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년' 국가수사본부의 초라한 성적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1.03 12:53:51
  • 호수 13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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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만 터는 ‘한국형 FBI’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한지 벌써 1년이 됐다. 경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기대했다. 1년이 지났지만 국민이 체감할만한 뚜렷한 성과는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일환으로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국수본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길 기대했지만 굵직한 사건을 총괄하는 데 결과가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다.

뚜렷한 
성과 없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수본 출범 1년을 맞아 지난해 성과를 되짚고 2022년 계획을 설명했다. 이날 남 본부장은 “2년 차에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 한 해 새롭게 출범한 국수본이 책임 수사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총력을 다했다”면서 “LH 부동산 투기 때 수사본부를 편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전화 금융 사기를 막기 위해서도 많이 집중했다”고 전했다. 

최근 사건 처리 기간이 늘어났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고소와 고발이 급격하게 늘어나 책임 수사 체제가 되면서 책임성 강화 및 수사 완결성을 높이는 바람에 사건 처리 기한이 늘어났다고 남 본부장은 분석했다. 


향후 국수본은 연초부터 전국 관서에 집중 수사기간을 설정해 신속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국수본은 출범 전부터 높은 국민적 기대를 받았다. 한국형 연방수사국(FBI)이라는 거대한 호칭이 붙으면서 국가 수사의 중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전망됐다. 1차 수사기구 역할을 맡게된 국수본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수사 지휘도 받지 않는다.

다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의 수사’에 대해서는 지휘·감독당할 수 있다. 가령 재난·테러·집단사태 등에는 경찰청장이 개입할 수 있다. 국수본은 형·수사 기능은 물론 보안·외사 수사 관련 분야까지 포괄해 담당한다.

나아가 국내 유일한 대공 수사 기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불송치 결정 등 주요 권한 행사는 주로 국수본 소관에서 이뤄줬다.

국수본이 출범한 한 달에 경찰 신뢰도를 하락시킨 일이 발생해 수사에 들어갔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당시 변호사)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이다. 경찰 수사 담당자가 당시 이용구 변호사가 법무부 간부 출신의 변호사라는 점을 알고 윗선에 보고해 ‘봐주기’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남 본부장은 지난해 5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확인된 바로는 서울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계 직원이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과 실무자에게 (이 차관 신분을)통보한 것 외에, 정식 보고나 수사라인 보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초경찰서 간부들 사이에서 이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공유됐다는 것을 파악했다. 서초서 생활안전계 직원이 이 차관의 신분을 파악하고 상급 기관인 서울청에 세 차례 관련 보고를 한 사실도 인정했다. 


이 전 차관 폭행 사건 부실 대응
LH 부동산은 혐의도 입증 못 해

그러면서도 해당 보고가 서초서와 서울청 실무 직원들 사이의 대화였을 뿐 정식 보고는 아니었고 경찰청 본청 역시 이 차관 관련 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국민은 ‘경찰이 권력을 의식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경찰은 앞으로 일선 경찰서에서 취급하는 중요 인물들의 내사 사건은 수사 사건처럼 시도 경찰청 및 경찰청 국수본으로 보고해 지휘를 받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국수본은 대규모 수사를 통해 신뢰도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국수본이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을 총괄 수사 지휘하면서 경찰의 수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가 뿌리부터 흔들릴 정도로 국민의 분노가 커지면서 경찰로서는 부담을 안게 됐다.

국수본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LH 직원들이 신규 공공택지로 발표된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7000평가량을 약 100억원에 먼저 사들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지 사흘 뒤 5일 ‘부동산 투기 사범 특별수사단’을 편성했다.

당초 국수본은 민변과 참여연대의 폭로 이후 시민단체가 고발한 이 사건을 논란이 된 개발 예정지 관할인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첩했다.

하지만 국민의 비난이 LH를 넘어 정부를 향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를 거듭 지시하면서, 국수본이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사건을 총괄 지휘하기로 했다.

국수본을 중심으로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꾸려져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위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3개월에 걸쳐 2800여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34명이 구속됐고 908억원의 재산이 몰수·추징 보전 조치됐다.

아쉬운
용두사미

전직 차관급 기관장을 비롯해 기초자치단체장 등 공직자들의 불법 행위도 확인됐다. 

당시 수사 대상에 오른 주요 공직자는 국회의원 16명, 지방자치단체장 14명, 고위공직자 8명, 지방의회 의원 55명, 국가공무원 85명, 지방공무원 176명, 기타 공공기관 47명 등이다. 다만 수사 규모에 비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국회의원 5명 가운데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1명만 강제수사를 받았다. 나머지 4명 중 2명은 불입건됐고 남은 2명 또한 무혐의 처분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불입건이란 범죄 혐의나 공소권이 없을 때 또는 사건이 성립하지 않을 때 관련자를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투기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의 범죄 혐의가 애초 뚜렷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경찰의 부동산 투기 수사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유력 인사의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우선 국토교통부 등 고위공직자 구속자가 전무했는데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 보좌관을 구속기소한 게 최대 성과로 꼽힐 정도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국회의원 중 4명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LH에 근무하면서 인터넷에서 토지경매 강의를 하며 ‘경매 1타 강사’로 활동한 A씨에 대해 내부정보이용 혐의 등을 수사했지만,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고 불송치로 사건을 종결했다.

3월 사법시험 준비생 모임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A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와 친·인척이 매입한 부동산과 주변 개발 계획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부동산 매입 이전에 이미 개발계획이 발표돼 비밀성이 상실된 것으로 판단했다.

국수본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원과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수사는 물론 중요하지만, 말단부터 고위직을 가리지 않고 공직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부동산 부패를 근절하는 것이 이번 수사의 의의이자 최대 과제”라고 강조했다.


고위공직자 
구속자 전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국수본은 지난해 4월 금융정보분석원(FIU)로부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의 자금 흐름 내역을 넘겨받았지만 5개월간 사건을 방치해 뭉개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약 5개월 뒤 국수본으로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무소속 곽상도 의원 아들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원 수수 의혹’, 화천대유 관련 수상한 자금흐름 관련 내사 등 3건을 이송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국수본 집중 지휘 사건으로 관련 사안을 이송받은 경찰은 처음엔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 했다. 경찰은 경기남부청 반부패수사대 수사관 27명과 서울청 지원 수사관 11명 등 38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사흘 만인 10월1일 수사팀 규모를 62명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키맨으로 불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휴대전화를 찾는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의 엇박자가 드러나면서 진실 규명 작업을 두고 중복수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자아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의 적극적인 협력 수사’를 직접 주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곽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수수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고, 다른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검찰과 중복 지적을 받으며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10월 진행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시작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가 5개월 넘게 진척없이 지지부진했다는 여야 행안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위원들은 약 5개월 동안 입건 전 조사(내사)만 진행하는 등 수사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5개월 동안 참고인 조사를 제외하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건 외압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 지적에 “최초 배당이 경제팀으로 되다 보니 다른 사건과 함께 수사를 해 시간이 걸렸다”며 “경찰은 자료를 분석해 혐의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국수본이 다각적인 방안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FIU 자료 분석 등 초기 적극적이지 못했던 부분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앞으로 진행되는 수사는 국가수사본부장이 직접 장악해 책임 수사를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 본부장은 ‘대장동 의혹’ 사건을 서울경찰청이 수사하지 않고 일선 용산서로 배당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경제범죄 수사 의뢰 개념으로 봤고 통상 절차대로 관계자 1명 주소지를 고려해 관할인 용산서로 배당했다”고 답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 뭉개기 비판
검찰과 엇박자…중복 수사 우려

또 국수본은 정계·법조계·언론인 등이 연루된 ‘가짜 수산업자’ 수사 역시 로비 의혹을 밝혀내려 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이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출신 김태우씨가 수산업자라고 사칭한 뒤 포항에서 오징어 사업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현혹해 백억원대 사기를 친 사건이다.

그는 정치권과 검찰·경찰·언론·교육·연예·의료계 인사들과 어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김씨가 정치인과 검경 간부, 언론인 등 최소 27명에게 선물을 보냈고 특히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이모 검사·이모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에게는 고급 차량을 무상으로 빌려주거나 골프채 등을 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씨가 116억원 규모의 대형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로비를 벌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멈췄다.

경찰은 김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7명을 검찰에 넘기면서 모두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 적용했다. 대가성이 있다고 인정됐다면 금품을 받을 당시 현직이던 박 전 특검, 김무성 전 의원, 이 검사는 뇌물죄로 처벌될 수도 있었다.

뇌물죄는 액수가 적더라도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청탁금지법 위반보다 형량이 무겁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가 금품을 뿌린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끝낸 것이다.

이처럼 국수본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굵직한 사건에 대해 늑장수사와 부실 대응이 이어지며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수본은 출범 2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더 내겠단 입장이다. 남 본부장은 “수사의 완결성과 신속성 두 가지가 잘 조화될 수 있도록 대응할 예정”이라면서 “연초부터 집중 수사 기간을 설정해 그동안 지연된 사건들에 대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활약은 
여기까지?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민 입장에서는 경찰이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것뿐이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독립된 수사기관으로서 국수본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한층 강화된 수사역량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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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