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서 만나는 '칸의 여왕' 전도연

“배우로선 성공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전도연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배우 전도연과 연기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은 하나같이 전도연의 상대역이 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연기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맡은 인물의 본질을 찾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전도연은 글자로 적힌 인물의 내면을 오롯이 구현해내고야 만다. 깊고 풍부한 감정의 파편을 포착해내는 배우 전도연이 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작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다. 

영화 <무뢰한>을 본 후 이동진 평론가는 한 줄 평을 이렇게 남겼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작품을 진단하는 평론가로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는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이 평론가는 <무뢰한>에서 배우 전도연은 퇴물이 된 술집 여인 혜경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느끼는 동시에 점점 나락으로 치닫는 한 여인의 절박함, 그리고 그 사이 빚어지는 갈등에서의 분노, 안으로 삭아 들어가는 참담함까지 표현했다고 했다. 

극한의
리얼리즘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력은 평가마저도 예술적으로 바꿔내는 듯하다.

<무뢰한>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술집 여자 혜경은 희망처럼 찾아온 한 남자가 사실은 경찰로 전 남자친구였던 살인범을 잡기 위한 도구로밖에 자신을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절망하는 인물이다.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는 평생 경험하기 힘든 삶을 몸소 체험하는 인물이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온전히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당당했던 첫 장면부터 너무 안쓰러워 쳐다보기도 힘든 처지에 이른 마지막 장면까지, 전도연이 만든 혜경은 극한의 리얼리즘을 갖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을 추측으로 풀어내는 건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전도연에게 주어진 배역은 언제나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사건과 갈등이 즐비했다. 어떤 험난한 상황과 내면적 고통이 주어지더라도 전도연은 늘 마치 그 인물이 우리 옆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전도연의 연기 인생은 한 잡지사의 상품을 받기 위해 간 자리에서 모델로 발탁되면서 시작한다. 애초에 연기자의 꿈이 그리 크지 않았던 10대 시절 전도연은 톡톡 튀는 외형과 밝은 에너지로 광고모델을 거쳐 연기자로서도 비교적 쉽게 데뷔한다. 

이름이 크게 알려지기도 전에 영화 <접속>에 캐스팅돼 한석규와 호흡을 맞춘 뒤 엄청난 흥행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에 각인시킨다.

할리우드나 홍콩영화에 밀려 한국영화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 <접속>의 누적 관객 기록은 한국영화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도연이 매우 뛰어난 연기를 하는 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한 작품은 <해피엔드>부터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다 걸린 뒤, 결국 남편의 복수심으로 인해 상해를 당하는 내용의 이 작품에서 그가 보인 애정은 리얼리즘 그 자체였다.

다양한 애정신에서 그가 보인 얼굴은 이전에는 없었던 현실성이 담겨있었다. 이기적인 언행조차 공감되게 이끌었으며, 표현하기 어려운 쾌락의 영역 또한 온몸으로 구현했다.


JTBC 10주년 특집 <인간실격> 주인공
<굿와이프> 이후 5년 만 드라마 복귀

전도연은 <해피엔드>를 기점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비로소 인식했다고 한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촬영 전에는 그가 연기한 보라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촬영 말미에서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았다면서 처음으로 배우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전도연의 작품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영화 <밀양>에서는 결혼 전이었음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 나와 극단적인 모성애를 표현했다. 

<밀양>의 신애는 신을 빌미로 장사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시스템 때문에 상처받고 점점 미쳐가는 인물이었다. 괴로움을 겪다 희망을 찾았다가 밀려오는 배신감으로 분노하고 급기야 광기로 이어지는 신애의 변천사를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히 표현한다.

문화의 본고장인 유럽의 영화인조차 감동하게 한 연기력이었다. 

아시아권에서도 손에 꼽히는 업적을 남긴 후, 영화인 누구나 전도연이 대작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그가 향한 곳은 저예산 영화 <멋진 하루>였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갑작스레 찾아와 다짜고짜 300만원 가까이 되는 빌린 돈을 갚으라고 땍땍거리는 희수를 연기했다.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도연에게는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가진 비현실성이라는 여백을 전도연이 충분히 있을법한 인물로 채워낸다. 그 과정에서 배우 하정우와 함께 일으키는 연기적 시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전도연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고인이 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서 그는 파출부였지만, 주인집의 가장 훈(이정재 분)과 애정을 통해 계급 상승을 노리는 은이를 연기했다.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한 욕망에 불과했던 것으로 점철되는 내용의 <하녀>에서 전도연은 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선을 드러냈다.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하녀>가 이토록 회자되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도전의 연속
필모그래피

매 작품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오롯이 끌어내는 그다 보니, 전도연에게는 점점 어둡고 무거운 작품만 밀려오게 된다.

10일 안에 목숨을 구해야 하는 남자와 손을 잡은 사기 전과범이었던 <카운트다운>,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순진하게 마약을 싣고 가다 10년 동안 가족과 생이별했던 <집으로 가는 길>, 말 그대로 전도연이 어떤 여배우인지 보여준 <무뢰한> , 우연히 알게 된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진 뒤 저돌적으로 돌진한 <남과 여>, 우리에게 여전히 아픈 상처인 2014년 4월의 사건을 재구성한 <생일>까지, 전도연에게는 늘 어렵고 고된 삶을 사는 인물이 주어졌다.


연기하기 어렵고 힘든 작품을 피하고 싶었던 전도연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비상선언>으로 비교적 가벼운 톤의 상업 영화에 출연한다. 아무리 톤이 가볍다 해도, 전도연이 스크린에 등장하면 공기는 전도연의 내음으로 바뀌어버리지만, 그간 전도연이 걸어온 필모그래피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그런 전도연이 다시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기한다. JTBC 드라마 <인간실격>에서다. JTBC 10주년 특집 <인간실격>은 다소 무거운 작품이다. 출판사의 작가에서 모든 걸 잃은 40대 여인과 20대임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무겁고 어려운 작품을 피해 계속 기다리다가 만난 작품”이었다고 밝힌 전도연은 “어둡지만,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4회까지 공개된 이 작품에서 전도연은 다시 깊은 우울감을 그려낸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부정은 꽤 잘나가는 출판사의 작가였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통째로 빼앗긴 후 호텔에서 파출부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을 앗아간 정아란 작가(박지영 분)에게 악성 댓글을 남기고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한다. 복수심과 분노가 지나치게 넘쳐 극도의 우울함에 빠져 있다.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시어머니(신신애 분)와 악을 쓰며 싸우기도 한다.

우울한
낙오자


고부간에 낀 남편은 어떻게든 중간다리 역할을 해보고자 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할 뿐 현명하지는 않다.

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남은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라 여기고, 목숨을 던지려 용기를 내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나마 부정을 극진히 아끼는 아버지(박인환 분)가 있지만, 그저 미안한 존재일 뿐이다. 

숨은 붙어 있지만, 마음이 오롯이 작동하지 않는 아픈 인간을 공감되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 겨우 초반부임에도 전도연은 엄청난 열연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어린 나이부터 배우로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은 그가 사회의 낙오자인 부정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국내 수많은 여배우의 롤모델이자, 창작자라면 누구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전도연 아닌가.

그런 그가 인생의 반을 살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부정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제게 ‘너가 부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질문했어요. 부정은 꽉꽉 닫혀있는 인물이거든요. 그 인물의 마음을 어떻게 열어갈지 걱정이 너무 됐었어요. 부정을 알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고요. 촬영하면서 조금씩 부정의 마음을 알아간 것 같아요.”

“저 스스로 명백하게 ‘인간 실격’이라고 규정지은 적은 없어요. 그럼에도 제게는 배우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도 존재해요. 다른 쪽의 삶을 생각해보면 완성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여전히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방영 전에 모든 촬영을 마친 <인간실격>은 공개되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영화 위주로 작품활동을 해오던 전도연의 5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고, 상대역이 청춘을 대표하는 류준열인데다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본질 찾아 늘 치열하게 싸우는 ‘연기 달인’
“나 역시 부족한 사람, 노력으로 채워가요”

특히 전도연의 복귀작이라는 데 대중의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 기대감이 만족감으로 채워지기에, 충분한 초반부다.

연기력에서 경지에 오른 전도연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 있게 대처할 듯 보이지만, 그 뒤에는 인물의 본질을 찾기 위한 그의 치열한 싸움이 있다. 상대역인 류준열은 전도연 덕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전도연이 연기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도연 선배님을 보면 연기 달인으로서 굉장히 여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촬영하는 동안에 괴로워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제가 경력은 얼마 안 되지만, 촬영장에서 여유를 찾은 부분이 있거든요. 이런 부분을 점검하게 되고 초심을 되찾는 계기가 됐어요.”

현장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뛰어난 연기력의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듯하다. 전도연이라는 이름은 많은 남자배우의 캐스팅 이유가 되기도 한다. <멋진 하루>의 하정우나, <무뢰한>의 김남길, 이번 <인간실격>의 류준열조차도 전도연의 상대역이라는 것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저 전도연과 한 번 연기해보는 것이 목적이 된 셈이다. 빠른 호흡으로 자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요즘 국내 드라마계에서 트렌드로 통용된다. 하지만 <인간실격>은 처음부터 느리며, 호흡도 길다. 장면이 빠르게 넘어가서 눈을 사로잡기보다는,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며 깊은 감정을 염탐하는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전도연에게도 상대역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듯 보인다.

“저는 준열씨가 이 작품 안 할 줄 알았어요. 남자 배우들은 대체로 크고 화려한 작품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강재를 준열씨가 연기한다고 했을 때 의외였어요. 그래서 초반 촬영할 때 스태프들에게 ‘우리 잘 어울려?’라고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이제 드라마는 서서히 속도를 낸다. 초반 던져진 갈등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올 전망이다. 부정은 여러 고난에 정면으로 부딪힐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전도연이 그려내는 희망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설렘
희망

“이 작품에는 설렘이 있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부정이 한 남자를 만나면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거든요. 실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이 안에는 내가 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요. 사건이 크고 미사여구가 화려하진 않지만, 인간이 느끼는 풍부한 감정이 오롯이 살아 있는 작품이에요. 역경 속에서도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부정을 시청자분들이 응원해주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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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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