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하정우, 프로포폴 불법 투약 전말

S급 스타의 꺾여버린 날개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중과 평론가를 막론하고 S급 배우로 손꼽히는 하정우가 데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연기뿐 아니라 연출과 제작에도 능하고, 각종 현장에서 빛나는 예능감을 가진 당대 최고 스타의 날개가 꺾였다. 스스로 만들어낸 암초에 부딪힌 탓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출연한 배우 하정우는 백작과 실제 자신과 어떤 점이 닮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는 “백작과는 모르겠고, 조병운과 닮았다”면서 “명쾌하고 생존본능이 강한 점이 닮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만든
암초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조병운은 영화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인물이다.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인간적이고 멋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테다. 

<멋진하루>는 경마장에 있던 병운에게 헤어진 전 여자친구 희수(전도연 분)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다짜고짜 돈을 갚으라면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수년 전 희수는 갑자기 병운을 떠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잠수까지 탔던 인물이다. 상처를 주고 떠난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 350만원을 갚으라고 다그치는 것.

화가 날 만한 상황이지만 병운은 그 사정을 이해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돈을 꾸러 다닌다. 10만원 20만원, 100만원씩 받아 가면서 병운은 희수가 말한 빚을 채운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병운이 ‘희수를 분노케 할 만한 나쁜 짓을 했겠거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바다같이 넓은 아량을 가진 병운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를 넘어 국내에서 가장 멋진 남자 캐릭터를 찾아보라고 해도 손에 꼽힐 만큼 멋진 배역이다. 하정우는 병운의 모습을 스스로 가장 닮았다고 자부했다.

실제 그는 병운과 적지 않게 닮아있었다. 내뱉은 말은 억지로라도 지키고, 실언이 되지 않도록 주워 담고 살려는 노력이 있었다. 탤런트 시험에 불합격하면 군대에 가겠다고 호언장담한 뒤 실제로 탤런트 시험에 떨어지자 군대에 간 사연, 아버지의 후광을 피하고자 이름을 바꾼 것,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내에서 선후배 동료들을 멋지게 이끌어나간 리더십이 그 예다. 

자신의 영역에서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는 점은 병운보다도 나았다. 영화 <추격자> <황해> <비스티 보이즈> <더 테러 라이브>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을 보여준 모습이나, 각종 현장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독특한 색감의 유머를 구사하며 주위를 즐겁게 하는 지점도 그렇다. 

<황해>로 연기상을 수상하면 국토대장정을 가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뒤 실제로 수상하자, 굳이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연출까지 감행하며 영화 <577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대 선후배들과 힘을 모아 만든 영화 <롤러 코스터>는 업계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이윤기 감독을 비롯한 <멋진 하루>팀이 조병운을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를 끝내 완성한 사람은 하정우다. 하정우 내면에 조병운과 같은 면이 없었다면, 그토록 포용력이 넓고 인간미가 짙은 조병운은 없었을 테다.

피부 수술 19번 투약 혐의 재판
찝찝한 차명 진료…진실은 무엇?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받을 장점이 풍부했던 하정우는 최근 적지 않은 실망감을 주고 있다. 시선에 따라 누군가는 하정우가 저지른 행동이 큰 죄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스타급 배우가 보여줘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팬들의 사랑을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하정우는 데뷔 이후 최초로 법원에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았다. 지난 2019년 1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피부미용 시술을 받으며 프로포폴을 19회에 걸쳐 불법 투약한 혐의다. 

아울러 해당 성형외과 원장에게 지인의 인적사항을 건네줘, 해당 지인이 프로포폴을 투약한 것처럼 진료기록을 9회에 걸쳐 허위기재하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애초 검찰은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법원은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이는 법원이 봤을 때 약식으로 처리하기엔 죄질이 무거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좀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겠다는 심리다. 

이런 경우 법원이 직접적으로 수사에 관여할 수도 있어, 검찰이 구형한 벌금형 1000만원보다 더 큰 형량이 나올 수도 있다. 특히 해당 병원에 치료한 목적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 때문이라는 게 드러난다면, 형량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법무법인 새나의 백지윤 변호사는 “실제 판결 내용을 보지 않고, 언론에 나온 이야기로 말하기에 조심스럽다”면서 “마약류 위반에 관련해서는 비정기적으로 몇 차례만 투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 이상의 실형이 나오기도 한다. 마약류 위반에 대해서는 죄를 강하게 묻는 추세”라고 말했다. 

하정우는 프로포폴 투약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관련 증거도 인정했다. 다만 대부분의 투약은 피부 시술과 병행했고 투약량에 대해선 실제 투여한 양이 진료기록부상 보다 현저히 적었다고 주장했다. 불법적인 투약은 아니라는 것. 

합동 공모?
지나친 배려?

또 지인의 이름으로 진료한 것에 대해서는 병원 측의 요구에 응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정우가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혹시나 문제가 될 것을 추측해 하정우 측의 뜻과 상관없이 지나치게 배려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하정우가 프로포폴을 처방 및 투약받은 병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 등에게도 불법 투약했던 곳이다.

지금은 폐업한 서울 강남 언주로에 있던 인피니 의원은 원장 의사를 비롯해 간호조무사인 총괄실장은 1심에서 이미 유죄가 인정됐고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 뿐 아니라 불법 투약 혐의로 유명 패션 디자이너 이모씨와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씨도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우 역시도 환자라는 측면에서 병원 원장의 요구했다면, 쉽게 거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권위가 있는 의사가 다른 목적을 갖고 권유했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피부 시술을 두고 19회나 투약한 점과 프로포폴이 다른 연예인들로 인해 국내에서 부정적인 투약으로 크게 알려졌다는 점에서 하정우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만약 시술로만 프로포폴을 맞을 것이었다면, 차명으로 진료를 받을 이유가 있었냐는 주장이다. 숨기고 싶었던 게 있었기 때문에 차명을 한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하정우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무지했다는 관측이다. 오랜 연예계 생활을 통해 조심스러운 행동이 몸에 배어있는 그가 어떻게 이런 실수가 가능하냐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잃을 것이 많은 유명 배우의 실수라고 하기엔 찝찝한 부분이 있다. 수많은 계약을 했을 그가 차명했을 때 생길 리스크를 모를 리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백지윤 변호사는 “차명은 이번 재판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다”라며 “그가 투약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차명 여부가 형량을 좌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정우도 자신의 무지를 인정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제가 얼마나 주의깊지 못했고 경솔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고 깊이 깨닫고 깊이 반성했다. 많은 관심을 갖는 대중 배우가 신중히 생활하고 모범을 보여야 했는데 동료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피해 끼친 점 고개를 숙여 깊이 사죄한다”고 했다. 

수십억
위약금

이어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재판장님 앞에서 다짐하고 싶고 사회에 좋은 영향과 건강에 기여하는 배우가 되겠다”며 “이 자리에 서지 않도록 더 조심하도록 살겠고 이 과오를 만회하고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재판장님께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하정우가 혐의를 모두 자백했기 때문에 재판은 빠르게 끝날 전망이다. 사실 여부를 다툰다면 재판이 길어졌겠지만, 모든 것을 인정한 덕분에 9월14일로 예정된 선고기일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선고기일이 결정된만큼 검찰이 구형한 벌금형에서 더 큰 실형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검찰 구형에 관계없이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유예도 가능하다. 법원이 단순히 약식으로 처리할 사건이 아니라고 봤던 것 같은데 결론에선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하정우의 모든 자백의 배경에는 괘씸죄를 받지 않겠다는 목적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하정우는 영화 <보스턴 1974> <피랍> <야행>은 모든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촬영 중이다.

만약 하정우가 집행유예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죄질이 심각했다는 게 인정되며,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출연한 작품과 광고 등에서 받은 금액의 몇 배가 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실제로 하정우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이 언론에 드러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상황으로, 배우로서 활동도 못하고 경제적 손실이 크다.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이 선고되면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잘못 인정, 선처 부탁드린다”
위약금 피하려고?…여전한 불신론

하정우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워크하우스컴퍼니 수입의 90%가 하정우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면서 선처를 요구한 것. 소속사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최소한의 형량을 내려달라는 솔직한 호소다. 

하지만 이 발언은 부메랑처럼 날아오고 있다. 그렇게 무거운 책임감을 가진 배우가 초보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의 행동에는 책임감이 너무 결여됐다는 것을 방증한 꼴이다. 

오랜 시간 배우로서 훌륭한 연기를 해온 하정우는 최근 영화 <백두산>과 <PMC:더 벙커> <클로젯> 등에서 예전 같지는 않은 연기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클로젯>에서는 무성의하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아울러 하정우 명의로 된 건물이 5채로 알려진 것과 강서구 화곡동 건물을 매도해 46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긴 것도 현재 상황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미 수억원대 몸값에, 엄청난 광고 수익을 남기는 그가 부동산을 통해서까지 수입을 남기는 모습이 탐욕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 역시 대부분 건물을 소유하고 차익을 남기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아버지인 김용건마저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악재에 악재가 꼈다. 그럼에도 프로포폴 투약이 대중에는 음주운전이나 필로폰 등 마약 투약만큼 큰 잘못으로 인식되지 않는 점, 곧바로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요구한 점, 그가 연기한 작품들이 아직도 즐비하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정우의 잘못보다도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문제됐음에도, 연기력으로 극복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선례가 적지 않다. 과연 하정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절체절명
위기 순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에게 무거운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절치부심에 가까운 반성을 통해 그가 가진 재능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다. 그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을 절대로 없어야 할 테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정우 변호사 10명 과연 문제일까?

이번 하정우 사건의 또 다른 이슈 중 하나가 하정우의 변호인단이었다. 율촌과 태평양, 바른, 가율 등 대형 로펌 4곳의 소속 변호사 10명을 변호인으로 꾸린 것에 관심이 쏠렸다. 

선임된 변호사 중 일부는 경찰 출신, 대검 부장검사 출신,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하정우가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것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여부를 다투는 형사재판도 아닐뿐더러 중죄까지는 아니라는 점에서 담당 변호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율촌, 태평양, 바른, 가율…
초호화 군단에 대한 진실은?

하지만 이는 법조계의 관행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변호인을 선임하는 경우 담당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데, 형사재판의 경우 재판이 길어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해당 로펌의 팀 전체를 담당 변호사로 기재하기도 한다. 

백지윤 변호사는 “한 변호사가 재판에 모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스케줄 관리 차원에서 담당 변호사를 여러명 기재한다. 재판에 참석하는 게 쉽기 때문”이라며 “실무는 주요 변호사 1~2명이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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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