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바람처럼 왔다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07 11:31:41
  • 호수 1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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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게임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7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1세대 벤처신화로 평가받는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NXC는 고 김 이사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최근 들어 악화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쓴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는 언제부터 게임에 관심을 가졌을까. 김 이사는 학창 시절 이모부가 사준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컴퓨터 게임은 취미로 즐겼다. 이 같은 영향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뒤 1988년 일본항공의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상지대(조치대)에서 연수 후 수료했다. 

KAIST 자퇴
신화의 서막

이전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겨 했던 그는 일본 게임산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 게임산업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자서전 <플레이>에는 일본 방문 당시 닌텐도 게임기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하며 “꼭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회고했다. 

이후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카이스트 총장인 이광형 전산학과 교수는 김 이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라고 정의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가 빨간색으로 염색했다. 어느 날은 짝짝이로 귀걸이를 달고 왔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고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외골수 성격 때문에 카이스트 학창 시절이 평탄하지 못했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통보해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그 뒤 김 이사를 받아준 것은 이 교수다. 하지만 이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포드로 떠난 사이, 임시 지도교수는 ‘공부 안 하고 게임만 만든다’는 이유로 김 이사에게 자퇴를 요구했다.  

카이스트 자퇴는 ‘넥슨’ 창업의 시일을 앞당길 뿐이었다. 김 이사는 1994년 12월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로부터 6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빌렸다.

그는 이 돈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사무실을 마련해 넥슨을 창업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로, 대학교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와 카이스트 기숙사 옆방에 살았던 김상범 현 넥슨 이사가 공동창업자로 함께했다.

게임에 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초석을 쌓는 건 어려웠다. 김 이사는 당장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김 이사는 1995년 중반 기업들의 홈페이지와 인트라넷을 구축하는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자는 구상을 한 것이고,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 기업들이 홈페이지 제작에 나서면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감이 많아졌다. 넥슨은 1995년 초고속 정보통신사업기술개발 사업자로 선정됐고, 국내 최초 인트라넷 솔루션 ‘웹오피스(Web Office)’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넥슨은 아시아나항공에 서버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하는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했다.


‘온라인게임’ 개척한 선구자
우울증 치료 최근 들어 악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뒤 김 이사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곧바로 넥슨의 대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 데 착수했고, 1996년 완성됐다. 바람의 나라는 국내와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게임으로 전형적인 롤플레잉(RPG)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온라인으로 접속한 게임 내 사람들과 만나 동료가 되고 퀘스트를 진행한다.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고, 함께 사냥을 나가며, 물건을 거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흔한 형태의 온라인게임이지만, 당시에는 희소성이 강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바람의 나라가 출시됐을 때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마우스로 게임 화면의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작업을 지시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방식인 바람의 나라는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게임이고 메타버스의 효시라고 칭한 바 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성공 이후에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피파 온라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성공작들을 쏟아냈다.

넥슨 게임의 인기는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해외에서 큰 성공을 이뤘다.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는 2D 도트를 활용한 그래픽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형태다.

특히 2009년 국산 게임 중 최초로 한국·중국·일본 3개국 동시 접속자 수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던전앤파이터’의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는 8억50000만명에 달한다. 이런 흥행에 힘입어 넥슨은 국내 게임 기업 최초로 2011년 연 매출 1조원 고지에 올랐다.

2020년에는 국내 업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매출은 신작 부재 등의 여파로 2조8530억원에 그쳤지만 여전히 국내 게임업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메타버스 효시
기념비적 게임

관심이 게임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던 그는 어린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넥슨은 2014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보탰다.


이후 2016년 4월28일 서울 마포구에서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 어린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독립된 자아로 나아가도록 ‘의료+사회+직업’ 재활을 연계한 ‘장애어린이 전인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넥슨은 병원 건립 이후에도 환아들의 재활치료 지원과 안정적인 병원 운영을 위해 지난해까지 총 19억20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 기부금은 영‧유아 발달장애 치료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재활치료실 설립, 병원 감염관리 체계 강화 등에 이용됐다.

2019년 2월에는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0억원의 기금 기부를 약정해 수도권 외 지역의 어린이들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앞장섰다.

올해 완공이 목표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재활치료 시설은 물론 돌봄교실과 파견학습 등 교육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넥슨은 책을 통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넥슨 작은책방’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넥슨 작은책방’은 어린이들에게 책과 독서 환경 및 독후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2005년부터는 전국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등에 도서 기증을 시작으로 유휴 공간에 아늑한 책방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 ‘넥슨 작은책방’은 총 130곳이다. 이곳을 이용한 어린이 숫자는 8만3000여명에 이른다. 넥슨이 기부한 도서는 12만8000권을 넘어섰다. 수도권 44곳, 강원도 10곳, 충청도 16곳, 경상도 16곳, 전라도 23곳, 제주 13곳 등 전국 각지에 두루 조성돼있다. 


확률형 아이템 
‘돈슨’ 오명도

지난 1일 이정헌 넥슨 대표는 “김 이사님은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넘쳤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열정으로 빠져들던 분”이라며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으며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의 게임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재활병원·작은 책방 건설에 큰 도움을 주는 사회 공적도 남겼다. 그야말로 명예와 부를 모두 가졌다. 이런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게임업계에서의 오명도 그를 힘들게 했다. 넥슨은 2000년 초반 PC방 정액제와 함께 아이템 부분 유료화 모델을 시작했다.

이는 김 이사가 돈을 밝힌다며 넥슨을 ‘돈슨’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 등 다른 게임업체들도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명은 오로지 김 이사의 몫이었다. 

30년 지기 친구와 의가 상한 일도 있었다. 김 이사는 2012년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미국 EA(일렉트로닉 아츠)를 인수하기 위해, 넥슨 일본법인이 엔씨소프트 지분 14.68%를 매입했다.

당시 EA 인수는 실패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지분관계만 남았다. 이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율을 높이고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을 백기사로 영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지분관계는 정리됐다. 하지만 대학 1년 선후배로 우애 좋았던 김 이사와 김택진 이사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에서 김 이사의 시련은 이어갔다. 2005년 비상장 상태였던 넥슨 주식을 대학 동기인 진경준 전 검사장이 사서 160억원을 마련하는 등 40배 넘는 차익을 거뒀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진 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이사 역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17년 진 전 검사장이 받은 주식 등에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어린이 무척 아껴 각종 사회공헌
세계시장 공략 앞두고 돌연 별세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김 이사는 2019년 넥슨 매각설을 제기해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김 이사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98.6%를 매각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이사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됐고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NXC 지분 매각은 2019년 6월 최종 무산됐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이사의 경영 의지가 꺾인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2020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겠다는 신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넥슨은 지난해 6월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세가 사미홀딩스, 코나미 홀딩스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글로벌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계획이 김 이사의 별세를 더욱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지난달 27일 그의 별세 소식으로 각계각층의 애도가 잇따랐다. 김택진 이사는 김 이사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저녁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고 글을 남겼다.

이정헌 대표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넥슨의 창업주이자 저의 인생 멘토였던, 그리고 제가 존경했던 김정주 사장님이 고인이 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위로했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애도를 표한 것은 단연코 바람의 나라 게임 이용자들이었다.

각계각층
추모 물결

이들은 지난 1일 밤 10시, 게임 내 부여성 남쪽 흉가 앞에 모였다. 이용자들은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게임합니다” “이사님 덕분에 즐겁게 게임하고 있어요” “바람의 나라 아버지, 그곳에선 편안하세요”라며 김 이사를 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주 빠진 넥슨 경영은?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의 법인을 이끄는 경영진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표면적으로는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수합병(M&A)이나 인재 영입 분야에서 역할을 맡아왔던 만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에서 16년 만에 물러나며 이사직만 맡아왔다.

현재는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이재교 대표가 새로 선임돼 넥슨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전략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집단체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18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고 일본 넥슨 본사의 오웬 마호니 대표도 8년간 임기를 이어왔다.

미국에선 김 이사와 마호니 대표가 영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과 알렉스 이오실레비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사내 게시판에 추모 글을 올리며 “넥슨의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받아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넥슨의 지배구조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NXC의 최대주주인 김 이사의 지분(64.95%)이 부인 유정현 감사와 딸 2명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족들의 선택에 따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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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