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항공 성범죄 ‘입꾹닫’ 회장님, 왜?

상사에 당했고 회사가 버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한항공의 성범죄 사건 대처가 점입가경이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도 밟지 않은 데 이어 사직서를 받아들여 논란이 됐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자와의 민사소송을 재판부가 조정하자 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조차 이번 대한항공의 항소는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사측이 성범죄 사건 1심 민형사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항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A씨가 피해를 본 것은 5년 전이다. 수치스러운 사건이라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고 조용히 처리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실상 가해자 편에 서서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사측의 행태에 분노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동료들의 수군거림, 집단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했던 대한항공은 오히려 A씨를 향한 2차 가해를 방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속된 피해
모르쇠 일관

2017년 여름 가해자는 업무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부하직원을 외부로 불러내 성폭행하려 했다. 그러나 피해자 A씨는 과거 성희롱 사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경험했기에 쉽사리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가해자와 직원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과 인사상 불이익 등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A씨는 회사에 해당 사건을 알린 후 갑자기 서비스 클리닉 입과자로 통보받았다. 서비스 클리닉은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자아비판 프로그램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망신주기, 징벌적 조치라고 느낄 수 있다.

A씨는 사측에 가해자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추가 피해는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A씨의 의견서에 단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대한항공은 피해자의 첫 번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군지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A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피해자 보호를 절대 원칙으로 이후 모든 처리 절차를 피해자 측과 상의해 결정했고, 피해자 변호인은 징계위원회 개최 시 가해자의 사직서를 조속히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가해자가 추가 피해를 저지른 게 없는지에 대한 조사 요구는 접수된 바 없다”는 거짓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피해자 측이 위원회 구성원들과 피해 사건의 내용을 최소한만 공유했고, 여러 차례에 걸치게 되는 상벌위원회 기간 등을 고려해 별도의 징계 절차 없이 가해자에게 사직서 처리를 요구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사측과의 면담 당시 ‘가해자 징계’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이 먼저 징계위원회를 열면 피해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수 있기에 ‘가해자를 따로 불러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 사직서를 받는 형식으로 사건 종결 처리가 가능하다’고 거론했다고 한다.

특히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거치지 말아 달라고 전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이 피해자에 대한 추가 조사 요구가 있었음에도 없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지적이다.

성폭력 피해자 압박에 사건 축소 시도
가해자 징계 없이 퇴사 처리 속전속결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재빠르게 인정하도록 압박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처음이자 마지막 면담이 진행된 날 퇴사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라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통상 임직원이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으면 타 회사로의 이직이 힘들어진다. 대한항공이 가해자에게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징계를 면치 못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직서 제출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해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한 대한항공의 행태에 분노한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강간미수)·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 혐의로 진정을 넣었다. 고용 당국은 현장조사를 통해 A씨가 제기한 내용을 확인하고 사건 당사자 간의 면담을 진행했다.

당국은 대한항공이 가해자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지연 조사, 피해자 보호 소홀,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나 비밀누설 금지 등은 혐의가 없으며 다만 대한항공 직장 내 괴롭힘은 있다고 봤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관련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 B씨의 괴롭힘 행위는 2019년 1월로 법 시행일인 2019년 7월16일 이전이므로 처벌이 불가하다고 해석했다.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처벌하지 못할 뿐 비상식적 행위는 존재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대한항공 내 성희롱 재발방지 및 상호 존중하는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조직문화 점검, 맞춤 전문교육 실시, 고충상담 전담자 지정 등에 대해 개선 지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방관한 회장
의견서 무시

대한항공의 방관으로 A씨는 수면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배포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성폭행·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나 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제재를 결정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 이전에 회사는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대한항공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태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조정 결정사항을 통해 “피고 주식회사 대한항공은 외부 컨설팅업체에 위임해 회사 내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태를 전주조사하고 그 조사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피고 회사가 원고(피해자) 측과 협의를 통해 가해 직원을 사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또는 노동조합을 통해 사실과 다른 언론 보도가 지속적으로 나옴에 따라 피고 회사 내·외부의 오해가 심화되고 있다”며 법원의 판단에 불복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직장 내 성폭력에 기업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유영일 부장판사)은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5000만원으로 정하고 이 중 1500만원을 대한항공이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는 손해배상액 5000만원 중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조정으로 지급한 35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다.

재판부는 “성희롱 방지 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 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감독상의 미비가 있었다”며 “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 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가해자)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직 쉽게?
취업 돕기

앞서 2020년 7월 A씨는 가해자와 대한항공(대표이사 조원태·우기홍)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1월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가해자만 받아들이면서 피고는 대한항공만 남게 됐고, 2년간 진행된 1심 재판의 결과는 ‘대한항공의 1500만원 손해배상금 지급’이었다.

재판의 쟁점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대한항공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했는지 여부였다. 민법 756조에는 ‘타인을 사용해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대한항공)는 피용자(가해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해 제3자(피해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가해자의 성폭력이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정돼야 대한항공의 손해배상 책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건 당시 가해자가 휴가 중이었던 상황이라, 대한항공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사무집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란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간미수 행위가 비록 휴가 중 행해진 것이긴 하나 (가해자는)원고에 대한 업무 감독과 평정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로 복귀할 예정이었다”며 “(업무 관련)설명을 빌미로 원고를 불러 (강간미수 행위가)감행된 것이어서 그 배경과 동기가 외관상 업무와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위험군에 속할 것으로 보이는 ○○○(가해자)에 대해 성희롱 방지 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 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감독상 미비가 있었다”며 “민법 756조를 그 존재 이유 중 하나인 피해자의 보호 강화라는 취지와 함께 객관적으로 살피면 (가해자의)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 측이 지적한 가해자 사직 절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남녀고용평등법과 대한항공의 취업규칙에 따라 (성폭력 발생 후)대한항공이 가해자를 징계할 의무가 있었다”며 “더욱이 (대한항공은 사내)조사 과정에서 모순된 변명을 하며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직원(가해자)을 징계하지 않았고 그 입장을 원고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채 사직 처리를 함으로써, (피해자는)형사고소 등 권리행사를 할 기회마저 상실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민사 조정…항소 후 회유
조사 요청 모르쇠로 일관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가)일부 세부 항목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 (성폭력의 사실관계에)수긍했고, 나아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관계의 종료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징계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피고(대한항공)의 입장에 면담 당일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는 징계 절차를 밟아서 도달하는 해고와 결과의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불복했다. 이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타 기업들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법원 홈페이지 내 사건번호 조회 시스템으로 사건 진행 내용을 보면 대한항공은 지난 8일 소송대리인(법무법인 한결 담당 변호사 이경우)을 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다음 날인 9일 대한항공 소송대리인 측은 보정명령 등본까지 받았다.

대한항공은 오히려 A씨에게 노조 활동을 중단하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재발방지에 나서겠다고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 회유에 나섰다. 또 언론에 보도된 대한항공 성폭력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를 피해자가 요청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다른 기업은 어떨까? 대다수의 기업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 같은 압력과 비상식적 행위로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외면하지는 않는다. 오너가 직접 공식 입장을 밝히거나 심각한 경우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이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성 윤리 위반 제로 회사’를 만들겠다며 사내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사건 초기의 미온적인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삼성, LG,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성 비위와 관련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일부 권위주의적 문화가 남아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호텔신라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6년 호텔신라 입사 2년 차인 20대 여성이 같은 팀 상사로부터 세 차례 강제추행을 당했다.

성추행 발생 직후 직속 상사에게 보고했으나 회사 정식 조사는 2년 뒤에야 진행됐고,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다가 결국 피해자만 원치 않는 부서로 인사이동됐다. 고용노동부조차 가해자의 부서 이동이 불가능했다는 회사 쪽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도의적 책임?
“우린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간부는 “성추행 전력이 있는 사람이 임원을 달기도 했고, 성추행 장면이 찍힌 사진까지 나온 팀장급 직원은 보직해임을 당하고 좌천됐지만 여전히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3월까지 국내 금융사의 사내 윤리강령 위반 총 220건 중 성희롱·성추행 관련 징계가 76건으로 가장 많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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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