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작심 쓴소리

“윤, 모르면 DJ를 배워라”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DJ처럼 해야 한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윤석열정부를 향해 던진 말이다. 윤정부는 쌓인 숙제도, 고쳐야 할 부분도 너무 많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민생은 뒷전이다. 인터뷰 내내 박 전 원장은 정치권을 향해 작심하고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항상 수첩 2개를 가지고 다닌다. 메모장에는 계획과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이 빼곡했다. 최근에는 섭외 대상 1순위다. 하루에 5개 일정을 소화할 정도다. <일요시사>는 박 전 원장에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정치 현안,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을 물었다. 다음은 박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하셨습니다. 

▲무엇으로 고발했는지 전 모릅니다. 국정원에서 저에 대해 법적으로 감찰하게 돼있는데 감찰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전직 국정원장님을 이렇게 고발합니다’하고 전화 한마디라도 해야 되는데, 그 예고도 안 하고 “고발됐다”고 했습니다. 가끔 기자들한테 내용을 들어서 그때그때 기자의 질문에 답변할 뿐입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건 제가 설명하면 국정원법 위반이 됩니다. 밝힐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7시간, SI,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보고는 받았습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됐습니다.

▲훌륭한 외교관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동서남북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국정원에는 검찰 간부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우리가 하던 짓을 국정원도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검찰의 시각으로 국정원 정보기관의 잣대를 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방부도 해명이 오락가락합니다.

▲MIMS(밈스·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를 국방부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국정원장이 삭제합니까? 군사 기밀이 다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첩보보고서를 삭제했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첩보보고서도 국정원은 모든 직원이 쓰는 PC는 메인 서버에 자동적으로 저장이 돼있습니다.

제가 삭제를 지시했어도 (기록이)남아 있고, 삭제됐어도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나는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더니 이제는 ‘청와대 지시받고 했다. 또 비서실장한테 지시한 뒤, 그 비서실장이 담당자에게 삭제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압수수색을 했다고 하면 그런 걸 이미 검찰에서 알았을 겁니다. 

“정보 삭제 지시 절대 없었다”
머지않아 내각 개편 있을 듯

-확실히 없나요. 


▲저는 삭제한 적 없습니다.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을, 문정부를 향한 공격이라고 보시는지.

▲저와 서훈 전 원장을 아무 소식 없이 검찰에 고발하는 게 이해가 안됩니다. 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얘기한 것처럼 ‘문재인정부의 본격적인 사정을 시작하는 거다’ ‘문정부를 용공, 친북 정부로 규정해서 보수 정권이 본격적으로 차례로 사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검찰에서는 따로 연락은 없었나요.

▲없습니다. 

-사실 정보 삭제를 안 했다는 말도 있는데.

▲저도 처음으로 MIMS라는 정보체계를 알았습니다. 국정원에도 와 있답니다. 국방부는 본인들이 MIMS를 관리하는데, 전군에 다 깔려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떠한 SI에 대해서는 열람을 제한하는 거지, 삭제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이후 삭제했다고 보도가 되니까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MIMS는 우리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국정원장이 삭제했다고 해서 우리 군사 비밀 체계가 이렇게 탄로나게 하느냐. 오히려 국정원을 조사하겠다” 하다가 이제 “첩보보고서를 박 전 원장이 삭제했다”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첩보보고서는 생산되면 메인 서버에 남습니다. 제가 삭제 지시를 해도 남습니다. 제가 왜 그 짓을 합니까? 

-윤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 있어 보입니다. 

▲지금 이미 역풍이 불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하는지, 검찰이 하는지 모르지만 언론 플레이를 계속합니다. 마치 국민이 믿을 수 있게끔 오늘은 이 언론사에 주고, 오늘은 저 언론사에 주고… 그러면 언론사는 ‘단독’이라고 해서 보도가 이어집니다. 또 다른 언론사는 저한테 전부 물어서 보도합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부터 저와 개별적으로 잘 압니다. 피의 사실 공표를 안 하겠다고 하는데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을 중시한다면, 고발 진행 후 저에게 무슨 내용으로 고발됐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안 알려줍니다. 계속 피의 사실 공표를 해서 옥죄고 있지만 전 걱정 없습니다. 


“윤석열 지지율 더 떨어진다”
어대명에 대적하려면 단일화

-정말 걱정되지 않으시나요.

▲저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정부 15년 간 검찰 조사를 받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살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윤석열정부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고)국민 속으로 파고들면서 소탈한 모습과 솔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같은 게 잘못도 있지만 소통을 하려고 하는 진실성이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도어스테핑을 계속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소통은 계속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참모에게 발언을 검토받고 정제된 언어를 국민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과 영국 총리도 도어스테핑은 매일 하지 않습니다. 이슈가 있을 때 참모들의 검토를 받아 쓱 한마디 던지고 갑니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씩 출입 기자들과 허심탄회한 간담회를 통해서 소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최근 인사 문제 등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채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 지시지만, 지금 대통령실 내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대통령밖에 안 보입니다. 대통령이 본변인입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실 또는 내각이 그런 역할을 해야 제 구실을 한다고 봅니다. 윤 대통령이 만약 실수하면 자기들이 나서서 해명도 하고 책임도 지는 그런 대통령실을 좀 보고 싶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늘 이전 정부를 겨냥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정(공직자 및 기관 감찰)하되, 간단하고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저기에 몰두할 게 아니라 경제, 물가를 잡는 대통령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모든 인사나 정책은 ‘실패한 MB 시즌2’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윤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참모들도 각성해서 윤 대통령을 보필해야 성공하고 나라가 삽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치는 상식입니다. 제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생각이 중요합니다. 윤 대통령께 몇 가지를 고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인사입니다. 검찰공화국. 특히 남북 분단과 동서 갈등이 심화된 게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인데 윤 대통령이 말한대로 ‘실력 위주의 인선’이라고 해서 특정 지역을 완전히 배제해버리면 그 지역 사람들은 실력이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둘째 김건희 여사의 공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제2부속실을 폐지했더라도 국민의 양해를 구해서 부속실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공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지율이 더 떨어질 거라고 보시는지.

▲긍정과 부정의 비율 차이는 30%p가 넘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20%대로 떨어집니다. 과거 이 전 대통령 때, 박 전 대통령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실에 대한 책임관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문 전 대통령 때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사과하고, 박 전 대통령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5개월 만에 물러나고, 4개 수석이 경질됐습니다.

이런 걸 보더라도 저는 윤 대통령은 머지 않아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을 할 거라고 봅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어떻게 대통령한테 책임 추궁을 합니까. 인적 개편이 있지 않으면 국민이 납득하지 못합니다. 

“이미 윤정부 향한
역풍 불고 있다”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갈등이 깊었습니다.

▲국회는 여야 협상으로 이뤄집니다. 윤 대통령은 늘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도 협치를 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난만 하면 협치가 될 리 없습니다. 국회가 어려운 시대에 정상화되지 않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면 윤 대통령이 소통을 제대로 해봤는가, 노력을 해봤는가도 지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은 협상을 통해서 실리를 택하고 국회가 정상화되도록 하고, 야당에게는 명분을 줘야 합니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다 먹겠다는 건 안됩니다. 

여야가 모두 공히 책임이 있지만 정부여당한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당과 함께 가야 합니다. 

-청년 정치인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제가 과거에 토사구팽된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로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촉망받는 청년이 보수 야당에 가서 2030세대의 지지를 받고 혁신하고, 정권교체를 이뤄 윤 대통령을 당선시켰습니다. 지방선거도 압승을 거뒀는데… 그 전에 얘기됐던 성상납 문제가 이제 와서 징계를 받은 것은 억울할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한 건 사실입니다. 승복 못 하면 재심을 청구하든,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대표가 당의 결정에 순종해야 된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자기 길을 가야 합니다. 

-창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은 언젠가 하고 싶다면 자기가 할 일입니다. 뚜벅뚜벅 광주를 가든 부산을 가든, 그러면서 자기 정치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합니다. 그분이 그대로 그냥 꿇어앉을 분은 아닙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선거에 이기고 콩가루가 된 집안입니다. 

-이 대표를 밀어내고 윤핵관 세력과 안철수 의원이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입니다. 

▲정당은 다 그럽니다. 전당대회를 앞두면 지도부에 진입하려고, 당 대표가 되려고 그럽니다. 전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도 주도권 싸움이 한창입니다. 

▲선거에 패배하면 야당은 항상 싸우게 돼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들어앉아서 전준위, 비대위 관계를 잘 정리했습니다. 이제 전당대회로 가는데 ‘친명(친 이재명)이냐, 반명(반 이재명)이냐’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으레 그러는 겁니다. 

-또 다른 청년 정치인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 출마가 불발됐습니다. 

▲박지현 전 위원장이 ‘위원장은 되고, 당 대표는 나갈 수 없다’는 건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 공식기구에서 결정됐습니다. 우 위원장이 박 전 위원장을 만나 설득했다고 하면 과유불급. 이제 당론에 따르고 호의를 도모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말썽이 생기면 국민이 짜증냅니다.

-민주당은 당 대표에 여러 명 출마했습니다.

‘1강6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거는 모르는 겁니다. 선거 결과는 ‘약육강식’할 수 있습니다. 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 됩니다. 1대1로 해도 현재 국민 지지나 당원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이재명 의원이 앞섭니다. 97그룹 등이 뭉쳐 이 의원과 1대1 구도를 만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의원은 압도적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대통령 지지도 이재명이 40%에 가깝게 나옵니다. 그런데 약육이 강식하려면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결국 단일화가 좋아 보입니다. 

-다음 목표가 궁금합니다. 

▲저는 정치인입니다. 대한민국, 호남, 민주당, 김 전 대통령을 위해서 정치활동을 할 것입니다. 또 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조언하겠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 제 혼이 있는 민주당이 잘해서 총선 승리를 하고 정권교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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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