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후폭풍> ②‘초선’ 이재명의 한계

얼굴에 철판 깔고 금배지만 달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기도 졌고, 싸우기도 못 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당은 ‘지는 전략’만 골라서 실행했고, ‘완패’ 후폭풍은 다음 총선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 패배의 책임을 진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2일 총사퇴를 결정했다. 패배의 원흉이었던 지도부는 물러갔지만, 패배의 아픔은 아직 남아있다. 누군가는 지지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하고, 당을 재정비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당후사’는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민주당 의원들이 외쳤던 구호다. 본인의 이익 앞에 당의 이익이 있다고 믿는 태도는 당론의 뼈대가 되는 오래된 정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당을 살리는 결정을 종종 해왔고, 민주당의 전통 지지자들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원해주곤 했다.

“아∼”
“와∼”

그런 전통 지지자들에게 이재명 의원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 당선자가 이번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보궐선거에서 당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이 당선인에게 ‘자생당사’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조롱하고 있다. 

그는 출마 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은 인물난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경기도지사나 서울시장직 공천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것이다.

지도부는 선거 직전까지도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비대위 형태로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민주당은 기존에 출마 선언한 인물들을 제쳐두고 거물급 인사들과 물밑 접촉을 진행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거론됐던 인물들이 송영길 전 대표와 이 당선자다. 이들의 재등판설이 솔솔 불자 일각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한 사람들이 어째서 또 선거에 등장하느냐는 볼멘소리였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당시 “내가 부족해서 선거에서 졌다. 죄송하다”며 잠행에 들어갔고, 송 전 대표 역시 선대위원장들이 사퇴할 때 동반사퇴를 결정한 바 있다.

반성이 이어진 기간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먼저 송 전 대표가 인천 계양을 지역구를 박차고 나오더니 서울시장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서울시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들은 힘을 합쳐 이를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송 전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험지 출마’로 지겠다고 밝혔고, 당 지도부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오며 인천 계양을이 공석이 되자, 이번에는 이 당선인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공석이 된 분당갑 지역을 뒤로 하고, 지역적 연고가 전무한 인천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당, 심지어 일부 야당 인사까지 이 당선인을 비판했다. 계양을 지역은 송 전 대표가 4선을 할 만큼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2010년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상권 후보가 당선된 사례를 빼놓고는 수십년간 인천 계양을의 국회의원은 늘 민주당 출신 후보가 차지했다. 


‘비겁한 출마’ ‘방탄 국회’ ‘인천이 만만하냐’란 비난이 이어진 것은 이 당선인의 출마 선언이 이뤄진 지 일주일도 안됐을 때다. 여러 모로 명분이 부족한 출마를 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총선 불출마를 했던 송 전 대표와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감을 느낄 대선 후보 본인이 ‘억지로’ 선거에 참여하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당권 없이 대권 없는데…
지선 졸전 책임론 급부상

민주당 지지자는 끝끝내 완전한 결집을 이루지 못했다.

선거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송 전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보다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고, 이 당선인은 상대적으로 열세라고 평가받던 국민의힘 윤형선 인천 계양을 후보를 크게 따돌리지 못했다. 

당초 민주당 비대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당선인의 계양 출마를)너무 나쁘게 만은 보지 말아 달라”며 “(큰 지지율 차이가 나오면)계양을에서 전국을 돌면서 선거 지원을 하겠다는 전략도 포함돼있다”고 이 당선인의 출마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지율 차이가 얼마 나오지 않아 이 후보의 발은 계양에 묶여 버렸다. 다른 곳의 선거 지원 유세는커녕 오히려 지도부가 계양으로 달려가 이 당선인의 선거운동을 돕는 등 ‘여유롭지 못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연출했다.

최종 개표 결과에서도 이 당선인은 윤형선 후보와 불과 8400여표 차이를 보이는 불안한 승리를 거뒀다.

어처구니없는 성적표는 비단 송 전 대표와 이 당선인의 ‘억지 출마’ 탓만은 아니다. 후에 이어진 민주당의 무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과 이 당선인의 ‘김포공항 이전’ 헛발질, 그리고 윤호중·박지현 선대위원장들의 불협화음 등이 부정적 여론 형성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처음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그동안 막대한 권력을 휘두른 검찰은 각종 비리에 휩싸이며 민심을 잃어왔고, 정권에 따라 일관되지 못한 권력수사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정치 검사’라는 비판이 계속 이어졌던 탓에 국민들은 검찰의 대대적인 개혁에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전국 빨간색
국힘 싹쓸이

민주당이 처음으로 제시한 ‘검수완박 법안’의 골자는 6대 범죄(부패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대형 참사)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떼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수사권을 상실하면 검찰은 고소·고발 접수는 불가능해지고 검찰은 공소 업무와 영장과 관련한 제한된 권한만 쥐게 된다.

해당 법안에는 검찰총장 직급 자체를 차관으로 강등시키는 내용도 포함돼있어 새로운 법률 아래에서 총장은 검찰 인사권도 빼앗긴다.


이에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박병석 국회의장이 나서서 중재안을 제시했다. 중재안에는 6대 범죄에서 부패와 경제를 뺀 4개의 수사권만 제한하는 내용으로 수정됐고, 국회 법사위를 통한 중대범죄수사청 발족 등이 포함됐다. 

국힘은 여전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민주당에 전달했지만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박 의장이 법안 상정 논의를 빠르게 진행하는 등 입법 처리에 협조하며 해당 법안은 윤 대통령 취임 일주일 전인 지난달 3일 통과됐다.

내용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대대적인 검찰 개혁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여론은 이번 민주당의 검수완박 방식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 무리하게 법안 통과를 진행하려는 의도가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보였던 탓이다.

법안 통과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안 통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는 부정 여론은 50%에 육박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갑자기 검수완박 카드를 꺼내들며 지난달 초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할 뜻을 밝혔다. 대선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 급하게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후에 빠른 법안 통과 진행을 위해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킨 뒤 법사위에 무소속으로 배치했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박 국회의장이 본회의 법안 상정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최우선으로 배치했다.


대중의 눈에 이 모든 과정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민주당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 후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몇몇 구청장 후보와 시의원들은 당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고, 차마 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 후보들은 히든카드를 제시하며 여론전을 새로운 이슈로 덮으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주자가 이 당선인이다.

이 당선인은 계양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 ‘김포국제공항 이전’ 카드를 꺼내들며 여론을 민주당 쪽으로 끌고 오려고 했다. 김포국제공항 이전 공약은 앞서 송 전 대표가 제20대 대통령선거 때 현실적인 문제 등을 들며 일단 보류해놨던 카드였다.

지난달 27일, 이 당선인과 송 전 대표는 경기 김포 아마린센터 앞에서 ‘김포공항 이전 수도권 서부 대개발 정책 협약식’을 진행했다. 이날 협약식에서 이 당선인은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고 빈 공지가 될 공항 일대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리더십
의문 부호들

그는 “김포공항은 과학의 발전, 항공기술의 발전 및 탈석탄 시대 대비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며 “이젠 지상고속전철이 탄소 배출도 적고, 싸고, 빠르고, 더 안전한 교통수단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포공항의 기능을 분산하고, 필요한 기능은 인천으로 통합하고, 김포공항을 이전해 이를 중심으로 인천 계양, 경기 김포, 서울 강서 세 군데를 대개발 해야한다. 김포공항이 인천공항으로 통합·이전하면 영종경제자육구역과 인천은 명실상부한 ‘공항경제권’을 형성해 대한민국 성장까지 견인할 수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협약문에는 인천 계양을을 제2의 판교로 만들고 서울 지하철 노선을 끌어와 계양구 중심부에 닿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개발 공약이 쓰여 있다. 이 당선인은 그동안 개발되지 못했던 서부 일대를 김포공항 이전을 계기로 완전히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나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비판을 들어야 했다. 우선 김포공항을 없애면 국내 항공사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국공항공사 측 자료에 따르면, 김포-제주 항공노선은 2020년에만 약 1000만명이 이용했을 만큼 거대 노선이다. 또 해당 노선의 지난해의 여객 운항 편수는 전 세계 2위였다. 

이 당선인이 대체 수단으로 내세운 지상고속전철로는 제주도에 갈 수 없다. 제주도에만 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한 해에 찾았다.

김포공항 이전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한 여권 인사는 지난달 3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당선인은 여객기의 소음문제를 걱정해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공항 이전에 따른 부작용이 소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 이끌 때마다 패
당내 입지 대폭 축소

백호종 한국항공대 항공물류학과 교수는 “김포공항 국내선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면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편의 공역 구분이 상당한 난제가 될 것”이라며 “최소한 공역 문제를 어느 정도 검토해보고 안전에 문제가 없을 때 이전 논의를 시작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깊은 숙고 없이 급하게 내놓은 공약이라는 소리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김포공항 이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의원은 “슬롯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상 인천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국내선을 처리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당선인의 ‘김포공항’ 헛발질은 전체 선거에 악영향을 줬고, 수습되지 못했다.

이 당선인의 헛발질이 혼란을 가져올 때쯤, 이번에는 민주당 지도부에서 불협화음이 튀어나왔다. 박지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윤호중 선대위원장과 마찰음을 빚은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 당선인이 직접 스카우트해 데려온 인물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쇄신할 것이라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정말 많이 잘못했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사과드린다”며 “대의를 핑계로 잘못한 동료 정치인을 감싸지 않겠다. 우리 편의 잘못에 더 엄격한 민주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성비위 사건을 일으킨 민주당 최강욱·박완주 의원에 대한 징계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는 하루 뒤인 25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민주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586 그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586 그룹에는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윤 의원, 원내대표 박홍근 의원, 공동총괄본부장이었던 김민석 의원 등이 포함된다. 

윤 의원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국회 취재기자단에 따르면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 간부회의에서 고성과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오갔고, 윤 의원은 “이건 지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박 원내대표는 “여기는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틀 뒤 ‘억지로’ 사태는 봉합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대중의 눈에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 꺼내는 쇄신론에 기득권인 민주당 중진들이 찍어 누른 것으로 비춰졌다. 대선 패배에 깊이 반성한다는 그동안의 민주당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행태였다.

헛발질
딜레마

이 당선인은 애초 여의도에 들어가 민주당의 당권을 거머쥐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당선인이 대선 패배 후에도 지선 공천에 관여하고 당내 의원들에게 일일이 접촉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난 지방선거 과정 중에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그러나 그의 헛발질과 당내 분열은 지선 패배 후 ‘책임론’으로 불거지고 있다. 전국 과반 승리를 장담했던 이 당선인의 당내 입지는 앞으로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6·1 지선 여론조사의 맹점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여론조사는 거의 들어맞았다.

인물이 몇몇으로 특정되어 있고 대통령이 새로 뽑힐 때마다 치밀하게 진행됐던 여론조사 기법이 나날로 발전된 결과다.

그러나 여론조사 회사들은 유독 지방선거에서 힘을 못 쓴다.

선거 직전 여의도에서 만난 정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보는 시간도 아깝다. 여론조사 때문에 크게 안심을 해서도, 크게 걱정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표본이 너무 적은 반면 후보는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보통 여론조사 회사들은 표본을 산정해 특정 질문을 물어본 뒤 이를 바탕으로 분석에 들어간다.

그러나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선거구가 너무 많아 질문을 모두 달리 상정해야 하고, 물어볼 집단의 크기 자체도 매우 작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여론조사 오류’는 매번 반복되고 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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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