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게임’ P2E 시장 막전막후

떨어지지 않는 ‘도박’ 꼬리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P2E(돈 버는 게임) 게임의 규제완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정부가 보인 친기업 성향 정책과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P2E 게임 규제완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윤정부가 후보 때와 달리 게임정책에 관심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 불분명한 미래에 국내 게임 개발사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조상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자문위원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P2E는 스포츠의 일종인 게임으로서 능력치, 시간, 에너지 투입의 대가로 대체불가 토큰(NFT)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안 된다”며 “게임 아이템이 법원에서 재화로 인정받았고, 개인 간 재화 거래를 통해 형성된 시장가격이 불법일 수 없는 만큼 법률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잇따른 소송
기대감 상승

P2E란 사용자가 게임을 하면서 획득한 재화나 아이템을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자산으로 활용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 내 재화를 환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도 P2E 게임과 관련해 사행성 및 환금성을 지적하며 등급을 내주지 않고 있다.

게임위는 지난해 P2E 게임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의 등급분류를 거부한 바 있다. 이에 반발한 무돌 삼국지 개발사 리트리스와 파이브스타즈 개발사 스카이피플은 법원에 가처분·집행정지 및 행정소송을 걸었다.

무돌삼국지 개발사 리트리스는 1·2심 모두 기각 판정을 받으며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됐다. 파이브스타즈 개발사 스카이피플은 지난해 6월 가처분·집행정지에 대해 승소를 거뒀지만, 아직 사행성 위반에 대한 행정소송이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해 11월 게임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 변론기일에 앞서 스카이피플 관계자는 “이미 기존 게임들도 외부 아이템 거래소 등을 통해 아이템 거래를 상당 금액 규모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NFT 기술이 도입됐단 것만으로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내 첫 사례기 때문에 재판과 관련해 외부 노출을 자제하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해당 재판은 NFT 게임의 국내 서비스 허용 여부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인 만큼 국내 게임업계의 주목도가 크다. 스카이피플이 승소할 경우 국내 P2E 게임의 규제완화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선고가 늦춰지면서 게임업계는 인수위의 P2E 게임 규제완화 발표를 기다리게 됐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친기업 성향 정책과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위메이드, 넷마블, 컴투스 등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P2E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만 게임 출시를 계획 중이다. 국내 게임사들은 한국 법인에서 게임 개발을 맡고 토큰 발행 법인과 플랫폼 운영법인을 해외에 두는 방식으로 P2E 게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윤 공약 달리 규제완화 가능성 부상
문체부 산하 두 기관 ‘엇박자’ 혼선

위메이드는 지난해 8월 미르4 글로벌 서버를 오픈해 게임 내 흑철이라는 재화를 가상화폐 위믹스로 교환할 수 있게 했다. 또 위믹스를 모든 게임의 기축통화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다양한 개발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현재 위믹스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총 11개다.

넷마블은 지난 3월 ‘A3: 스틸얼라이브’ 글로벌 버전을 시작으로 상반기 내 ‘골든브로스’ ‘제2의 나라(글로벌)’ 등의 P2E 게임을 연이어 공개할 계획이다.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라비린스 NFT’를 출시했다. 아울러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유저들을 위해 서버 증설, 게임 접속 강화 등의 보강을 진행한 후 다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컴투스는 올해 하반기에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을 P2E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P2E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두 기관이 ‘엇박자 정책’을 내면서 게임업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31일 국내 게임사 링게임즈는 신작 ‘스텔라 판타지’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신성장 게임 콘텐츠 지원 사업’의 블록체인 부문에 선정됐다.

신성장 게임 콘텐츠 지원 사업은 블록체인, 클라우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게임 콘텐츠 제작 지원을 통해 국산 게임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번 사업에 선정된 ‘스텔라 판타지’는 2022년 8월말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NFT 게임으로, 최대 5억원의 제작비를 지원받게 됐다.

윤주호 링게임즈 대표는 “즐거움을 강조한 P2E 게임을 통해 대체 불가능토큰(NFT) 가치 향상과 WEB3 게임의 새로운 모멘텀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문제는 엇박자 정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P2E 게임을 신성장 게임으로 분류하고, 게임당 최대 5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불법’으로 보고 있다.

이용자가 가상재화를 환전할 수 있어 ‘사행성 게임’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두 기관이 P2E 게임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엇박자 정책
혼란만 가중

결국 정부 지원금으로 제작된 P2E 게임에 국내 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없다.

정부의 이 같은 엇박자 정책에 국내 게임 개발사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 중소 게임사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부터 정치권에서 P2E 게임 규제완화 목소리가 나와 관련 사업을 준비했다”며 “아직까지 정책적 변화가 없는데 희망고문만 받고 끝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P2E 게임을 규제하고 있는 이유는 게임물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을 환전할 수 없다는 조항인 게임법 제 32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04년, 노무현정부 때 전국을 강타했던 ‘바다이야기’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P2E 게임과 ‘바다이야기’를 같은 사행성 게임물로 볼 수 있느냐다. 게임업계에선 P2E는 바다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두희 멋쟁이사자처럼 대표는 “어른들의 눈에는 바다이야기와 P2E 게임을 같은 종류로 보는데, 지금 게임하는 친구들은 바다이야기가 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P2E와 바다이야기는 완전 생태계가 다르고, 지금 글로벌 게임사 ‘샌드박스’는 P2E를 장책해 글로벌 톱기업으로 향하고 있다”며 “글로벌 산업을 바다이야기로 보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당선 후 변심?
초조한 업계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블록체인 게임에 대해 산업계, 행정부, 입법부가 함께 연구해 순기능과 역기능을 파악하는 등 조금 더 똑똑하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다른 나라들이 규율이나 미덕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블록체인 게임을 허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경영자로서 한국도 전 세계 흐름에 발맞춰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P2E, 메타버스 등 새로운 패러다임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현행법으로만 적용해선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를 향한 윤정부의 미지근한 태도에도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게임산업과 관련된 정부부처·학계·업계가 만나 윤정부의 게임정책 방향성을 진단했다. 발제에 나선 위정현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은 윤정부가 후보 때와 달리 게임정책에 관심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선 ‘새 정부 게임정책 방향 논의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윤상현(국민의힘)·이상헌(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마련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윤정부의 게임정책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토론회에는 정윤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 김윤명 상명대 특임교수, 임혜진 법무법인 동인 파트너스변호사,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위 의장은 “대선 당시 뜨거웠던 게임에 대한 열기와 달리 게임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10대 국정과제에 게임 공약은 K팝, 게임, 드라마, 영화, 웹툰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한 콘텐츠 중 하나로 다뤄졌다”며 “이렇게 되면 게임산업은 향후 윤정부 하에서 잃어버린 5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제2 바다이야기 우려
같은 점과 다른 점은?

게임산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13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박보균 장관의 경력을 살펴보면 콘텐츠와 관련된 경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위 의장은 “비전문가가 문체부 수장으로 오면서 게임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 판호 문제 등 현안에 대한 대응이 잘 이뤄질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게임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애정과 의지를 갖고 문제 해결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게임산업계에서 가장 화두로 떠오른 P2E와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도 활발하게 오갔다.

임 변호사는 “전통적 의미의 게임이 가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누가 P2E를 허용해줄 것인가 한다면 정부가 P2E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특임교수는 “우리나라가 바다이야기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케이드게임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가족용 게임 등에서는 가능할만한 요소가 있다”며 P2E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위 의장은 국내에서 P2E를 허용하기 위해 ▲게임의 완전한 프리 투 플레이(과금 없이 즐기는 게임) ▲청소년의 P2E 진입 금지 ▲게임 내 암호화폐 경제의 안정적 유지 ▲신규 글로벌 게임 IP 개발을 선행조건으로 제시했다. 업계의 요구대로 무작정 P2E를 도입할 경우 바다이야기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또 메타버스와 게임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자칫 메타버스 산업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며 메타버스의 성공 키워드로 ‘게임’을 지목했다.

신중한 접근
조심스런 입장

이에 대해 정 과장은 “P2E 게임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피해가 크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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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