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15세기 초원 인류 최초 골프볼

골프볼의 시초는 어떤 것이었을까. 15세기 초원에서 목동들이 주워서 친 최초의 볼은 돌멩이였다. 그렇다면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서 썼던 볼은 무엇이었을까.

 

 

골프가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볼은 새의 깃털과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페더리볼로, 1486년 최초로 공식 문헌에 기록됐다. “리차드 클레이스라는 상인이 네덜런드에서 스코틀랜드로 한 박스의 페더리볼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1618년 어느 날 스코틀랜드 왕실과 귀족 전용의 5홀짜리 리스골프장. 헤드 코치를 맡고 있던 장인 앤드루 딕슨은 이른 아침부터 인근 양계장을 찾았다.

골칫덩이

거위 깃털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페더리볼을 만드는 속 재료로는 거위털만 한 게 없었다. 닭이나 오리털은 내구성이 문제였다. 깃털 볼을 만드는 데 재주와 명성이 있던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괴팍한 장인’이라고 불렀다.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그는 작품을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면 재료를 그대로 내동댕이치면서 중절모 여러 개에 가득 채울 만큼 거위 깃털을 허비하기도 했다. 중절모 한 가득이면 한 개의 볼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마침 좋은 깃털을 구한 딕슨은 기분 좋게 리스 공방으로 돌아와 펄펄 끓는 가마솥을 열고 거위털을 한 무더기 집어넣었다. 순이 죽어 걸쭉하게 삶아진 깃털을 꺼내 한 움큼씩 짜서 물을 뺀 다음, 미리 만들어 놓은 가죽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가죽주머니란 볼을 만드는 바깥 주재료를 말하는 것으로, 어린 송아지나 암소의 얇고 질긴 내장 혹은 낭심을 잘라 여러 차례에 걸쳐 백반을 입히면 찢어지지 않고 질기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머니를 꿰매는 게 다음 차례다.

새 깃털 사용한 초창기
귀족용 고가품 대접 

왁스칠을 해 단단해진 노끈으로 바늘귀에 꿰어 동그랗게 가죽 주머니를 바느질한다. 주의할 점은 꿰매진 면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가죽을 뒤집어주는 일이다. 이때 가죽을 모두 꿰매는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공간은 남겨둔다. 작은 구멍으로 걸쭉하게 삶아진 거위털을 구겨 넣듯 채운 뒤, 남은 공간을 마저 꿰매고 말리면 비로소 가죽볼 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딕슨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볼에 예술가적 기질과 혼을 집어넣는다는 생각에 그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볼을 말리는 마지막 과정은 더욱 정교함을 요구한다. 안에 들어간 거위 털은 마르면 팽창을 하는 반면, 겉의 가죽은 마르면 수축되는 상호 반대되는 성질로 공은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진다.

주의할 점은 단단해지기 전에 손으로 천천히 굴리면서 완벽에 가까운 둥그런 모양을 만드는 일이다. 바로 장인들의 손재주를 판가름하는 순간이다. 남은 일은 자신의 이름을 가죽에 새기는 것이다. 이틀간 공을 말린 뒤 혹여 골프장에서 비에 젖거나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다시 쭈글쭈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죽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붉은 페인트칠을 하기도 했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만큼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던 관계로 귀족들이나 부호들만이 페더리볼로 골프를 즐겼고, 일반 서민들은 엄두를 못 냈다. 대신 서민들은 여전히 돌맹이나 나무로 만든 볼, 혹은 귀족들이 잃어버리거나 물이 들어가 못 쓰게 된 볼들을 주워 치곤 했다.

비가 많이 내리고 항상 습기가 차 있는 스코틀랜드 날씨 특성상 페더리볼은 항상 골프장에서 골칫덩이였다. 클럽으로 찍혀 맞았을 때는 쉽게 찢어졌고, 물에 젖으면 팽창돼 있었던 깃털이 안에서 쪼그라들어 볼은 으깨진 토마토처럼 푸석푸석하게 변해 버렸다.


이 때문에 골퍼들은 적어도 하루에 5~6개 볼은 들고 나가야 했다. 수요는 많은데 제조는 한정되어 있었다. 하루에 장인 한 사람이 만드는 볼은 기껏해야 4~5개에 불과했다.

높은 사람들로부터 제조업자들이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힘든 공정으로 수백년 동안 페더리볼을 만드는 장인들은 왕실이나 귀족들에게 지정되면서 가문을 이어 혜택을 받는 수혜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지역마다 독점으로 볼을 생산했다.

형편없던 내구성
건강 해친 수작업

어렵게 만들어진 페더리볼은 비거리가 얼마나 됐을까. 대략 150에서 180야드는 족히 나갔고, 딱딱하게 굳어져 돌덩이 같지만 가벼웠던 탓에 바람을 타면 200야드 이상도 가능했다.

불행히도 17세기 만들어진 페더리볼이 아직까지 원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보존 상태가 완벽하면 2억원을 호가하는데, 현재 경매되는 페더리볼들은 대개 19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페더리 볼을 만드는 장인들은 명성의 뒤안길에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가죽볼은 수백 년간 골프의 화두였다. 장인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비싼 댓가를 치러야 했다.

거위 깃털을 만질 때 생기는 발암물질이 폐렴이나 폐암을 유발했고, 대다수의 장인들이 폐렴으로 사망했다. 가장 많은 볼을 만든 알렌 로버트슨도 예외없이 폐암을 동반한 황달로 죽었다. 평생 총 2456개의 공을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는 그 역시 6대째 왕실 전용 볼을 만들어 오던 전통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장인들만이 겪는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특권층 독점

볼과 클럽 제조업자였던 장인들은 훗날 자연스럽게 프로 골퍼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신흥계층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굳혀갔다. 그렇게 수백 년간 골퍼들과 함께한 가죽볼은 1848년을 끝으로 새로 발명되어진 값싸고 만들기 쉬운 혁명적인 고무공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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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