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윤석열 대통령 불신과 한계

벌써 탄핵? 욕먹다 날 샐라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분명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이 별 의미 없다”며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지지율 하락이 심상치 않다. 이 정도면 하루하루가 고비다.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게 무리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어려워진 상황을 헤쳐나갈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어느덧 100일(오는 17일)째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탄압을 받던 인사로 등장부터 정치권에서 주목받았다. 0선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부족한 정치경험이 약점으로 부각됐지만 진보, 보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중도층의 지지를 받기에도 충분했다. 

인사 실패
쇄신 필요

대선 기간 동안 파격적인 공약으로 유권자들은 윤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10년 주기설을 깨고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순간이다.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와는 0.73%p 차이가 났다. 득표 수로 환산하면 24만여표로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최소 격차다. 

윤 대통령의 승리 원동력은 정권교체 여론이었다. 문정부의 내로남불, 부동산정책 실패 등은 국민에게 실망감과 분노를 안겼고, 정권교체의 배경이 됐다. 일각에서는 정치에 때묻지 않은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당선 직후 윤 대통령에게는 반쪽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으나 초반만 해도 문정부와 반대 길을 걸으려는 방향성으로 기대하는 이도 많았다. 초기 윤 대통령이 내세운 기조는 국민 대통합이었다. 


윤 대통령의 국민 통합 기대감은 광주의 투표 결과에서도 알 수 있었다. 광주에서 윤 대통령의 득표율은 12.72%를 기록했다. 보수정당의 대통령이 기록한 최다 득표율이다. 광주 득표율에서 국민 통합 가능성을 확인한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다.

윤 대통령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보수정당 역사상 유례없던 일이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게 된 계기였으며 한미정상회담 역시 성공적으로 평가받았다.

일본보다 먼저 한국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찾은 점과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빠르게 정상회담을 가진 게 이례적이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윤 대통령에게 5년 국정을 운영할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셈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초반과 다르게 최근 윤 대통령은 역풍을 맞는 중이다. 50% 가까이 되던 지지율이 최근 반 토막 수준이다. 취임 100일 만에 위기를 맞은 셈이다. 최근 지지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과 엇비슷해졌다.

지지율 하락이 빠른 이유로 여러 요소가 나온다. 인사 문제, 여당인 국민의힘의 혼란, 민생 문제, 경제 대책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점은 인사 논란이다. 인사 참사라고 불릴 만큼이다. 대통령실 인사 문제는 장관 및 후보자의 자질 문제, 사적 채용 논란 등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사와 사적 채용
민생 회복 최우선으로 못하면 역풍

최근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낙마하면서 첫 현직 국무위원의 사퇴로 기록됐다. 박 전 장관은 임명을 강행했을 때부터 논란이 된 인물이다. 음주운전, 논문 표절 등 의혹이 끊임없이 터져나온 까닭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벌써 6번째 인사 실패 사례다. 현 정부의 1호 낙마자는 아빠 찬스 등의 논란으로 사퇴한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였다.

김인철 후보를 비롯해 줄줄이 낙마가 이어졌다.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김성회 대통령 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사퇴에 이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까지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이후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를 새롭게 발탁했으나, 정치자금 사적 사용, 갭투자 의혹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승희 후보를 대검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사퇴가 불가피했다. 

정 후보자에 이어 같은 정부부처 장관 후보가 연속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로 기록됐다. 김승희 후보는 지명 직후부터 부동산 갭투자 의혹과 정치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승희 후보를 대검찰청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면서 낙마가 불가피한 상황에 몰렸다.

이로 인해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전히 공석이다. 코로나19가 재창궐한 가운데 방역대책에도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의 과학 방역도 의문이 제기된다. 윤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자율방역이다. 4차 접종 대상을 50세로 확대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게 골자다. 

사적 왕국
대통령실?

이 밖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는 과거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가 지명 일주일 만에 사퇴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가 낙마한 후로 새 인선 진행을 머뭇거리는 중이다. 더 이상의 인사 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무위원 등 인사 실패만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에서 채용한 인사들 역시 사적 채용 의혹이 잦았다. 사적 채용 논란의 시작은 윤 대통령 부부가 스페인 마드리드 방문길에 올랐을 때부터 본격화했다.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가 한동안 대통령실에 출근해 채용 절차를 밟은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또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광주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주기환 후보의 아들이 대통령실 6급 행정요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주 후보는 윤 대통령과 20년 전부터 인연이 있다. 과거 광주지검에서 윤 대통령이 근무할 당시 검찰 수사관으로 함께 일했다. 윤 대통령과 광주서 마지막 술자리도 함께 갖기도 했다. 

사적 채용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외가 6촌과 극우 유튜버 안모씨의 누나 등이 대통령실에 근무했다는 사실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천으로 지인의 근무, 김건희 여사의 대학원 최고위 동기 등이 일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대선 승리에 공언했고, 역량을 인정받은 인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여론의 공격 대상 중 하나다. 지난 3일 밤 방문했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입국 당시 한국 측에서 아무도 의전을 나가지 않았다. 이날 윤 대통령은 휴가 중으로 저녁에 연극 관람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국 내 서열 3위로 의전 책임을 두고 여야는 한때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대통령실이 급히 해명에 나섰으나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탓에 대통령실을 비롯한 인사 전체에 걸쳐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쇄신 대신 분발을 촉구하며 내각에 대한 신임을 드러냈다. 그는 본래 한번 신임한 인물은 끝까지 믿고 가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현재 검사 출신, 윤 대통령 라인이 각 부처에 수장 혹은 핵심 인력으로 포진돼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정운영을 이끌어가는 데 주요 동력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민생 파탄
신뢰 하락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경제 및 민생 대책 해결 역시 문제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휴가 복귀 직후 윤 대통령은 민생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운을 뗐다. 민생 안정을 통해 지지율을 회복하게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폭우가 불어닥치면서 민생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생겼다. 


농산물 출하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고물가, 고금리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윤정부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민생 안정 대책으로 물가 안정을 위해 성수품 공급을 역대 최대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일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윤정부의 성수품 가격 대책이 과거 이명박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취임 이후 5번이나 비상경제민생회의를 개최했다. 만일 민생 안정을 꾀하지 못할 경우 윤 대통령에게는 큰 역풍이 불어닥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윤정부에 대한 정책 신뢰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이 독선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만 5세로 낮춘다는 학제 개편 정책은 신뢰를 한층 더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학부모, 유치원 교사가 하나로 뭉쳐 해당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전 정부도 해당 정책을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본격화하지는 않았다. 

정책의 혼선이 연이어 나오자 결국 윤 대통령의 브랜드가 무엇이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전 정부들은 대부분 뚜렷한 국정 철학과 브랜드, 비전을 내세워왔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부분은 명확한 편이었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문재인정부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고 있지만 아직까진 불명확해 보인다. 이런 탓에 최근 민주당은 사실상 무정부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윤정부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수사를 통해서 바로 잡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윤정부의 국정 철학은 수사처럼 비친다”며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비전을 다시 밝히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책 실종은 여당의 내홍과 궤를 함께한다.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이긴 당답지 않게 내홍을 겪는 중이다.

처가 리스크 여전히 최대 약점
공정과 상식 잣대 더욱 엄격히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간신히 윤핵관 세력이 이준석 대표를 끌어내리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장외투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오랜 기간 장외 투쟁이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이 이 대표뿐이 아닌 국민의힘 전체에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급히 비대위 체제를 꾸렸지만 이 대표가 결사 항전하면서 좀처럼 수습이 되지 않는 모양새다. 내부에서조차 민생 대책과 정책은 뒷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처가 리스크는 여전히 윤 대통령에게 걸림돌이다. 대선 기간에도 윤 대통령의 처가 리스크는 최대 약점 중 하나였다. 김건희 여사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여러 이슈들이 불거진다. 지인 동행 논란이 불거진 이후 김 여사는 한동안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윤정부가 스스로 김 여사를 리스크로 여겼던 것으로 풀이된다. 

김 여사는 최근 대선 기간 동안 제기됐던 국민대 논문 표절 논란이 재차 수면으로 떠오른 모양새다. 국민대 자체 조사 결과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났지만, 숙명여대 교수들은 “표절이 상당하다”고 발표하면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치권에선 김 여사 등 처가 리스크와 관련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며 명확히 매듭을 짓고, 엄격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처가 리스크는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이다. 여전히 주가 조작, 윤 대통령의 장모인 최모씨의 양평 땅 논란 등이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특별감찰관의 임명 필요성을 제기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의 잣대를 더욱 엄격하게 들이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대선후보가 아니다. 상대 후보도 없다. 남은 기간도 현재 해온 만큼 절대평가만 내려진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현재 지지율 하락이 윤 대통령이 처한 모든 상황을 대변한다”며 “국정운영에서 아마추어라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100일을 맞이해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메시지와 다짐, 생각과 판단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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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