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체험 마을 ②제주 청수마을

겨울에 만나는 초록빛 곶자왈

소설가 김훈은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고 했다. 앙상한 가지에 내려앉은 하얀 눈꽃도 아름답지만, 겨울이 되면 싱그러운 초록빛 숲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겨울에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 곶자왈이다. 제주시 한경면에 자리한 청수마을은 주민 해설사와 함께 곶자왈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다.

곶자왈은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불규칙한 암괴 지대에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룬 지역이다. 제주 사투리로 숲을 뜻하는 ‘곶’과 나무나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진 수풀을 의미하는 ‘자왈’이 결합한 말이다. 예부터 곶자왈은 농사짓기 어려워 방목지로 쓰고, 땔감이나 숯을 얻는 데 이용했다.

새롭게 주목

최근 곶자왈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오랜 세월 불모지로 버려진 탓에 자연림이 형성됐고, 우리나라 최대 난대림으로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이 다양하게 공존한다. 짙푸른 산림 덕분에 텃새의 번식에도 큰 도움을 준다. 크고 작은 암괴가 두껍게 쌓여, 빗물이 지하로 유입돼서 지하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한겨울에도 푸른 나뭇잎과 양치식물, 이끼가 이산화탄소를 소비해 ‘제주 생태계의 허파’라는 평까지 얻었다. 이에 2011년 제주곶자왈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곶자왈의 체계적인 보전과 관리를 시작했다.

곶자왈은 제주 곳곳에 있지만, 청수마을이 속한 한경·안덕곶자왈은 애월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과 함께 제주 4대 곶자왈로 꼽힌다. 한경·안덕곶자왈은 주요 수종이 가시나무류와 녹나뭇과 식물인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멸종 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된 개가시나무의 최대 분포지로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청수마을에 자리한 청수곶자왈에도 다양한 희귀 식물이 자란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에 분포하는 섬다래, 제주와 거문도 등지에서 자생하는 가는쇠고사리, 2006년 제주에서 처음 발견돼 너럭바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 ‘빌레’를 이름으로 붙인 빌레나무 등이다. 또 늘푸른나무인 종가시나무가 수종의 70%를 차지해 1년 내내 푸른 숲을 자랑한다. 참나무에 속하는 종가시나무는 가을쯤 도토리가 익는데, 청수곶자왈에는 다람쥐가 서식하지 않아 겨울에도 탐방로에 도토리가 수북이 쌓여 계절을 잊게 만든다.


청수곶자왈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식물은 백서향이다. 꽃을 향료로 사용할 만큼 향기가 좋은 백서향은 한때 제주 곶자왈에서 흔했다. 그러나 달콤한 향기 때문에 조경이나 분재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마구잡이로 채취돼, 지금은 조천읍 선흘리와 이곳 한경면 고산리·청수리에 드물게 분포한다. 백서향은 이른 봄에 하얀 꽃이 피는데, 청수마을에선 2월부터 탐방객을 백서향 서식지로 안내해 그윽한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청수마을은 월·수·금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주민 해설사가 동행하는 청수곶자왈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둘레가 2.48㎞인 청수곶자왈은 해설을 들으며 둘러보는 데 어른은 60분, 아이들이 있는 경우 90분 정도 걸린다. 탐방로가 대부분 흙길이라 운동화 착용이 필수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곤란하지만, 숲이 우거진 곶자왈의 특성상 바람이 많은 날이나 가는 비가 내릴 때는 탐방이 가능하다.

울창한 숲 만날 수 있는 곳
곶자왈 탐방 프로그램 인기

여름밤에는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제주 사투리로 ‘불난지’라 불리는 반딧불이는 청정 자연을 대표하는 곤충이다. 청수곶자왈에는 한국 고유종인 운문산반딧불이가 대규모로 서식하는데, 6월 중순부터 7월까지 관찰할 수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곶자왈에서 만나는 반딧불이의 신비로운 노란빛이 도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낭만을 선사한다.

청수마을 체험 프로그램은 곶자왈 탐방 외에도 아크릴물감으로 추억의 고무신 꾸미기, 나만의 머그잔 만들기, 직접 그림을 그려 내 방을 은은하게 밝혀줄 수면등 만들기 등 다양하다. 월·수·금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진행하며, 탐방 프로그램과 함께 체험 가능하다. 탐방 프로그램 4000원, 체험 프로그램 1만2000원(통합권 1만4000원)으로 현재 네이버예약에서 신청할 수 있다.

청수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예술곶 산양이 자리한다. 폐교한 산양국민학교를 전시 공간으로 꾸며, 지역 예술가의 레지던시로 사용하고 다양한 기획전을 연다. 다음 달 31일까지 〈2021 예술곶 산양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 산양연회〉가 이어지는데, 이곳에 머물며 창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뜻깊다. 옛 초등학교 건물인 만큼 푸른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널찍하고, 곳곳에 쉴 만한 벤치가 있어 아이들과 들르기 부담 없다.

청수마을 주민도 즐겨 찾는다는 용수항에는 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이 볼거리를 더한다.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제주 용수리 해안에 닿았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목숨을 구한 것에 감사하는 미사를 올렸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처음 올린 미사로 큰 의미가 있다. 기념관에 이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하고, 야외에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라파엘호를 복원했다. 기념관 왼쪽에 어둠을 밝히는 등대 모양 기념성당이 있어 천주교 신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차귀도

용수항에서 바로 보이는 섬이 차귀도다. 근처 자구내포구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닿는다. 1973년 마지막까지 섬을 지키던 세 가구가 떠나면서 무인도가 된 차귀도는 각종 바닷새와 식물이 낙원을 이뤘다. 2000년 차귀도 천연보호구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2011년 일반에 개방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리고, 유람선을 이용하면 차귀도 트레킹과 함께 배 위에서 웅장한 해안 절벽까지 볼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청수마을→예술곶 산양→용수항→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청수마을→예술곶 산양→용수항→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
둘째 날: 자구내포구→차귀도→수월봉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비짓제주 www.visitjeju.net/kr
- 예술곶 산양 www.sanyang.or.kr  

문의 전화
- 제주시청 관광진흥과 064)728-2750
- 청수마을 064)772-1303
- 예술곶 산양 070-8990-8200
- 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 064)772-1252
- 차귀도유람선 064)738-5355

대중교통
[버스] 제주국제공항에서 151번 급행버스 이용, 오설록티뮤지엄 정류장에서 771-2번 지선버스 환승, 웃뜨르빛센터 정류장 하차. 제주국제공항에서 152번 급행버스 이용, 동광환승정류장2에서 771-2번 지선버스 환승, 웃뜨르빛센터 정류장 하차.
*문의: 제주버스정보시스템 064)710-2447, http://bus.jeju.go.kr

자가운전
제주국제공항→중문·노형 방면→중문·대정 방면→월산정수장입구에서 중문·한림 방면→해안교차로에서 직진→동광1교차로에서 동광·영어교육도시 방면→동광육거리에서 구억·구억리·영어교육도시 방면→영어교육도시1교차로에서 대정·영어교육도시·구억 방면→저지 방면→웃뜨르빛센터(청수마을)

숙박 정보
- 늘송파크텔: 제주시 원노형5길, 064)749-3303, www.nepark. co.kr
- 제주R호텔 제주점: 제주시 서광로14길, 064)757-7734, www.jejurhotel.com
- 제주에코스위츠휴양펜션: 서귀포시 중문상로, 064)738-9975, www.jejueco.com

식당 정보
- 맛있는폴부엌(파스타·스테이크): 한경면 녹차분재로, 010-2169-1624, www.instagram.com/paulkitchenjeju
- 양가형제 본점(햄버거·감자튀김): 한경면 청수동8길, 010-4938-5455, www.instagram.com/yangbrothersburger
- 제주고로(덮밥·우동): 대정읍 서삼중로, 064)794-9080, www.instagram.com/jejugoro

주변 볼거리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도지오름, 오설록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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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