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지금도 꿈꾸는 프리마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밤의 여왕 아리아>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는 한국의 조수미를 포함해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근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로써 조수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2017년 경북 안동에서 열린 조수미 30주년 데뷔 기념 ‘조수미 콘서트’는 관객들의 행진이 이어져 조기 매진됐다. 지난 30년간 오페라, 가곡 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세계 각국을 누비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조수미가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세계 무대로 
활발한 활동

지난 13일(한국시각)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제17회 2021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입회식에서 조수미는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한국인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조수미가 최초다.

조수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의 바스티유‧가르니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30세 이전에 휩쓴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조수미는 지난 35년간의 노력으로 개인의 명예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인정받게 돼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네스코의 평화예술인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다음 35년 또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은 2004년 미국 시애틀을 근간으로 창립된 비영리단체다. 아시아인들이 세계 발전에 끼친 공로를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시안 리더를 선정, 동시에 아시안들의 권리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들에 대한 폭력과 편견을 개선한다.

아시안 문화를 비롯해 다른 다양한 문화 간 유대감을 높여 상호 존경심과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는 소프라노 조수미뿐 아니라 미국과 인도, 자메이카, 홍콩 출신의 인물 10명이 새로 선정됐다. 

10명의 인물 가운데 예술 분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일본계 미국인 대중음악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 중국계 자메이카인 기타리스트 필첸 등 3명이 포함됐다.

과거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홍콩 배우 이소룡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국 언론인 코니 정,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 등이 있고 한국인으로는 조수미가 최초다.

공식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조수미는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여러 가지 장르의 국내활동으로 대중들이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평범한 성악가로 남기보다는 노래뿐만 아니라 의상과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등 늘 새로운 음악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엔터테이너’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통 성악에서 벗어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 말해왔다. 

실제 조수미는 2006년 국내 성악가 중 최초로 바로크 음반을 냈다. 또 2008년에는 스웨덴 민요를, 2010년에는 독일 가곡 앨범을, 나아가 2011년에는 스페인의 민요를 내는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각종 드라마의 음반 작업과 OST 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MBC 드라마 <허준>의 ‘불인별곡’,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불러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전에 쓰이며 유명해졌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명예의 전당’
유일한 동양인…‘세계를 사로잡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제 조수미는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을 100만장 이상 판매하며 클래식 사상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1994년 발매한 한국 가곡집 ‘새야새야’가 40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 히트시킨 연주자기도 하다.

조수미는 오페라에서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것보다 독창회나 콘서트를 여는 등 관중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오페라 출연보다 음반 작업을 선호해 독창회 등 콘서트를 통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수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소프라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든든하게 조력자 역할을 해준 부모 덕분이다. 어린 조수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다. 

네 살 무렵 한 번 들은 노래를 피아노로 거의 완벽하게 따라서 연주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본 모친은 딸이 재능을 펼 수 있도록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지원했다. 더불어 자신도 딸과 같이 연습을 병행하고 피아노 학원까지 함께 다니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조수미의 부친도 미래에 세계 무대를 누빌 딸을 위해 일찍부터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에 직접 찾아가 10년 뒤에 열 공연을 미리 예약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부모의 이 같은 무한한 신뢰와 칭찬은 어린 조수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영향으로 조수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든든한 부모의 지원 아래 조수미는 선화예술중학교에 진학했고 본격적인 성악 전공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을 위기의 순간마다 발휘해 당당히 실력을 입증했다. 조수미가 서울대학교 성악과 입학 실기 시험을 보러 갔을 당시 일화는 매 학기 후배들에게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예술을 전공하려면 대학교의 실기시험을 따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결정짓는 실기 시험 당일에 피아노 반주 연주자가 도착하지 않아 모두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교수들은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학생을 찾았고 엄숙한 시험장에서 조수미는 용기 있게 손을 들어 지원했다. 

천부적인 
음악 재능

의심의 눈초리로 조수미를 바라보던 교수들을 향해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지원자 60명의 곡을 전부 반주해냈다.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오자 반주에 직접 노래까지 부른 교수들은 조수미의 실력에 감탄해 역대 최고점수를 줬다.


이후 조수미는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진학 후 각종 노래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게 시시하게 느껴질만큼 자만에 이르렀다. 자유로운 대학 분위기에 한껏 매료됨은 물론 각종 유흥문화에 재미를 붙여 연습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 조수미는 “학교(서울대)에 들어가자마자 연애를 진하게 해, 공부를 안 했다. 졸업 정원제도가 있었는데 꼴등했다. 수업을 안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학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조수미의 방황을 눈치 챈 부모와 교수가 해외에서 공부하길 권유해 유학길에 오른 그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조수미는 “혼자 눈물을 머금고 이탈리아 유학을 가게 됐다. 어버지가 딱 300불을 줬던 시절,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짧게 공부하고 빨리 오려고 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노래해서 뭐하나 생각했는데 3개월 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결심, 마음을 다잡고 독하게 성악 공부를 하게 됐다”며 성악에 올인한 계기도 설명했다.  


다잡은 마음과 달리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983년 당시엔 실제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배역을 맡으려면 금발머리를 가진 유럽형 외모가 필요했다.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캐스팅에서 제외하며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수미는 1986년 공연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해 나부터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참석했다.

등 떠밀리듯 
유학길 올라

조수미가 종종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소위 ‘오페라의 나라’다. 일찍부터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 조수미는 ‘과연 동양인이 성악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프리마돈나로 설 수 있을까’라는 시선을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다. 조수미는 최근 <유퀴즈>에 출연해서도 이와 관련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유학 당시 ‘수미 조,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시선에 견디기 힘들었다며 “하루에도 백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 하는 심정으로 악으로, 매일매일 답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악으로 버틴 조수미는 그 후 핀란드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첫 국제발표회를 가졌다. 마침내 조수미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수많은 관객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질다의 모습을 연기한 조수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질다를 연기한 조수미는 박수갈채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인 카라얀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까지 받게 됐다. 이 후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찬사를 내린 후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가 됐다.

조수미의 첫 앨범은 아델레 백작 부인 역을 맡은 오페라 오리백작에서 부른 곡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조수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난도의 곡을 완벽히 불러내면서다. 그중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를 부른 건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최고음을 20분가량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으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악보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본이 아닌 원본 악보를 보고 완벽하게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조수미는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해 음반을 냈는데,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피, 땀, 눈물…진화하는 연습 벌레
<밤의 여왕 아리아> 소화 단 세 명 뿐

특히 지금의 조수미를 만든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곡으로 이뤄진 음반이다. 이 음반은 3년간 3개가 녹음되어 나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통 한 회사는 오페라 전곡을 녹음한 가수와 3~5년간 타사의 같은 오페라를 녹음할 수 없는 것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지휘자 였던 ‘게오르그 솔티’가 조수미에게 <마술피리> 작품에 대한 오디션을 요청했고 조수미가 오디션 후 조수미의 목소리가 탐난 솔티가 녹음사인 에라토사를 적극적으로 설득시켜 이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당시 솔티는 “75세인 자신의 마지막 <마술피리>가 될지도 모르는 녹음에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를 가진 밤의 여왕과 함께하고 싶다”는 편지를 에라토사에 보냈다.

결국 완강하던 에라토사의 허락을 맡았고 그렇게 데카와 에라토 레이블로 1991년 1992년 1993년에 각각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로 3개의 <마술피리> 음반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솔티는 조수미에게 “내가 만난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됐고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도 수상했다.

당시 세계적인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며 감탄했다.

또 공연을 보도한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으며 프랑스 <르 몽드>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조수미는 지난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선정돼 베이징올림픽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수미는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로 임용된 조수미는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인생의 전반전이 전문 성악인으로서 혼신의 힘을 쏟은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후학 양성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될 테다.

조수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 한국의 대학 강단에 서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2023년에는 프랑스에서 조수미의 이름을 딴 성악 전문 국제콩쿠르도 창설될 예정이다.

고난도의 곡
완벽히 불러

이 또한 조수미가 오랫동안 구상한 인생 후반전의 최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이미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제반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열릴 이 국제콩쿠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젊은 성악가가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수미는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lyricki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럽 코로나19 재확산
조수미 데뷔 35주년 공연 취소

소프라노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이 유럽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조수미는 지난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을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는 변수가 발생했다.

현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역 조치를 강화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조수미 콘서트를 준비한 공연 기획사 SBU의 유소방 대표는 “코로나19 확산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강화된 방역 조치에 부득이하게 취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기획사 측은 “추후 공연을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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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