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반지하’ <기생충> 현실판 천태만상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4 09:20:47
  • 호수 13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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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방 없앤다고? 골치 아픈 집주인과 세입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영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로 반지하가 침수됐고, 이 장면이 현실 속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현실 속 폭우는 끝났지만,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지하 주민과 집주인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정부 대책은 이들의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어디에도 ‘반지하 주민의 삶을 위한’ 대책은 찾을 수 없다.

반지하는 반은 지상에, 반은 지하에 위치한 주거공간이다. 반지하 채광창에는 길거리를 걷는 외부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원래는 지하실이나 보일러실 또는 전쟁 대비용으로 활용했던 공간이지만, 주요 대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거주용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살라고…

집주인은 반지하를 주거공간으로 바꾸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반 주택은 허가가 4층까지만 하지만, 반지하는 지하로 분류돼 층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반지하를 포함한 총 5개층의 임대료를 받기 위해 주거공간을 바꾼 것이다.

반지하층은 채광이나 습기, 침수 위험도 등이 지상층과 다르다.

이처럼 반지하가 주거용으로 바뀌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다. 우선 반지하는 습도가 높기 때문에 음식물 부패도 쉽고 곰팡이가 많이 생긴다. 심한 곳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빵에 곰팡이가 생기고, 옷이나 이불은 물론이고 쌀에도 곰팡이가 생긴다. 당연히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도로변에 있는 반지하는 창문의 높이와 자동차 배기구 높이가 비슷해서 자동차 매연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 공기보다 무거운 라돈이 누적돼 폐암을 유발시킨다. 게다가 밖에서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라 창문을 마음 놓고 열지도 못한다.

또 높은 담을 넘을 필요도 없이 창문만 열면 쉽게 실내로 침입할 수 있어 도난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하기도 쉽다. 화장실의 수압도 지상층보다 약하다. 특히 변기가 정화조 위에 설치된 사례가 많아 역류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처럼 반지하주택은 거주 시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반지하주택이 계속 나오는 건 일반 지상층 주택보다 전월세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거나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지하주택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해당 지역이 재개발될 경우 반지하 거주민도 입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반지하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하실·전쟁 대비용서 주택 활용
곰팡이·매연·역류·부패 등 부작용

통계청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지하 거주 가구 비율은 1.6%인 약 32만7000가구로 집계됐다(반지하 포함). 이 중 서울지역 지하 가구는 약 20만1000가구로 전국 지하 가구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 전체 가구 대비 지하 가구 비율은 5.0%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과 인천의 지하 거주 약 2만4000가구, 경기의 지하 거주 8만9000가구를 모두 합치면 약 31만4000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국 지하 가구의 96%에 달하는 수치다. 사실상 거의 모든 지하 가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통계에 따르면 가구주들의 연령대별 지하 거주 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고, 50대 1.9%, 60대가 1.8% 순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거주 층별 점유 형태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는 월세가 51.1%, 전세는 22.8%로 합치면 총 73.9%가 세입자 신분이다.

반지하주택의 문제점과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집중호우로 벌어진 참사가 저소득층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건 예견된 일이다. 지난달 8일 서울에는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 11시10분까지 연평균 강수량의 30%가 넘는 426.5㎜ 비가 쏟아졌다.

특히 서울 동작구에는 1907년 서울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아래, 115년 만에 역대 최고치의 폭우가 내렸다. 이번 폭우 원인은 폭이 좁은 정체전선이 서울 상공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폭이 좁고 동서로 길어 좁은 범위 내에 많은 비를 내리는 게 특징이었다. 전날 비구름대가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머물면서 같은 서울 안에서도 강북보다 강남 지역에 훨씬 많은 비가 내렸다.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시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반지하주택 거주자였다.

집중호우
참사 예견

특히 이번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자, 정치권은 반지하주택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지하 공간의 주거용으로서의 건축 허가를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주택도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사람이 살지 않는 창고·주차장 등으로 용도 변경해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건축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선언에 건축법을 주관하는 행정부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즉각 반발했다. 원 장관은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며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건축업계는 오 시장의 반지하 퇴출 선언이 황당하다는 분위기다. 20년 전 건축법이 바뀌면서 시장에서는 반지하주 택을 신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경사지라서 반지하를 지상층처럼 쓸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반지하를 만들지 않은지 오래됐다. 오 시장의 반지하 퇴출 선언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퍼포먼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주택도 1997년 착공해 1999년 6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주차장법이 강화되기 직전에 지어진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총 17세대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바로 맞은편의 다세대 주택은 1층이 주차장으로 돼있는 필로티 구조다. 총 5층 규모로 1층이 주차장이고, 반지하는 당연히 없다. 이 건물은 2003년 6월에 착공해 그해 12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반지하‧지하 주택을 건축하기 어렵게 관련 법은 계속 강화됐다. 30세대 이상 규모로 주택법상 사업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택은 지하에 주거공간을 넣지 못한다. 또 2018년부터 시행된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하 10m 이상 굴토 시에는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받아야 해서 지하 공사 난이도가 대폭 상승했다.

2010년 추석 명절 때 서울에 쏟아진 폭우로 1만2518동이 침수됐던 사고도 한몫했다. 당시 상당수가 반지하주택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해 침수지역의 반지하주택 건축 허가 제한을 추진했다.

이랬다
저랬다

오 시장의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발언은 반지하주택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의 반발을 샀다. 당연히 가장 힘든 것은 반지하주택 세입자다. 오 시장의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는 발언으로, 앞으로 사라질 반지하주택은 수리할 필요가 없다는 집주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남긴 20대 여성 A씨도 같은 상황이다. 반지하주택 전세 거주자인 A씨는 지난 집중호우 때 집이 침수됐다. 물이 모두 빠진 뒤 방은 진흙밭으로 변해 있었다. 방 벽지나 장판은 물론이고 풀옵션으로 들어가 있던 가전제품들도 모두 고장났다. 당연히 개인 소지품도 다 버렸다.

A씨는 집주인에게 방 상태를 알리고 집 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벽지 도배와 청소만 하고 장판을 교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난지원금 동의서에 서명해달라”고 A씨에게 말했다. 침수 피해로 인한 주택의 유지 보수 의무는 집주인에게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은 것.


A씨는 앞으로 반지하주택이 사라질 것으로 여겨, 집주인이 집을 수리해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내년 3월이 돼야 집 계약이 만료된다. 나는 아토피와 알러지가 심한데, 주거환경이 안 좋으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며 “그런데 장판을 교체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집수리를 해주지 않으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민법 제623조에 의하면 ‘임대 목적물의 수선 유지 의무는 임대인에게 있으나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따라 도배·장판 등 시설 수리 비용에 우선 충당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또 세입자가 재난지원금을 받은 경우 집주인과 지원금 사용을 두고 이견 발생 시, 집주인이 주택시설 피해 복구 비용 이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A씨의 집주인은 반지하주택을 수리해주지도 않고 재난지원금을 받으려는 것이다.

“곧 없어질 거라며 침수됐어도 안 고쳐줘”
“10월에 리모델링해서 팔 계획이었는데…”

해당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주변에 아는 어른이나 남자 데리고 가서 법대로 하자고 말해라” “이런 집주인은 피하고, 방 빼고 유지보수를 안 해준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달라고 해라” “반지하 멸실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가 돈을 쓰려고 하겠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반지하주택 세입자인 20대 B씨도 이번 침수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 B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 반지하주택에 살고 있다. 이번 침수로 주택에 있었던 1500만원 상당의 컴퓨터와 주변 장비들이 모두 고장났다. 

B씨는 집주인에게 보상해달라고 말했지만 집주인은 “고작 25만원 월세에 살면서 고가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소송을 걸겠다”고 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이외에도 전세계약을 해지해달라는 세입자를 못 나가게 막는 집주인도 있다.

물론 세입자들만 힘든 것은 아니다. 집주인도 침수 피해를 겪었다. 오는 10월에 반지하주택 매도를 계획하고 있었던 집주인 C씨는 침수로 반지하주택 매도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C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집은 반지하주택 한 채다. 침수되지도 않았지만, 뉴스에서 반지하에 대한 나쁜 모습만 보여준다. 또 반지하를 없앤다고 하니 누가 사려고 하겠느냐”며 “원래는 리모델링해서 매도하거나 전세를 주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반지하주택을 줄이겠다는 서울시의 정책과는 반대로, 정부는 지난달 30일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20조7000억원에서 15조1000억원으로 5조6000억원을 삭감시켰다.

이번 수도권 폭우로 서울 관악·동작구의 반지하주택에서 4명이 목숨을 잃은 지 3주 만에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시민에 대한 기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은
반대로

재난불평등추모행동·주거권네트워크·집걱정없는세상연대·공공임대두배로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반지하주택뿐 아니라 옥탑방·쪽방·고시원·여관·컨테이너·비닐하우스에서도 화재와 수재, 폭염, 혹한으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나 주거비 지원 같은 주거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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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