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안철수-박근혜 '100일 전쟁' 대예측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10 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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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일격…'안풍' 때릴까? '박풍' 맞을까?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가 지난 6일 "대선 불출마를 종용하는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불출마 협박이라는 사상초유의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선구도는 크게 출렁이고 있다. 게다가 안 원장 측은 새누리당의 불법사찰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불과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제18대 대선에 이번 파문이 미칠 영향을 분석해봤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가 지난 6일 취재진들에게 기자회견 사실을 긴급 공지했다. 안 원장 측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처럼 기자회견을 갖고 대언론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지난 2월 안철수재단 출범 이래 처음이다.

신의 한수
새누리는 협박당?

당초 대다수의 기자들은 안 원장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안 원장은 재개발딱지 구입 논란, 포스코 사외이사 논란 등 잇달아 터져 나온 언론의 검증 공세로 수세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지지율도 하락세였다.

그러나 이날 금 변호사가 밝힌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의 정준길 공보위원으로부터 대선 불출마를 종용하는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방어를 예상할 때 회심의 역공을 선택한 '신의 한수'였다. 한 정치전문가는 "안 원장이 이번 폭로를 통해 최근 거세진 '검증' 문제를 한방에 잠재우는 것과 동시에 새누리당에 정치적 협박당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웠다"고 평가했다.

금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정 위원은 지난 4일 오전 금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 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 구체적인 협박 내용은 안 원장이 안랩 설립 초창기인 1999년 산업은행의 투자를 받는 과정에 강모 투자팀장에게 주식 뇌물을 제공했고,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최근까지 사귀고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박근혜의 꼬리 자르기 이번에도 통하나?
협박보다 중요한 진짜 쟁점은 '불법사찰'

물론 안 원장 측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새누리당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각 반박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정 위원은 불과 얼마 전에 공보위원으로 임명돼 불출마를 종용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친구 사이에 한 이야기를 가지고 마치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공작을 한 것처럼 부풀려 말한다"며 "이는 최근 불거진 검증공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금 변호사와 정 위원은 서울대 법학대학 86학번 동기다.

어찌됐든 양측의 공방은 진실 여부에 따라 어느 한쪽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대선 판도에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안 원장 측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유력한 범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유례없는 협박이 시도된 것이어서 박 후보에게는 상당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 위원의 주장처럼 친구사이에 오간 얘기를 과장해 폭로한 것이라면 오히려 안 원장 측의 정략적 행태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일단은 안 원장 측이 녹취록을 확보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의 공방은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에서 불출마협박을 계획적으로 당 차원에서 종용한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새누리당이 네거티브를 근거로 안 원장에게 불출마협박을 한다고 해도 효과가 있겠는가? 새누리당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 위원 측의 주장대로 개인적인 통화과정에서 나온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양측 진실공방
대선 분수령

그는 또 "박 후보는 공천헌금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을 정 위원 개인의 말실수로 치부하며 꼬리자르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며 "의외로 협박논란은 대선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는 "새누리당의 공보위원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발언에 신중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어서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며 "박 후보로서는 어찌됐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공공연히 이뤄졌던 야당 정치인에 대한 협박과 비교되며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안 원장 측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단 금 변호사와 정 위원이 같은 대학 동기라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동기 간에 충분히 할 수도 있는 말들을 금 변호사 측이 너무 과장되게 부풀리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녹취록도 없는 상황에서 폭로전을 펼치는 것은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기존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묻지마 폭로정치'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금 변호사의 이번 폭로가 반드시 안 원장의 대선가도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진짜 중요한 쟁점은 바로 '불법사찰' 논란이다. 금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 위원이 '우리가 조사해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며 "정 위원의 언동에 비춰볼 때 정보기관 또는 사정기관의 조직적 뒷조사가 이뤄지고, 그 내용이 새누리당에 전달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며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안 원장 측은 정 위원이 협박한 내용과 최근 계속되는 검증 공세의 배경에 사정기관이나 정보기관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근 안 원장에 대한 잇단 검증 공세 과정에서 제기된 안 원장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정보기관 등의 뒷조사가 아니면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정 위원이 2002년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패스21'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관련 부분을 조사한 실무 검사였다는 점은 이 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묻지마 폭로
득일까? 실일까?

또 얼마전 일부 언론에서 경찰이 지난해 초 안 원장의 룸살롱 출입과 여자 문제 등 여러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안 원장 측의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관영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안 원장 관련 유언비어를 기사로 게재해 달라는 보도 청탁이 있다는 사례가 제보됐다"며 "새누리당이 정보기관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해 더욱 논란을 키웠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유신의 망령이 등장한 것"이라며 "집권도 하기 전에 정치사찰을 하고 협박하는 세력은 반드시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처럼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서 안 원장을 적극 지원 사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안 원장이 새누리당으로부터 불출마 종용을 목적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7일 '이명박 정권 불법사찰 진상조사위' 구성을 의결하고 이 문제를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정치공작 차원으로 풀어가기로 했다. 박 후보로선 큰 부담이다.

12월 대선 양강 구도로 급속 재편
정치권 "안철수 정치력에 경악"

정치전문가들은 "협박 논란이야 정 위원의 개인적 말실수로 치부할 수 있다고 해도 불법사찰 논란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박 후보와 새누리당 전체가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초대형 악재"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안 원장 측의 이 같은 대응은 안 원장이 출마결심을 굳혔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전문가들은 그간 기존 정치권과 다소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 온 안 원장이 이날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에 대한 직접 공격에 나서며 사실상 정치판에 발을 담근 것 자체가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특히 금 변호사가 기자회견 당일 이를 안 원장에게 알렸을 때, 안 원장이 여기에 대해 특별한 반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기자회견은 안 원장 본인의 의지가 분명히 반영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 측의 이번 폭로를 놓고 안 원장의 정치력에 또 한번 놀랐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일방적인 언론의 검증공세에만 시달리며 대중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졌던 안 원장이 순식간에 박 후보와의 확실한 양강구도를 굳혔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일단 '공공의 적'인 박 후보를 견제하는데 힘을 보태자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는 안 원장에 가려 민주당 대선후보 전체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금 변호사 측이 정 위원에게 지난 4일 전화를 받았다고 하는데 왜 하필 지난 6일에 이를 발표 한 것인지 의구심도 든다"고 말했다.

박근혜와 정면대결
출마결심 굳혔나?

지난 6일은 민주당의 광주·전남 경선이 치러진 날이다. 게다가 같은 날 박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을 찾아 대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동시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대선을 불과 100여 일 앞둔 정치권은 일단 사태 추이가 어떻게 흘러갈지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지지율 1,2위의 대선주자들이 연관된 데다 '협박' '뒷조사' 등의 민감한 문제라 이번 사태가 당분간 대선정국의 가장 큰 이슈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앞으로 안 원장과 박 후보가 펼칠 정면대결에 정치권과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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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