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 유흥식 대주교

  • 오혁진 기자 ohj0001@nate.com
  • 등록 2022.06.07 12:59:5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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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업무 추진력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국 가톨릭교회 제4대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유흥식 신부가 네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이다. 그는 국내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명박(MB) 정부 당시 4대강을 반대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방문해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왔다.

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1951년 11월17일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젖먹이 시절 아버지를 잃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3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유 추기경이 기댈 곳은 성당뿐이었다.

가난했던 과거
수녀님 권유로…

유 추기경은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그에게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녀님의 권유로 신부의 삶을 꿈꿨다.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16세 때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부인회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이 귀한 돈을 멀리 있는 분들이 보내주셨는데 내가 보답할 길은 다시 성당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지만,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집안의 반대를 고려해 집에는 일반대학교(연세대)에 시험 본다고 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유 추기경은 1979년 12월8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3년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주교좌 대흥동본당 수석 보좌신부,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98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2003년 6월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해 8월19일 주교로 서품됐다. 교구장 경갑룡 주교의 사임에 따라 2005년 4월1일 교구장직을 승계 받아 4월6일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로 착좌했다.

2014년 8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주최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많은 활동을 한 유 추기경의 세례명은 ‘라자로’다. 음력 생일과 일치하는 성인을 찾다 명명하게 됐다. ‘라자로’는 생전에 거지였다가 천국에 가서 부활해 예수의 친구가 됐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능률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은 한국 인권과 환경, 종교 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종교인이자 개혁파로 평가받는다. ‘쌍용차’ ‘위안부’ ‘사형제’ ‘4대강 사업’ 문제를 두고 진보적, 전향적으로 사목 활동을 벌였다.


4대강·위안부 합의 비판 등 사회 문제 지적
프란치스코 교황 동행해 세월호 유가족 만나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안내를 책임지고 이끌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과 만날 때도 동행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 방문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 방문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교황의 삶 자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만936인 선언’에도 참여했다.

2010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때 낸 메시지에서 유 추기경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간디의 무덤 입구에 새겨진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을 인용하면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해져 온다”고 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정의평화위원회는 2016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인권을 경제와 외교 논리로 환치한 결과물”이라며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당시 정평위는 “정의를 향한 외침과 인권 보호는 교회의 기본 임무”라고 했다.

노동자와 농민도 만났다. 2015년 11월엔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고 백남기씨를 당시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병문안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2014년 12월엔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과 김정우 전 지부장을 만나 위로했다.

당시 두 사람 동료인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70m 굴뚝 위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여러 병으로 고생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격려의 말과 기부금을 전하기도 했다.

인권과 환경
종교간 평화

2015년 대전교구장으로 일할 때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 공동 발의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유 추기경은 “‘보복과 응징’으로 죄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보다 ‘반성과 용서, 사랑과 체계적인 교화’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진정한 의미에서 바로잡고 치유하는 길이며 인간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신뢰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가 많은 반대 여론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소신 있는 결단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선례도 제시했다.

2010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사제·수도자 5005인 선언문’에 주교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처님오신날엔 사찰을 찾는 등 종교 간 대화·평화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유 추기경은 2015년에도 MB의 4대강 비판을 이어갔다. 유 추기경이 위원장으로 있던 주교회의 정평위는 2015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정기총회에서 “하느님은 항상 용서해준다. 사람은 가끔 용서해주지만 자연은 용서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환경 파괴와 자연재해를 우려하는 학계의 견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국민적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용과 절차면에서 정당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재조정돼야 할 불의한 사업”이라며 “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가 참된 가치를 바탕으로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교회 본연에 해당함을 다시 확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회는 온전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기초로 한 ‘공동선’의 가치를 독려하고 이를 위한 토론의 장에 동참할 것”이라며 “또 쓰고 버리는 낭비의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정착시켜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2016년 1월 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복지시설 ‘나눔의 집’을 위로 방문하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 잇단 비판
행동하는 개혁파

앞서 유 추기경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판했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왜 졸속으로 이렇게 했는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천주교주교회의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강력 질타하면서 전면 재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모든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에 10억엔을 책정한다는 등의 합의문은, 모든 것에 선행돼야 하는 가장 소중하며 보편적인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합의문의 여러 내용은 일본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진상과 책임 규명의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듦으로써 피해 당사자인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종교계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원인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천주교가 처음으로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천주교주교회의 정평위는 이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박근혜정부의 퇴행성을 비판해왔다.

북한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 문재인정부에서 유 추기경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전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은 이후 한국 천주교 교구 전체로 확대됐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일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한국 교계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성직자로도 꼽힌다. 한국 천주교 본산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2014∼2018년)으로 있을 때는 교황청 산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대북 지원사업의 가교 역할을 했다. 2005년 9월 북한을 찾아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을 하는 등 2009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최근까지도 교황청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던 인물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상대방(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며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고 가능하면 (상호)관계에서 상대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말뿐인 ‘교황 방북 플랜’ 실행·추진력 커져
거칠어진 북 도발 잠재우는 해결사 역할 하나

교황은 4년 전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했을 때도 수락 의사를 표한 적이 있다. 당시 유 추기경은 교황이 북한의 초청장이 오면 방북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지 묻는 말에 “제가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정부도 그렇지만 교황청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 교황님이 북한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노력하고 있다. 때가 맞아야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황청은 지난해 북한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황청 자선단체인 ‘산에지디오’ 경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 교환 및 만남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앞서 2019년 2월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산에지디오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에 김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참석해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났다. 2018년 12월에는 임팔리아초 산테지디오 회장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제일 먼저 북한과 수교한 나라다. 친북 (성향의)의원들도 있어 그 사람들이 가끔 북한을 가기도 한다”면서 향후 의원들과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천주교계에서는 유 추기경 임명이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문정부에서부터 추진되던 교황의 북한 방문 현실화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의지가 지금도 확고하지만, 방북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방북이 성사된 적이 없고, 현재도 교황청과 북한 간 직접적인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어 북한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되는 등 한반도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열리는 듯했으나 다음 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며 모든 실무 작업이 중단됐다.

천주교 측에서는 교황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황은 테러와 전쟁 위험 등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를 순방했다. 당시 교황은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이라며서 전쟁을 이기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경색된 남북
돌파구 작용?

교황의 의지가 확고해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북한 측은 교황의 방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만약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향후 경색된 남북, 북미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천주교 2인자’ 어떤 의미?

추기경은 천주교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종신직이다.

특히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교황 선종 시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등 교황청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수 있다.

유흥식 추기경 임명은 지난해 6월11일 주교에서 대주교에 서임됨과 동시에 바티칸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때 예견된 바 있다.

성직자성 장관은 대주교보다 높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돼 재임 기간에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장관 임명 당시부터 뒤따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추기경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갔다.

교황은 이듬해 방한해 유흥식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 임명은 한국이 사실상 동아시아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배려한 조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천주교계가 교황 선출 등 최고의사 결정 기구인 ‘콘클라베(Conclave)’에서 2표를 행사하는 영향력을 얻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천주교는 고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지만, 선배 추기경이 80세를 넘겨 콘클라베에서 1표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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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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