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내분’ 국민의힘 향한 5선 조경태의 쓴소리

“비대위, 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했다.” 국민의힘 내 최다선(5선)인 조경태 의원이 최근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두고 한 말이다. 주호영호가 좌초된 직후 바로 두 번째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비대위원으로 합류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친윤(친 윤석열)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인터뷰 동안 조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민생보다 눈치 보기에 바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36세라는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같은 지역에서만 내리 5선을 지낸 인물이다. 초선 때부터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할 말은 시원하게 한다. <일요시사>는 조 의원을 만나 비대위 출범의 과정, 당내 혼란 상황,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평가, 김건희 여사 특검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등 정치 현안을 물었다. 다음은 조 의원과의 일문일답.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면서 국민에게 염치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당은 대선,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정권도 바꿨고 지방권력도 가져왔습니다. 선거 때 국민에게 얘기하고 호소했던 게 국민을 잘 살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그랬는데 지금의 국민의힘이 초심과 일치되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혼란의 가장 큰 이유는 당의 근본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내 갈등이 친윤, 비윤 간 갈등에서 초·재선 의원과 중진 의원 간 다툼으로 번졌습니다


▲정치를 할 때 생각의 차이는 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정치의 가치는 잘못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냐입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야당 탓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물가와 환율이 계속 오르면서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인데 윤석열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은커녕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답답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 내년에 있을 공천권 때문에 다툰다는 시선이 많습니다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선 의원 대부분이 50·60세로 제가 초선 의원보다 5~6세가량 어립니다. 그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정치를 할 때 공천 잘 받아서 국회의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하는 분들이 지나치게 공천에 매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비대위 출범 이후 이른바 윤핵관들이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예단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앞으로 원내대표 선거라던지 당 대표 선거 때 물러났는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정진석)비대위원장 역시 윤핵관에 가까운 분입니다. 비대위원 선정도 신선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출범했기 때문에 잘되기는 바라는 마음이지만 국민적 눈높이에 맞췄다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비대위 체제를 제외하고 혼란을 극복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안으로 제시한 게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서 그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는 방식입니다.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서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적인 지도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채택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 비대위를 계속 이어가는 게 당 내분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또다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다면 세 번째 비대위 출범 명분이 없어 보입니다

▲저 역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이미 한 차례 비대위가 인용이 돼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행위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또다시 비대위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당이 대혼란에 빠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대위를 강행했던 분들이 책임질 것이라고 봅니다.

-새로 뽑힌 비대위원들도 급하게 발표한 감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친윤 세력을 다시 비대위에 앉힌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분들이 정신적으로 맑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으면 답이 늘 보입니다. 자꾸 자신들이 권력을 계속 쥐고 당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욕심을 냅니다. 본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게 은연중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인물을 비대위원으로 선임하지 못합니다. 결국 비대위는 또 다른 여러 가지 분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말 듣지 않으면 쫓아내겠다고?”
중립적인 인물이 혼란 수습해야

최근 뉴스를 보니까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법원이 정당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사법부를 질타했는데 저희가 법치를 강조하는 우파정당이라고 하면서 법치를 부정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지금 비대위는 어떻게 하면 조기 전당대회를 빨리 열 수 있는지 집중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만일 새로운 대표가 뽑히면 바지 대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당은 책임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 정당의 대표는 누구의 눈치라도 보면 안 됩니다. 국민의 눈치만 살펴야 합니다. 현 상황은 정당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또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누구든 간에 성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검찰 탄압을 우리가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내로남불하면 안 됩니다.

- 비대위를 재차 출범시키는 걸 반대하는 의원도 많았을 텐데, 잠잠한 느낌입니다

▲서로 눈치만 보는 겁니다. 정치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게 옳다면 밀고 가야 합니다. 당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국민입니다. 당원도 중요하지만 우선 국민을 신경써야 합니다. 저희 당 이름도 국민의힘이지 않습니까. 당명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끼리 해보자는 식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투표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비대위원장을 정해놨다는 느낌이 듭니다

▲중진회의에서는 정 비대위원장 말고 다른 사람 이름도 거론됐습니다. 원외 인사로 당시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야기했습니다. 원내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반나절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면 이 역시도 석연치 않았던 의사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대위원장을 박수로 추대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권 원내대표께서 갑자기 새 비대위원장을 거명하면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일종의 깜짝쇼 같았습니다. 정 위원장을 박수로 맞아달라며 삼고초려를 했으니 추인하면 좋겠다면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박수 치는 분위기였긴 합니다.

당시 저는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뒷줄에 앉은 대부분의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이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대위원장의 권한은 대표 권한과 같이 막강합니다. 그러면 과연 박수로서 추인하는 게 옳았는지 따져봤어야 합니다.

 진지한 토론을 해서 누구를 추천하는 행위가 없었습니다. 추인 방식이 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했습니다. 집권여당의 대표 권한을 가진 사람을 선임하는 과정이 상당이 좀 어설프기도 하고 민주적인 방식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승리하면 더 큰 혼란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원내대표든 비대위원장이든 여러 복잡한 사안의 갈등을 수습할만한 인물이 필요합니다. 당내에서 중립적인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수습되거나 악화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모습은 거의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 전 대표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궁금합니다

▲야당은 똘똘 뭉치는데 여당은 그렇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표가 살아 돌아온다면 구성원의 일환으로서 또다시 내칠 수 없을 겁니다. 분명한 점은 이 전 대표가 2030세대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활동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소 의견이 다르더라도 이 전 대표가 하는 표현이나 주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경청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우파의 가치를 존중하는 당이라고 하면 그에 걸맞게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주장과 다르다고 배척하는 획일화된 모습뿐만 아니라 ‘어리다’ ‘버릇없다’는 식으로 폄훼하는 모습은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 전 대표가 충분한 역량을 갖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 대표가 현직이든 전직이든 어쨌든 대표였습니다. 최소한의 예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전 대표도 당 대표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본인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 겸허하게 수용하고 통합하려는 역할을 좀 더 무겁게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힘의 혼란 충격이 윤 대통령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새입니다. 부정 평가율이 높습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론을 탓하고, 야당 성향이 강한 언론에서 여론조사한 거 아니냐면서 외면하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부정평가가 2배 높으면 원인을 찾아 진단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필요합니다. 새 정부의 기대치가 높았는데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인사, 정책, 위기관리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야당 특검법 무리라고 생각할 듯
이재명 대표 잘못한 죗값 치러야 

-인적 쇄신을 단행했는데도 여전히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인적 쇄신도 국민의 기대치에 만족할만큼 폭이 넓었으면 좋겠습니다. 윤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에게 내세운 게 ‘공정과 상식’입니다. 약속한 것처럼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국민은 늘 정부가 공정과 상식에 맞는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리스크로 늘 김건희 여사가 꼽힙니다. 민주당이 최근 김 여사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김 여사 특검법은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제1야당으로서 보여주는 모습의 한계인가 느낍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선 훨씬 전부터 탈탈 털었습니다. 다 문재인정부에서 한 일입니다.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일입니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특검 주장도 없었습니다. 또 논문 표절을 이야기하는데 논문 표절은 이미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석사논문을 표절했다고 커밍아웃한 바 있습니다. 논문 표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이 많이 저질러왔습니다.

문정부 때도 인사청문회에 나선 장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야기가 논문 표절입니다. 그때 특검을 했습니까. 논문 표절이 특검감은 아닙니다. 표절 논문과 관련해선 민주당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기엔 민주당의 가장 높은 자리(대표)까지 올랐던 사람들까지도 포함됩니다.

지금 와서 본인들은 아닌 것처럼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다만 비난의 대상은 맞습니다. 특검이라는 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초래했던 사안이라든지, 경제적 손실, 부정부패 등에 대해 특검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논문을 다룬다는 게 특검에 부합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대표)도 반대하지 않습니까. 

-주가조작과 관련해서도 특검을 띄웠습니다. 민주당 이 대표 역시 기소됐습니다

▲주가조작은 문정부 때 집중적으로 수사했던 사안인데, 문제였다면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로도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정략적으로 정치공세를 하는 야당의 모습을 보니 정치적 수준이 참혹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민주당도 무리라는 걸 알 겁니다.

그러면서 강행하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모습입니다. 민주당 이 대표가 당 대표 후보 시절에 윤정부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윤 대통령을 고소·고발하는가 하면, 특검법을 발의하고 새 정부 성공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야당은 야당답게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이 대표 건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선거법 위반이지 않습니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조사해서 검찰에서 수사했고, 기소한 게 사실입니다. 다수의 정치인들은 선거법 위반으로 많이 기소됩니다. 기소되는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민주당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전까지의 선거법 위반도 다 정치적 탄압입니까? 선거법 위반 사례를 가지고 정치적 탄압이라고 운운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법을 위반하면 죗값을 받는 게 맞습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전체 인원인 169명이 특검법에 동의했습니다. 우려가 나오는 부분은 민주당은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는 점입니다. 국민의힘이 반격하지만 다소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라는 것은 내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끝까지 경청할 의무가 있는 행위입니다. 언젠가 국민의힘도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평소 지론으로 내세우는 게 ‘소박한 정치가 세상을 꿈꾸게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20년 하던 정치와 비교하면 현재 정치는 과거보다 훨씬 더 퇴보한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경제나 문화, 사회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정치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인이 가져야 할 소박함이 부족한 탓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음의 욕심을 내려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정부여당입니다. 야당보다도 훨씬 더 국정운영을 책임질 몫이 큽니다. 언론 탓, 야당 탓, 누구 탓하지 말고 우리가 좀 더 국민을 화합·통합하고, 책임정치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지난 정부보다 더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윤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너무 계파에 매몰되지 말고, 모두가 국민파로서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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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