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반지하’ <기생충> 현실판 천태만상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4 09:20:47
  • 호수 13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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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방 없앤다고? 골치 아픈 집주인과 세입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영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로 반지하가 침수됐고, 이 장면이 현실 속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현실 속 폭우는 끝났지만,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지하 주민과 집주인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정부 대책은 이들의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어디에도 ‘반지하 주민의 삶을 위한’ 대책은 찾을 수 없다.

반지하는 반은 지상에, 반은 지하에 위치한 주거공간이다. 반지하 채광창에는 길거리를 걷는 외부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원래는 지하실이나 보일러실 또는 전쟁 대비용으로 활용했던 공간이지만, 주요 대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거주용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살라고…

집주인은 반지하를 주거공간으로 바꾸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반 주택은 허가가 4층까지만 하지만, 반지하는 지하로 분류돼 층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반지하를 포함한 총 5개층의 임대료를 받기 위해 주거공간을 바꾼 것이다.

반지하층은 채광이나 습기, 침수 위험도 등이 지상층과 다르다.

이처럼 반지하가 주거용으로 바뀌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다. 우선 반지하는 습도가 높기 때문에 음식물 부패도 쉽고 곰팡이가 많이 생긴다. 심한 곳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빵에 곰팡이가 생기고, 옷이나 이불은 물론이고 쌀에도 곰팡이가 생긴다. 당연히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도로변에 있는 반지하는 창문의 높이와 자동차 배기구 높이가 비슷해서 자동차 매연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 공기보다 무거운 라돈이 누적돼 폐암을 유발시킨다. 게다가 밖에서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라 창문을 마음 놓고 열지도 못한다.

또 높은 담을 넘을 필요도 없이 창문만 열면 쉽게 실내로 침입할 수 있어 도난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하기도 쉽다. 화장실의 수압도 지상층보다 약하다. 특히 변기가 정화조 위에 설치된 사례가 많아 역류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처럼 반지하주택은 거주 시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반지하주택이 계속 나오는 건 일반 지상층 주택보다 전월세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거나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지하주택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해당 지역이 재개발될 경우 반지하 거주민도 입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반지하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하실·전쟁 대비용서 주택 활용
곰팡이·매연·역류·부패 등 부작용

통계청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지하 거주 가구 비율은 1.6%인 약 32만7000가구로 집계됐다(반지하 포함). 이 중 서울지역 지하 가구는 약 20만1000가구로 전국 지하 가구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 전체 가구 대비 지하 가구 비율은 5.0%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과 인천의 지하 거주 약 2만4000가구, 경기의 지하 거주 8만9000가구를 모두 합치면 약 31만4000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국 지하 가구의 96%에 달하는 수치다. 사실상 거의 모든 지하 가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통계에 따르면 가구주들의 연령대별 지하 거주 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고, 50대 1.9%, 60대가 1.8% 순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거주 층별 점유 형태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는 월세가 51.1%, 전세는 22.8%로 합치면 총 73.9%가 세입자 신분이다.

반지하주택의 문제점과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집중호우로 벌어진 참사가 저소득층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건 예견된 일이다. 지난달 8일 서울에는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 11시10분까지 연평균 강수량의 30%가 넘는 426.5㎜ 비가 쏟아졌다.

특히 서울 동작구에는 1907년 서울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아래, 115년 만에 역대 최고치의 폭우가 내렸다. 이번 폭우 원인은 폭이 좁은 정체전선이 서울 상공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폭이 좁고 동서로 길어 좁은 범위 내에 많은 비를 내리는 게 특징이었다. 전날 비구름대가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머물면서 같은 서울 안에서도 강북보다 강남 지역에 훨씬 많은 비가 내렸다.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시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반지하주택 거주자였다.

집중호우
참사 예견

특히 이번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자, 정치권은 반지하주택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지하 공간의 주거용으로서의 건축 허가를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주택도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사람이 살지 않는 창고·주차장 등으로 용도 변경해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건축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선언에 건축법을 주관하는 행정부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즉각 반발했다. 원 장관은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며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건축업계는 오 시장의 반지하 퇴출 선언이 황당하다는 분위기다. 20년 전 건축법이 바뀌면서 시장에서는 반지하주 택을 신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경사지라서 반지하를 지상층처럼 쓸 수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반지하를 만들지 않은지 오래됐다. 오 시장의 반지하 퇴출 선언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퍼포먼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주택도 1997년 착공해 1999년 6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주차장법이 강화되기 직전에 지어진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총 17세대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바로 맞은편의 다세대 주택은 1층이 주차장으로 돼있는 필로티 구조다. 총 5층 규모로 1층이 주차장이고, 반지하는 당연히 없다. 이 건물은 2003년 6월에 착공해 그해 12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반지하‧지하 주택을 건축하기 어렵게 관련 법은 계속 강화됐다. 30세대 이상 규모로 주택법상 사업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택은 지하에 주거공간을 넣지 못한다. 또 2018년부터 시행된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하 10m 이상 굴토 시에는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받아야 해서 지하 공사 난이도가 대폭 상승했다.

2010년 추석 명절 때 서울에 쏟아진 폭우로 1만2518동이 침수됐던 사고도 한몫했다. 당시 상당수가 반지하주택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해 침수지역의 반지하주택 건축 허가 제한을 추진했다.

이랬다
저랬다

오 시장의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발언은 반지하주택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의 반발을 샀다. 당연히 가장 힘든 것은 반지하주택 세입자다. 오 시장의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는 발언으로, 앞으로 사라질 반지하주택은 수리할 필요가 없다는 집주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남긴 20대 여성 A씨도 같은 상황이다. 반지하주택 전세 거주자인 A씨는 지난 집중호우 때 집이 침수됐다. 물이 모두 빠진 뒤 방은 진흙밭으로 변해 있었다. 방 벽지나 장판은 물론이고 풀옵션으로 들어가 있던 가전제품들도 모두 고장났다. 당연히 개인 소지품도 다 버렸다.

A씨는 집주인에게 방 상태를 알리고 집 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벽지 도배와 청소만 하고 장판을 교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난지원금 동의서에 서명해달라”고 A씨에게 말했다. 침수 피해로 인한 주택의 유지 보수 의무는 집주인에게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은 것.


A씨는 앞으로 반지하주택이 사라질 것으로 여겨, 집주인이 집을 수리해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내년 3월이 돼야 집 계약이 만료된다. 나는 아토피와 알러지가 심한데, 주거환경이 안 좋으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며 “그런데 장판을 교체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집수리를 해주지 않으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민법 제623조에 의하면 ‘임대 목적물의 수선 유지 의무는 임대인에게 있으나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따라 도배·장판 등 시설 수리 비용에 우선 충당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또 세입자가 재난지원금을 받은 경우 집주인과 지원금 사용을 두고 이견 발생 시, 집주인이 주택시설 피해 복구 비용 이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A씨의 집주인은 반지하주택을 수리해주지도 않고 재난지원금을 받으려는 것이다.

“곧 없어질 거라며 침수됐어도 안 고쳐줘”
“10월에 리모델링해서 팔 계획이었는데…”

해당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주변에 아는 어른이나 남자 데리고 가서 법대로 하자고 말해라” “이런 집주인은 피하고, 방 빼고 유지보수를 안 해준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달라고 해라” “반지하 멸실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가 돈을 쓰려고 하겠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반지하주택 세입자인 20대 B씨도 이번 침수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 B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 반지하주택에 살고 있다. 이번 침수로 주택에 있었던 1500만원 상당의 컴퓨터와 주변 장비들이 모두 고장났다. 

B씨는 집주인에게 보상해달라고 말했지만 집주인은 “고작 25만원 월세에 살면서 고가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소송을 걸겠다”고 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이외에도 전세계약을 해지해달라는 세입자를 못 나가게 막는 집주인도 있다.

물론 세입자들만 힘든 것은 아니다. 집주인도 침수 피해를 겪었다. 오는 10월에 반지하주택 매도를 계획하고 있었던 집주인 C씨는 침수로 반지하주택 매도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C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집은 반지하주택 한 채다. 침수되지도 않았지만, 뉴스에서 반지하에 대한 나쁜 모습만 보여준다. 또 반지하를 없앤다고 하니 누가 사려고 하겠느냐”며 “원래는 리모델링해서 매도하거나 전세를 주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반지하주택을 줄이겠다는 서울시의 정책과는 반대로, 정부는 지난달 30일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20조7000억원에서 15조1000억원으로 5조6000억원을 삭감시켰다.

이번 수도권 폭우로 서울 관악·동작구의 반지하주택에서 4명이 목숨을 잃은 지 3주 만에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시민에 대한 기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은
반대로

재난불평등추모행동·주거권네트워크·집걱정없는세상연대·공공임대두배로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반지하주택뿐 아니라 옥탑방·쪽방·고시원·여관·컨테이너·비닐하우스에서도 화재와 수재, 폭염, 혹한으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나 주거비 지원 같은 주거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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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