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하마' 용인경전철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22 09:03:41
  • 호수 13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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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만명 다단계 승하차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용인경전철은 하루 평균 3만명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다. 하지만 현재 다단계 민간위탁 운영으로 한 해 100억원 이상의 세금과 이자상환·다단계 운영에서 발생하는 부가비용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는 용인경전철 ‘조기 상환 금지 협약’이 끝난다. 용인경전철차량기지 노동조합은 ‘용인경전철 공영화’를 내년 목표로 설정했다.

용인경전철은 2013년 4월26일 개통했다. 운행구간은 ‘기흥역-동백-행정타운-전대·에버랜드’이며, 총 노선 길이는 18.143㎞다. 차량은 1량 1편성으로 30량, 캐나다 봄바디어사의 철제 차륜으로 승차 정원은 133명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용인경전철이 지나가는 용인시 처인구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중·전철이 지나가지 않는다. 초기 사업계획대로 노선을 확장하면 용인시민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공공교통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용인경전철이 공공교통으로 성장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2011년 김학규 전 용인시장은 용인경전철 개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준공검사를 반려했고, 용인시는 30년간 민간위탁 운영을 맡았던 캐나다 봄바디어사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그 결과 용인시는 국제중재재판소에서 봄바디어사 시공사에 배상금 8515억원을 물어주라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용인시는 배상금의 일부인 5153억원을 경기지역개발기금과 농협에서 차입했고, 500억원은 용인시 자체 재원으로 해결했다. 문제는 나머지 2862억원이었다. 


용인시와 용인경량전철(주)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인경전철 관리운영권을 2862억원으로 산정했고 용인경량전철(주)의 단일주주인 농협칸사스사모펀드에 2862억원을 빌리게 된다.

사모펀드는 이율이 4.97%의 고금리로, 경기개발기금 이자율 1.5%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 한 해 지급되는 이자만 76억원가량이다. 

경기개발기금은 3년 거치 5년 균분 상환조건이었고 2015년에 조기 상환했다. 이후 사모펀드의 고금리는 금리 재구조화를 통해 3.57%로 낮췄다.

덕분에 460억원이 절약했지만, 문제는 이 과정 중 올해까지 ‘조기 상환 금지 협약’을 맺은 것. 만약 원금을 조기 상환했다면 수백억에서 1500억의 혈세를 절감할 수 있지만 불가능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용인시는 사모펀드에 돈을 빌리면서, 용인경전철은 용인시와 운영회사 혹은 용인시와 시행사로 이뤄진 2단계 구조를 이룰 수 없게 됐다. 용인경전철 사업은 ‘용인시→용인경량전철(주)(사모펀드)→네오트랜스(운영회사)’와 같이 다단계로 위탁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9년 동안 운영된 용인경전철의 다단계 위탁 방식은 문제점이 많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 위탁 운영은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는 경우 예산이 얼마나 짜였는지, 지급한 운영비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기 어렵다. 

민간위탁 운영…연 100억원 이상 혈세 줄줄
조기 상환 금지 협약 마감…공영화 숙제는?


지난해 12월21일 유진선 용인시의원은 제260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용인경전철 예산이 부적합하게 집행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처리를 촉구했다.

유 의원은 용인경전철과 관련해 사업운영사인 네오트랜스의 신사업부문장이, 용인경전철에 얼마나 근무했는지, 담당 업무는 무엇인지, 인건비 등 비용 처리를 용인시에서 받은 관리운영비에서 목적 외로 지급한 게 있는지 물었다. 

네오트랜스 공문 등의 회신자료에 따르면 신사업부문장의 근무 기간은 2017년 12월21일부터 2019년 3월19일까지 약 1년4개월이다.

당시 신사업부문장은 용인경량전철 연장선, 안전문(PSD) 시공 및 기술지원 사업 등 신규 사업을 담당했으며, 해당 직원은 네오트랜스 본사 ‘파견 인원’으로 인건비는 본사에서 지급됐다.

그러나 유 의원은 이 같은 회신 내용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네오트랜스의 신사업 부문은 신분당선 본부에 부서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유 의원은 신사업 부문 부문장은 용인경전철에 ‘파견 인원’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무실을 마련해 근무하게 됐는지 및 신사업 부문의 총 직원 수, 네오트랜스 본부에 신분당선 본부에 직원 모두가 근무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또 신사업 부문장의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과 그 비용이 용인시의 운영비에 지급됐는지, 네오트랜스 본사에서 지급됐는지 여부와 회계 처리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

이 밖에도 용인경량전철 연장선 업무와 안전문 시공 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기술지원 사업 업무가 신규 사업 업무인지, 제안서‧결재 문서 등 근거 자료로 해명해달라고 요구했다. 

‘파견직에 대한 임금 처리 규정 및 절차’에 따라 인건비는 본사에서 지급했는지, 신사업 부문장 연봉과 인건비‧업무 관련 활동비용, 이 비용을 용인시에서 받은 게 아닌지 등을 증명하라고 했다.

이상한 위탁
승객이 부담?

유 의원은 “올해 용인시 본 예산서에 따르면 경량전철 사업특별회계는 461억원으로 편성됐고 향후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용인시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하는 용인경량전철 운영비가 목적 외로 사용돼 혈세가 세는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용인시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용역회사들은 과도하게 중간 관리비를 책정하고,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소홀하게 다루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용인경전철 신입사원 임금은 2012년 재개통 당시 2870만원인 데 비해, 2020년은 2700만원으로 170만원 이 줄었다. 용인경전철의 노동자들은 운영회사가 계속 바뀌는 불안감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 

용인경전철 노동자들은 2008년 경전철 개통을 위해 입사했다. 하지만 개통 연기와 실시협약 해지로 2011년 2월11일 직원 155명 중 150명이 권고사직당했고, 재개통 당시 시행사인 용인경전철에 다시 재입사했다.

이후 2013년 8월 1차 운영회사인 봄바디어 소속이 됐다. 2016년 8월에는 2차 운영사인 네오트랜스 소속이 됐고, 2023년 3차 운영과 2033년 4차 운영 때는 회사가 몇 번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용인경전철 노동자들은 업무와 상관없이 회사가 3번 바뀐 것이다. 현재 근무 중인 네오트랜스 직원들 역시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다단계 위탁 방식으로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도 크다. 용인경전철은 분당선보다 요금이 200원 비싸다. 용인경전철의 현재 요금은 1450원(기본료 1250원+별도요금 200원)으로 별도요금 200원을 더 내고 있다.

청소년은 160원, 어린이는 100원이다. 다단계 위탁 운영으로 발생하는 부과세를 생각해보면 다단계 구조만 개선해도 별도 운임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별도요금은 승객에게 운임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사모펀드 대출
운영사도 문제

안전사고에 대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용인경전철은 운행 중 열차가 멈추는 사고 및 승강장 안전문(PSD) 고장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열차가 멈추는 사고는 운영사가 예산절감을 위해 정년퇴직자를 채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열차 특성상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정년퇴직자는 체력적으로 운행하기 힘든 부분이 크다.

승강장 안전문 문제는 기술 제한 없이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해 발생한 문제다. 이 과정에서 승객 부상 사고도 일어났다. 이처럼 철도의 다단계 위탁 방식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로 내놓은 것이다.

용인경전철차량기지 노동조합은 올해 조기 상환 금지 협약이 끝나는 것에 주목해 용인경전철 공영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에 ‘용인경전철 공영화, 시민 서명운동’을 실시했고, 이달에는 2만5000명 정도의 서명을 받았다. 곧 3만명을 도달할 예정이다.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은 “20대에겐 교통비가 너무 비싸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있는 구조에 대한 재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별도로 200원을 더 내고 있다는 게 화가 난다. 학생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돈이다”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생각해달라” “경전철은 당연히 용인시민의 품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인경전철차량기지 노동조합은 용인시가 용인경전철을 직접 운영하면, 매년 최소 30억~50억원의 세금이 절감된다고 주장한다.

고용불안, 요금, 안전사고…
용인시 잡으면 50억 절감?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용인시가 민간투자금으로 상환한 금액은 원금 717억원, 이자 778억원이다. 이 계산은 적용금리 3.4%로 빚을 갚는다는 것이 전제다.

이어 내년에 조기 상환하고 용인시가 직접 운영하면 지자체 운영비뿐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용인시는 차량을 이용한 시외 유동인구가 많아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교통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민주당·민간도시철도 정책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엔 더불어민주당과 민간도시철도 분야 공공운수노조합 용인경전철 지부, 공항철도 노동조합, 공공운수노동조합 김포도시철도지부, 메트로9호선 노동조합, 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메트로9호선지부, 공공운수노동조합 서해선 지부, 공공운수노동조합 우이신설경전철 지부가 참석했다.

이들은 ▲안전 인력에 관한 기준 신설과 이에 따른 안전입찰제 도입을 위한 상호 노력 ▲민간도시철도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유해 위험 환경 및 교대 근무 개선 정책 수립과 관련 법령 개정을 위한 상호 노력 ▲민간도시철도 사업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전문가·노동자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 등의 협약을 체결했다.

이 밖에도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시 용인경전철 기흥역 앞에서 ‘용인경전철 공영화 촉구 시민 공동행동’을 실시했다.

시민 공동행동의 슬로건은 ‘용인경전철을 용인시민에게’였다. 이들은 ‘용인경전철 공영화 촉구, 별도요금 200원 폐지’ 등 용인시에 요구하는 내용을 내걸었다. 

용인경전철지부 등은 오는 5월까지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총 4차례에 걸쳐서 ‘용인시의 용인경전철 직접 운영’을 요구하는 공동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공교통의 이해당사자인 시민이 직접 행동해서 운임과 운영 정책을 바꾸는 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구용역 진행
상환 계획 없어

용인시 관계자는 “올해 조기 상환 금지 협약이 끝나더라도 조기 상환 계획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용인경전철 운영을 운영사인 네오트랜스가 해야 할지, 시행사인 용인경량전철(주)이 해야 하는지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용역은 다음 달 말 결과가 나오고, 앞으로 연구 결과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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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