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손놓은 ‘온플법’ 딜레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14 09:06:53
  • 호수 13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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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온라인 플랫폼 ‘어쩌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요새 쇼핑하기 정말 쉽다. 휴대폰에 온라인 플랫폼 어플만 설치하면 상품을 구매하는 데 1분이면 가능하다. 어플 종류만 해도 옷, 액세서리, 음식, 식료품 등 없는 게 없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은 다양한 브랜드 상품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여러 이벤트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야말로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지만, 이 편리함 속에 잊혀진 것이 있다. 바로 온라인 플랫폼 입점업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된 와중에도 급성장한 시장이 있다. 바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이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2017년 7조원를 조금 넘었고 조금씩 성장해왔다. 코로나 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쯤 온라인 플랫폼 시장 규모는 12조6247억이었고, 그해 11월에는 15조631억원으로 급성장했다.

급성장 이면

지난해 패션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가 밝힌 지난해 거래액이 1조6000억원을 돌파했고, 여성 쇼핑몰 플랫폼 카카오스타일의 지그재그는 연간 거래액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배달 주문 어플의 대표격인 배달의민족은 사용자 수만 2072만8261명이고, 그 뒤를 잇는 쿠팡이츠는 657만2445명이다. 고로 ‘의식주’에서 의와 주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의 성공 이면에는 ‘어쩔 수 없이’ 불공정을 감수한 이들이 있다. 바로 온라인 플랫폼 입점업체들이다. 플랫폼 이용업체가 겪은 불공정거래 경험 비율은 40%가 넘는다는 통계도 발표된 바 있다. 

지난해 4월 중소기업중앙회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 가입한 500개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온라인 패션 플랫폼 입점업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패션 플랫폼 입점업체들의 판매 수수료는 평균 26.7%로 조사됐으며, 이는 2019년 기준 온라인 쇼핑몰의 평균 정률 수수료인 13.6%에 비해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무신사는 평균 27.6%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패션 플랫폼 입점 효과 대비 수수료 수준은 높다는 의견이 59.4%였으며, 낮다는 의견은 0%였다. 적절한 수준이라는 의견은 100점 평균 점수 기준으로 32.0점에 불과했다.

패션 플랫폼에 입점해 경험한 애로사항은 ▲수수료 부담으로 인한 가격 인상 또는 생산단가 절감 압력 48.6% ▲무료 배송 정책으로 인한 부담 23.0% ▲카테고리 내 노출 순서 기준의 모호성 21.6% ▲플랫폼 PB 브랜드로 인한 매출 잠식 10.6% 등이었다.

급성장할수록 커지는 입점업체 부담
‘온플’ 마음대로 수수료·배송·노출

패션 플랫폼 입점업체의 81.2%는 연 매출액이 30억원 미만인 소규모 업체들이다. 연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인 업체가 52.6%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무신사는 이용업체의 피해 사례가 많은 걸로 손꼽힌다. 지난해 1월 무신사는 일부 입점업체에 “브랜디와 에이블리, 브리치 등 도매상품 취급 플랫폼에 입점 판매하는 브랜드들은 무신사 브랜딩에 손실을 입히는 것이라 판단되므로 거래 중단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당시 무신사는 “본사 입점 브랜드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브랜드로 보기 어려운 디자인 도용 또는 카피, 도매상품 택갈이 등을 취급하지 않으며 철저한 검수와 브랜드 관리정책을 지키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갑질 의혹에 대해서는 “비브랜드를 주로 유통하는 플랫폼에 동시 입점한 일부 브랜드로 인해, 브랜드만 취급하는 무신사 정체성에 대한 소비자 오해와 문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무신사는 입점업체의 타 플랫폼 입점 여부와 상관없이 계약기간을 준수하고, 추후 계약 연장 시 브랜드와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의사 결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온라인 플랫폼은 ▲과도한 광고비·수수료에 따른 자영업자 영업비용 증가 및 소비자 부담 전가 ▲소비자 피해 구제 및 예방책 미비 ▲데이터 독점에 따른 자영업자의 하청 계열화 ▲자영업자 간 과당 경쟁 유도 ▲광고 등 노출 기준의 불투명한 운영 ▲리뷰 조작 ▲프랜차이즈 영업지역 교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통한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 ▲배달 노동자 안전 문제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와 파생되는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이런 상황이 발생해도 입점업체들을 보호할 방어막은 없다. 즉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할 법이 전무한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를 소관부처로 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하 온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온플법의 주된 내용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업자에게 중개거래계약서의 서면 발급 의무 부여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업자가 중개계약 약관 등록 ▲이용사업자의 권익 보호 및 지위 향상을 위해 단체 구성권 부여, 사업자단체에 거래조건 협의 요청권 부여 ▲사업자단체에 대한 중개계약내용 변경 및 중개 서비스 제한 등의 사전통지 의무 ▲이를 이행하지 않은 중개 계약의 내용 변경 및 계약해지의 효력은 부인 등이 있다.

자율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만 없다고? 입법 무산?

그러나 온플법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정부부처가 온플법 추진을 보류한다는 방침이 언론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즉시 “인수위원회가 주관한 자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재정부 등이 온플법 추진을 보류하기로 합의하고 관련 합의문을 작성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한 것뿐이지, 온플법이 어떻게 될지 계획은 전무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플법에 입장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자율구제 불확실성 때문이다. 자율규제에 대한 합의 기한이나 가이드라인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놨을 경우 입점업체나 소비자에 실효성이 있는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입점업체들이 온플법 제정을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입점업체 단체들은 산발적으로 진행 중인 온라인 플랫폼 독점과 불공정행위 대응 및 그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개선 촉구 활동을 네트워크로 수렴해 문제를 대응하고 있다.

지난 7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는 ‘자율규제 빌미로 온라인 불공정 키우는 윤석열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미 미국과 유럽 등은 플랫폼의 불공정행위와 더불어 시장에서 독점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한국은 가장 낮은 단계의 규제 내용만을 담은 온플법마저 입법이 무산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추진 보류

이어 “윤석열정부가 주장하는 자율 규제란 사실상 플랫폼의 불공정행위 및 시장 독점 행위에 대한 방임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를 포기한 것”이라며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혁신에 대한 저해가 아니라 혁신을 위한 규제다. 기업, 입점업체, 노동자, 소비자 등이 모두 필요한 사항이며, 향후 플랫폼 불공정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반독점을 위한 강력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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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