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후폭풍> ②‘초선’ 이재명의 한계

얼굴에 철판 깔고 금배지만 달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기도 졌고, 싸우기도 못 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당은 ‘지는 전략’만 골라서 실행했고, ‘완패’ 후폭풍은 다음 총선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 패배의 책임을 진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2일 총사퇴를 결정했다. 패배의 원흉이었던 지도부는 물러갔지만, 패배의 아픔은 아직 남아있다. 누군가는 지지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하고, 당을 재정비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당후사’는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민주당 의원들이 외쳤던 구호다. 본인의 이익 앞에 당의 이익이 있다고 믿는 태도는 당론의 뼈대가 되는 오래된 정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당을 살리는 결정을 종종 해왔고, 민주당의 전통 지지자들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원해주곤 했다.

“아∼”
“와∼”

그런 전통 지지자들에게 이재명 의원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 당선자가 이번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보궐선거에서 당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이 당선인에게 ‘자생당사’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조롱하고 있다. 

그는 출마 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은 인물난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경기도지사나 서울시장직 공천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것이다.

지도부는 선거 직전까지도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비대위 형태로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민주당은 기존에 출마 선언한 인물들을 제쳐두고 거물급 인사들과 물밑 접촉을 진행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거론됐던 인물들이 송영길 전 대표와 이 당선자다. 이들의 재등판설이 솔솔 불자 일각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한 사람들이 어째서 또 선거에 등장하느냐는 볼멘소리였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당시 “내가 부족해서 선거에서 졌다. 죄송하다”며 잠행에 들어갔고, 송 전 대표 역시 선대위원장들이 사퇴할 때 동반사퇴를 결정한 바 있다.

반성이 이어진 기간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먼저 송 전 대표가 인천 계양을 지역구를 박차고 나오더니 서울시장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서울시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들은 힘을 합쳐 이를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송 전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험지 출마’로 지겠다고 밝혔고, 당 지도부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오며 인천 계양을이 공석이 되자, 이번에는 이 당선인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공석이 된 분당갑 지역을 뒤로 하고, 지역적 연고가 전무한 인천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당, 심지어 일부 야당 인사까지 이 당선인을 비판했다. 계양을 지역은 송 전 대표가 4선을 할 만큼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2010년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상권 후보가 당선된 사례를 빼놓고는 수십년간 인천 계양을의 국회의원은 늘 민주당 출신 후보가 차지했다. 


‘비겁한 출마’ ‘방탄 국회’ ‘인천이 만만하냐’란 비난이 이어진 것은 이 당선인의 출마 선언이 이뤄진 지 일주일도 안됐을 때다. 여러 모로 명분이 부족한 출마를 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총선 불출마를 했던 송 전 대표와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감을 느낄 대선 후보 본인이 ‘억지로’ 선거에 참여하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당권 없이 대권 없는데…
지선 졸전 책임론 급부상

민주당 지지자는 끝끝내 완전한 결집을 이루지 못했다.

선거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송 전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보다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고, 이 당선인은 상대적으로 열세라고 평가받던 국민의힘 윤형선 인천 계양을 후보를 크게 따돌리지 못했다. 

당초 민주당 비대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당선인의 계양 출마를)너무 나쁘게 만은 보지 말아 달라”며 “(큰 지지율 차이가 나오면)계양을에서 전국을 돌면서 선거 지원을 하겠다는 전략도 포함돼있다”고 이 당선인의 출마를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지율 차이가 얼마 나오지 않아 이 후보의 발은 계양에 묶여 버렸다. 다른 곳의 선거 지원 유세는커녕 오히려 지도부가 계양으로 달려가 이 당선인의 선거운동을 돕는 등 ‘여유롭지 못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연출했다.

최종 개표 결과에서도 이 당선인은 윤형선 후보와 불과 8400여표 차이를 보이는 불안한 승리를 거뒀다.

어처구니없는 성적표는 비단 송 전 대표와 이 당선인의 ‘억지 출마’ 탓만은 아니다. 후에 이어진 민주당의 무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과 이 당선인의 ‘김포공항 이전’ 헛발질, 그리고 윤호중·박지현 선대위원장들의 불협화음 등이 부정적 여론 형성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처음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그동안 막대한 권력을 휘두른 검찰은 각종 비리에 휩싸이며 민심을 잃어왔고, 정권에 따라 일관되지 못한 권력수사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정치 검사’라는 비판이 계속 이어졌던 탓에 국민들은 검찰의 대대적인 개혁에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전국 빨간색
국힘 싹쓸이

민주당이 처음으로 제시한 ‘검수완박 법안’의 골자는 6대 범죄(부패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대형 참사)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떼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수사권을 상실하면 검찰은 고소·고발 접수는 불가능해지고 검찰은 공소 업무와 영장과 관련한 제한된 권한만 쥐게 된다.

해당 법안에는 검찰총장 직급 자체를 차관으로 강등시키는 내용도 포함돼있어 새로운 법률 아래에서 총장은 검찰 인사권도 빼앗긴다.


이에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박병석 국회의장이 나서서 중재안을 제시했다. 중재안에는 6대 범죄에서 부패와 경제를 뺀 4개의 수사권만 제한하는 내용으로 수정됐고, 국회 법사위를 통한 중대범죄수사청 발족 등이 포함됐다. 

국힘은 여전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민주당에 전달했지만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박 의장이 법안 상정 논의를 빠르게 진행하는 등 입법 처리에 협조하며 해당 법안은 윤 대통령 취임 일주일 전인 지난달 3일 통과됐다.

내용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대대적인 검찰 개혁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여론은 이번 민주당의 검수완박 방식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 무리하게 법안 통과를 진행하려는 의도가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보였던 탓이다.

법안 통과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안 통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는 부정 여론은 50%에 육박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갑자기 검수완박 카드를 꺼내들며 지난달 초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할 뜻을 밝혔다. 대선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 급하게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후에 빠른 법안 통과 진행을 위해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킨 뒤 법사위에 무소속으로 배치했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박 국회의장이 본회의 법안 상정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최우선으로 배치했다.


대중의 눈에 이 모든 과정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민주당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 후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몇몇 구청장 후보와 시의원들은 당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고, 차마 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 후보들은 히든카드를 제시하며 여론전을 새로운 이슈로 덮으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주자가 이 당선인이다.

이 당선인은 계양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 ‘김포국제공항 이전’ 카드를 꺼내들며 여론을 민주당 쪽으로 끌고 오려고 했다. 김포국제공항 이전 공약은 앞서 송 전 대표가 제20대 대통령선거 때 현실적인 문제 등을 들며 일단 보류해놨던 카드였다.

지난달 27일, 이 당선인과 송 전 대표는 경기 김포 아마린센터 앞에서 ‘김포공항 이전 수도권 서부 대개발 정책 협약식’을 진행했다. 이날 협약식에서 이 당선인은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고 빈 공지가 될 공항 일대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리더십
의문 부호들

그는 “김포공항은 과학의 발전, 항공기술의 발전 및 탈석탄 시대 대비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며 “이젠 지상고속전철이 탄소 배출도 적고, 싸고, 빠르고, 더 안전한 교통수단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포공항의 기능을 분산하고, 필요한 기능은 인천으로 통합하고, 김포공항을 이전해 이를 중심으로 인천 계양, 경기 김포, 서울 강서 세 군데를 대개발 해야한다. 김포공항이 인천공항으로 통합·이전하면 영종경제자육구역과 인천은 명실상부한 ‘공항경제권’을 형성해 대한민국 성장까지 견인할 수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협약문에는 인천 계양을을 제2의 판교로 만들고 서울 지하철 노선을 끌어와 계양구 중심부에 닿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개발 공약이 쓰여 있다. 이 당선인은 그동안 개발되지 못했던 서부 일대를 김포공항 이전을 계기로 완전히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나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비판을 들어야 했다. 우선 김포공항을 없애면 국내 항공사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국공항공사 측 자료에 따르면, 김포-제주 항공노선은 2020년에만 약 1000만명이 이용했을 만큼 거대 노선이다. 또 해당 노선의 지난해의 여객 운항 편수는 전 세계 2위였다. 

이 당선인이 대체 수단으로 내세운 지상고속전철로는 제주도에 갈 수 없다. 제주도에만 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한 해에 찾았다.

김포공항 이전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한 여권 인사는 지난달 3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당선인은 여객기의 소음문제를 걱정해 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공항 이전에 따른 부작용이 소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 이끌 때마다 패
당내 입지 대폭 축소

백호종 한국항공대 항공물류학과 교수는 “김포공항 국내선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면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편의 공역 구분이 상당한 난제가 될 것”이라며 “최소한 공역 문제를 어느 정도 검토해보고 안전에 문제가 없을 때 이전 논의를 시작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깊은 숙고 없이 급하게 내놓은 공약이라는 소리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김포공항 이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의원은 “슬롯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상 인천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국내선을 처리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당선인의 ‘김포공항’ 헛발질은 전체 선거에 악영향을 줬고, 수습되지 못했다.

이 당선인의 헛발질이 혼란을 가져올 때쯤, 이번에는 민주당 지도부에서 불협화음이 튀어나왔다. 박지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윤호중 선대위원장과 마찰음을 빚은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 당선인이 직접 스카우트해 데려온 인물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쇄신할 것이라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정말 많이 잘못했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사과드린다”며 “대의를 핑계로 잘못한 동료 정치인을 감싸지 않겠다. 우리 편의 잘못에 더 엄격한 민주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성비위 사건을 일으킨 민주당 최강욱·박완주 의원에 대한 징계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는 하루 뒤인 25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민주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586 그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586 그룹에는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윤 의원, 원내대표 박홍근 의원, 공동총괄본부장이었던 김민석 의원 등이 포함된다. 

윤 의원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국회 취재기자단에 따르면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 간부회의에서 고성과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오갔고, 윤 의원은 “이건 지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박 원내대표는 “여기는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틀 뒤 ‘억지로’ 사태는 봉합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대중의 눈에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 꺼내는 쇄신론에 기득권인 민주당 중진들이 찍어 누른 것으로 비춰졌다. 대선 패배에 깊이 반성한다는 그동안의 민주당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행태였다.

헛발질
딜레마

이 당선인은 애초 여의도에 들어가 민주당의 당권을 거머쥐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당선인이 대선 패배 후에도 지선 공천에 관여하고 당내 의원들에게 일일이 접촉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난 지방선거 과정 중에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그러나 그의 헛발질과 당내 분열은 지선 패배 후 ‘책임론’으로 불거지고 있다. 전국 과반 승리를 장담했던 이 당선인의 당내 입지는 앞으로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6·1 지선 여론조사의 맹점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여론조사는 거의 들어맞았다.

인물이 몇몇으로 특정되어 있고 대통령이 새로 뽑힐 때마다 치밀하게 진행됐던 여론조사 기법이 나날로 발전된 결과다.

그러나 여론조사 회사들은 유독 지방선거에서 힘을 못 쓴다.

선거 직전 여의도에서 만난 정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보는 시간도 아깝다. 여론조사 때문에 크게 안심을 해서도, 크게 걱정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표본이 너무 적은 반면 후보는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보통 여론조사 회사들은 표본을 산정해 특정 질문을 물어본 뒤 이를 바탕으로 분석에 들어간다.

그러나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선거구가 너무 많아 질문을 모두 달리 상정해야 하고, 물어볼 집단의 크기 자체도 매우 작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여론조사 오류’는 매번 반복되고 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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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