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떠나는 여름휴가 ③신안 도초도 ‘환상의정원’

수국과 어우러진 팽나무 10리길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한 시간, 아직 육지와 다리로 이어지지 않은 신안군 도초도(都草島)는 이름처럼 풀과 나무가 푸르른 섬이다. 1000여 개 섬이 모여 ‘천사섬’으로 불리는 신안군에서도 제법 큰 섬이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시목해수욕장을 제외하고 딱히 알려진 관광자원이 없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그런 도초도가 최근 몇 년 사이 신안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도약 중이다. 알록달록 수국이 수백만 송이 피어나는 수국공원에서 시작해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더니, 수국과 팽나무가 어우러진 ‘환상의정원’이 문을 열었다.

수령 70~100년 된 팽나무 7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는 환상의정원은 찬찬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팽나무 아래 수국이 융단처럼 깔리는 6월엔 더욱 좋다. 수레국화와 패랭이, 니포피아 등도 피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도초도의 관문인 화포선착장에서 약 3.5㎞에 이르는 수로 둑에 팽나무가 늘어섰는데, 10리가 좀 못 되지만 ‘팽나무 10리길’이라 한다.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이곳에 팽나무 10리길이 조성된 사연이 재미있다. 아름드리로 자라 마을의 당산나무로 대접받는 팽나무는 신안군의 보호수 가운데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환상의정원에 있는 팽나무는 대부분 물 건너 외지에서 왔다. 일부는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대개는 고흥과 해남, 장흥 등 전남 해안 지역에서 기증받아 옮겨 심었다. 논밭 한가운데나 수로 둑에 있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팽나무가 주 대상이었다. 멀리 타향에서 환상의정원으로 온 팽나무는 저마다 출신 지역을 표시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팽나무는 기증받았지만 옮기는 데 돈과 품이 많이 들었다. 대형 트럭에 큰 나무를 싣고 연륙교를 달려 암태도까지 이동한 뒤, 배를 타고 도초도에 들어왔다. 도초도에 팽나무 10리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 반응은 처음에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에 방해가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팽나무가 앞으로 도초도를 먹여 살릴 거라는 이야기에 여론이 바뀌었다. 주민들이 힘을 보태 완성한 환상의정원은 지난해 산림청이 주관하는 ‘녹색 도시 우수 사례 공모전’ 가로수 부문에서 수상했다.

환상의정원을 걸으며 보는 풍경도 훌륭하다. 팽나무 10리길과 나란히 흐르는 월포천은 농업용 수로지만 강처럼 널찍해 제법 운치가 있다. 바람이 잔잔한 날엔 월포천 수면에 비친 팽나무가 또 다른 길을 이루고, 저 멀리 야트막한 오봉산까지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향후 월포천에 나룻배를 띄울 계획도 있다니, 그때쯤에는 팽나무가 좀 더 굵어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할 듯하다.


팽나무 10리길 끝자락에 자리 잡은 수국공원은 환상의정원과 ‘환상의 짝꿍’이다. 2019년 문을 연 수국공원은 축구장보다 170배쯤 큰 부지에 다양한 수국을 테마로 조성했다. 여기에 산수국, 나무수국, 불두화 등 수국 15종3만여 그루, 애기동백나무와 향나무 등을 심었다. 해마다 6월이면 형형색색의 수국 수백만 송이가 피어 장관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해 랜선으로 치른 신안섬수국축제가 6월 하순에 열린다.

풀과 나무가 푸르른 섬
신안군 대표 관광지 도약

아담한 언덕을 따라 들어선 수국공원 정상은 평평한 잔디밭이다. 사방이 확 트여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현대미술의 거장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지의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신안군이 추진하는 ‘1도 1뮤지엄’ 사업 가운데 하나로, 도초도와 다리로 연결된 비금도에는 ‘바다미술관’, 인근 자은도에는 ‘인피니또뮤지엄’을 세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향나무 산책로는 수국공원의 또 다른 비경이다.

수국공원에서 1㎞쯤 떨어진 곳에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가 있다.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에 쓴 어류학서다. 이 책을 쓴 과정을 이준익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지난해 개봉했다. 영화의 주 무대는 정약전이 살던 초가인데, 흑산도가 아니라 도초도에 세트장을 지었다. 앞뒤가 뚫린 마루에 앉으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이 멋진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산어보〉 촬영지는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됐다.

영화는 극장에서 내린 지 한참 지났지만, 바다가 보이는 초가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입구에 〈자산어보〉 촬영지 표지와 함께 이곳에서 촬영한 장면이 있다. 흑백으로 찍은 영화 속 장면과 총천연색 현장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물이 있는 마당에 서면 초가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도초도 남쪽의 시목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눈부신 해변이다. 산이 병풍처럼 삼면을 둘러싼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앉았다. 쪽빛 바다를 따라 황금 모래가 2.5㎞나 펼쳐지고, 다도해 섬이 천연 방파제가 된 덕분에 잔잔한 물에서 해수욕하기 알맞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송 숲 사이에 있는 산책로도 일품이다. 솔숲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오토캠핑이 가능한 야영장이 있다.

하누넘해수욕장


도초도와 다리로 연결된 비금도에는 색다른 해변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하트 해변’으로 유명한 하누넘해수욕장이 그곳이다. 해수욕장 옆 언덕 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 하트를 빼닮아 이런 별명이 붙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드라마 〈봄의 왈츠〉(2006, KBS)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관광지가 됐다. 비금도는 도초도보다 육지로 연결되는 배편이 많아 가기 편리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환상의정원, 수국공원→〈자산어보〉촬영지→시목해수욕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환상의정원, 수국공원→〈자산어보〉촬영지→시목해수욕장 
둘째 날: 하누넘해수욕장(하트 해변)→대동염전→이세돌바둑기념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신안군 문화관광 https://tour.shinan.go.kr

문의 전화
- 도초면사무소 061)240-4007
- 천사대교관광안내소 061)261-6004
- 신안군청 문화관광과 061)240-8685

대중교통
[버스] 서울-목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8회(06:00~23:55)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목포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번 일반버스 이용, 여객선터미널 정류장 하차, 약 30분 소요.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도초도행 여객선 하루 4회(07:50~16:00) 운항, 약 1시간 소요. 도초여객선터미널에서 환상의정원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목포종합버스터미널 1544-6886 동양훼리 061)243-2111~4, www.ihongdo.co.kr 남해고속 061)244-9915~6, https://namhaegosok.modoo.at
[기차] 용산역-목포역, KTX 하루 19회(05:10~21:21)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서울역-목포역, KTX 하루 7회(06:24~19:36) 운행, 약 2시간40분 소요. 목포역 정류장에서 1번·2번 일반버스 이용, 여객선터미널 정류장 하차, 약 30분 소요.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도초도행 여객선 하루 4회(07:50~16:00) 운항, 약 1시간 소요. 도초여객선터미널에서 환상의정원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동양훼리 061)243-2111~4, www.ihongdo.co.kr 남해고속 061)244-9915~6, https://namhaegosok.modoo.at

자가운전
무안광주고속도로 무안공항톨게이트→압해로 송공리선착장 방면→천사대교 암태면사무소·자은 방면→중부로 암태남강선착장 방면→암태남강항여객선터미널→카페리 이용, 비금가산여객선터미널→서남문로 수대선착장 방면→도초서길 수국공원 방면→환상의정원

숙박 정보
- 코리아모텔: 도초면 불섬길, 061)261-8800
- 시목야영장: 도초면 시목길, 061)275-1339
- 호텔목화: 목포시 만호로38번길, 061)244-8399, https://hotelmokhwa.modoo.at

식당 정보
- 보광회타운(간재미회무침): 도초면 불섬길, 061)275-2136
- 섬초랑민어가(섬초시래기갈비찜): 도초면 시목길, 061)275-2235
- 목포돌게장백반(돌게장백반): 목포시 해안로, 061)243-7142

축제·행사 정보
신안섬수국축제: 6월 하순, 수국공원 일원, 061)240-8685

주변 볼거리
만년사, 우이도, 비금도 명사십리해변, 선왕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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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