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 길들이기?’ 알아서 기는 국정원, 왜?

역시 살아있는 권력 ‘충성!’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바탕 물갈이가 진행된다. 먼저 인적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정책의 기조가 달라진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정부부처들이 반드시 한 번은 겪는 일이다. 국가정보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상징하는 표현은 ‘음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국정원에 대한 이미지가 ‘비밀스럽다’고 여겨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국정원의 내부 상황이나 행보는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편이다. 

돌 바꾸고

최근 국정원의 내부 상황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는 과정에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2개월 만에 국정원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히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국정원도 딸려 오는 모양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서해상에서 북한 측에 의해 피격해 사망한 사건이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월북’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최근 해경이 당시의 발표 내용을 뒤집으면서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6일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서훈 전 국정원장을 대검에 고발했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북송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어민 2명은 범죄 혐의가 있는 상황이었다. 사건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고 윤정부에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국정원은 “자체 조사 결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 등으로 박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 등에 대해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고발했다고 덧붙였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첩보 등 정보 유실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서훈 고발
“매우 이례적 사건”

박 전 원장은 국정원 고발에 대해 펄쩍 뛰었다. 그는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국정원의 경우 PC를 사용하면 바로 서버로 연결이 된다. 삭제해봤자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면서 “제가 삭제하더라도 (삭제 기록이)국정원 메인 서버에는 남는다. 왜 그런 바보짓을 하겠나”라고 반박했다. 

국정원이 이전 원장을 고발한 것을 두고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두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언급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문정부의 대북 정책과 맞닿아 있다. 윤정부가 출범 두 달 만에 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국이 얼어붙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명백한 정치행위”라며 “그 끝에는 NSC, 그 다음에는 대통령까지 한 번에 물고 들어가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문정부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같은 당 윤건영 의원도 “오직 불순한 정치적 의도만 가득 찬 정치공세”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국정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가 범죄’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두 사건에 윤정부가 주목하는 이유는 반인권·반인륜적이기 때문”이라며 “월북 프레임을 국가가 씌우려 했다거나 북한 입장을 먼저 고려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분의 인권이 침해받았다면 굉장한 국가 범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의 이번 고발이 나름의 ‘빌드업’을 거쳐 진행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인적 물갈이가 이뤄진 후 고발까지 이어진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실제 윤정부는 국정원에서 문정부 색깔 빼기에 골몰했다. 국정원 원훈석을 1년 만에 다시 교체한 것도 그 일환이다. 

문정부 대북 정책 정조준
검찰 물갈이로 수사 강도↑

국정원은 지난달 24일 원훈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교체했다.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이뤄진 결정으로 알려졌다. 교체 이유로 직전 원훈의 서체 논란이 언급됐다.

직전 원훈석 서체는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손글씨를 본떠 만든 글씨체다. 원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었다. 당시에도 신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처벌 전력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교체된 원훈은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당시 제정된 것으로 1998년까지 37년간 사용됐다. 원훈석 역시 1961년 중정 시절 제작된 것을 다시 사용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첫 원훈을 다시 쓰는 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문구 그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정보기관 본연 역할에 충실하자는 의미”라고 직원들에게 밝혔다.  

원훈석 교체를 마친 국정원은 대대적인 인적 물갈이에 나섰다. 국정원은 지난달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취하고 기존 업무에서 배제했다. 국장 아래 직급인 단장을 ‘국장 직무대리’로 보임했다. 당시 윤정부가 국정원 쇄신을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평이 나왔다. 

사람 바꾸고

검찰은 국정원의 고발 하루 만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돌입했다. 각각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와 3부(이준범 부장검사)가 맡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검찰인사가 완료된 만큼 수사 강도는 매우 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사단이 전진 배치된 검찰의 수사가 두 전직 원장을 넘어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겨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정원 원훈 변천사

국정원의 원훈은 다섯 차례에 걸쳐 바뀌었다.


중정 시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김대중정부 때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됐다.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박근혜정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를 거쳐 문재인정부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 각각 채택됐다. 

일각에서는 해외 정보기관 미국 CIA, 영국 MI6 등에서는 첫 모토를 현재까지도 쓰고 있는 반면 국정원의 원훈이 정권교체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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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