유다.

흔들바위는 설악산 자락에 터 잡은 계조암(繼祖庵) 앞 와우암(臥牛岩) 위에 있다. 100여 명이 함께 식사할 만큼 넓어 식당암(食堂岩)이라고도 하는 반석 끄트머리다. 공처럼 둥근 바위가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선 모습이 꽤 인상적인데, 흔들바위가 유명한 건 손만 대도 굴러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이 장면 때문이다.

해마다 만우절이면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 소문이 나돌지만, 지금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슬아슬한 흔들바위

흔들바위로 가려면 발품을 조금 팔아야 한다. 설악산소공원주차장에서 흔들바위까지 약 3㎞. 제법 먼 거리지만, 마지막 600m 산길을 뺀 나머지가 대부분 평지처럼 완만하다. 걷는 내내 길동무가 되는 시원한 계곡과 울산바위의 그림 같은 자태도 이 길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먼저 만나볼 곳이 신흥사(강원문화재자료)다. 설악산국립공원 매표소에서 8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신흥사는 652년(진덕여왕 6)에 자장율사가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고찰이다. 이후 화재로 소실된 사찰을 1644년(조선 인조 22)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신흥사’로 다시 세웠다.


경내에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남아 있다. 높이 14.6m 통일대불은 신흥사, 아니 설악산의 명물이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며 청동 108t으로 만들었다. 제작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린 통일대불 내원법당에는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 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이 봉안됐다.

신흥사를 지나면 예쁜 숲길이 열린다. 깔끔하게 정비된 길은 어른 3~4명이 나란히 걸어도 여유로울 만큼 널찍하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이라 지루할 것 같지만, 초록빛 숲 터널의 싱그러움과 투명한 계곡의 맑은 물소리에 마음이 편안하다. 꽃향기처럼 발끝으로 은은하게 전해오는 부드러운 흙의 느낌도 참 좋다.

신흥사의 부속 암자인 내원암을 지나면 다소 좁고 험한 산길이 나온다. 평지와 다름없던 숲길에 비해 험하다는 것이니,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가볍게 오르는 동네 뒷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만나는 급경사 구간에는 나무 계단이 설치돼, 오르내리기에 불편하지 않다.

흔들바위 낙하 농담 만우절 단골 소재
예전 일부 남부지방의 수학여행 단골코스

계조암 입구, 절벽 위에 다소곳이 자리한 둥근 바위가 설악산 흔들바위다. 정말이지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처럼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이 거대한 바위를 누군가가 이곳에 가져다 놓았을 리 만무. 흔들바위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풍화작용의 결과물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중심의 핵석만 남은 것.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풍화작용으로 기반암과 분리된 핵석을 토르(tor)라고 한다.

흔들바위에 대해 살펴봤으니 이제 밀어볼 차례. 혹시나 ‘바위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어떡하지?’같은 소심한 생각이 든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흔들바위 무게는 대략 32t. 슈퍼맨이 아닌 이상 흔들바위를 밀어서 아래로 떨어뜨릴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는 얘기다.


그럼 흔들림은? ‘흔들린 것 같다’와 ‘꼼짝도 안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니, 각자 느낌대로 받아들이면 될 듯.

흔들바위와 한참 씨름하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으로 시선이 옮겨 간다. 설악산국립공원 매표소에서 계조암까지 ‘흔들바위’ 이정표만 좇아왔지만, 흔들바위를 떠받친 와우암, 온갖 한자를 새겨놓은 수직 절벽, 목탁 닮은 둥근 바위를 파내 조성한 석굴 법당, 우뚝 솟은 울산바위 등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를 연상시키는 계조암의 암석군은 흔들바위의 명성에 뒤지지 않는다.

신라 승려 자장이 창건한 계조암은 동산, 각지, 봉정에 이어 의상, 원효 등 조사의 칭호를 얻을 만한 승려가 계승해 수도한 곳으로 알려졌다. 자장율사는 계조암 석굴에 머물며 향성사를 창건했다. 여유가 되면 흔들바위와 계조암을 돌아본 뒤 울산바위까지 다녀와도 괜찮다. 울산바위는 흔들바위에서 1㎞ 남짓 떨어져 있다.

설악산으로 떠나온 여정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곳이 권금성이다. 설악산성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화채능선 정상부에 있다. 권씨와 김씨가 이곳에서 난리를 피하려고 하루 만에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권금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흥사 앞 설악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해발 800m 권금성까지 5분 만에 닿는다. 설악케이블카 운영 시간은 하루 전 홈페이지에 공지한다. 탑승권 예약은 불가하며 탑승료는 중학생 이상 1만3000원, 어린이 9000원이다.

속초항 인근에 있는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이들이 정착해 형성됐다. 아바이는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마을은 2000년 방영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갯배를 타는 모습이 소개되며 세간에 알려졌다.

마을에서는 지금도 관광객을 위해 갯배를 운영한다. 내장을 뺀 오징어에 다진 고기, 채소, 찹쌀을 넣고 찐 오징어순대와 돼지 대창에 찹쌀과 선지를 넣은 아바이순대가 대표 먹거리다. 아담한 청호해변도 아바이마을의 자랑이다.

속초해수욕장

속초에서 가장 ‘핫한’ 해변을 꼽으라면 단연 속초해수욕장이다. 아바이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닿는 속초해수욕장은 모래밭이 곱고 바닷물이 맑아 피서지로 사랑받는다. 해수욕장 북쪽에 서핑 전용 해변도 마련했다. 최근 선보인 우리나라 최초의 해변 대관람차 속초아이는 또 다른 명물. 아파트 23층 높이에서 시리도록 푸른 동해와 멀리 설악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설악산 흔들바위→설악케이블카(권금성)→아바이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설악산 흔들바위→설악케이블카(권금성)→아바이마을
-둘째 날: 속초해수욕장→속초아이→칠성조선소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속초관광 www.sokchotour.com
-설악케이블카 www.sorak cablecar.co.kr
-아바이마을 www.abai.co.kr


문의 전화
-속초시청 관광과 033)639-2539
-설악산국립공원 033) 801-0900
-설악케이블카 033)636-4300

대중교통
[버스] 서울-속초,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5~50분 간격(06:00~23:30)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40여회(06:05~23:00) 운행, 2시간10분~3시간 소요. 속초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4번·7번·7-1번 일반버스 이용, 설악산소공원 정류장 하차,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도보 약 3㎞.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7-1번 일반버스 이용, 설악산소공원 정류장 하차,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도보 약 3㎞.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속초시대중교통정보 www.sokchoterminal.com

자가운전
동해고속도로 북양양 IC→장재터로→설악산로→청봉로→설악산국립공원(설악산 흔들바위)

숙박 정보
-호텔 아마란스: 속초시 온천로, 033)636-5252, http://www.hotelamaranth.com
-헬리오스모텔: 속초시 장사항해안길, 033) 632 -7676 http://www.heliosmotel.com
-뉴스타트설악리조트: 속초시 설악산로836번길, 033)637-2239, www.nsseorak resort.com
-초원리조텔: 속초시 청봉로5길, 033)636-7169, http://greenresort.co.kr
-켄싱턴호텔 설악: 속초시 설악산로, 033)635-4001, http://kensington.co.kr/hsr

식당 정보
-대포면옥(명태회냉면): 속초시 설악산로4번길, 033)632-66 88
-솔향(산채비빔밥): 속초시 설악산로, 033)638-8288
-아바이식당(오징어순대·아바이순대): 속초시 아바이마을1길, 033)635-5310

주변 볼거리
울산바위, 청초호, 외옹치해수욕장, 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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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