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연기론 웃고 우는 잠룡들

몸 풀고 진흙탕으로 다이빙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대선 경선 연기론에 불이 붙었다. 애초 여권 잠룡들은 대부분 원칙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신경전에 이어 내홍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대선 국면에 진입하기 전, 당내 일각에서는 대선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선 연기론은 공식적으로 검토되거나 공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민주당 차기 대권주자뿐만 아니라 소속 의원들의 장외 여론전이 이어지면서 해결해야 할 숙제로 자리 잡았다.

조용했는데
공식 제기

민주당 대선 경선 연기론에 가장 먼저 불을 지핀 인물은 민주당 전재수 의원이다. 친문(친 문재인)으로 분류되는 전 의원은 지난달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후보 경선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대선 경선에 공식입장을 낸 건 전 의원이 처음이었다. 그 만큼 눈길을 끌었다.

여권 잠룡들은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관망세에 가까웠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에서는 “일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보였다.

이 지사 측이 반발한 배경에는 경선 경쟁력이 있었다. 이 지사는 최근까지도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를 크게 제치며 여권 1강의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경선 연기가 후발주자들에게는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선두주자인 이 지사에게는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지사 등 당사자들은 공개 메시지를 내지 않았지만 측근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선 연기를 최초 언급한 전 의원 발언 이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의원들이 나섰다.

이재명계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은 당시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특정인을 배제하고 다른 후보를 키우기 위한 시간벌기 아니냐는 프레임에 말려들어 본선에서 굉장히 위험할 것”이라며 경선 연기에 선을 그었다.

장외전의 서막이 열릴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당내 갈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차기 대선주자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데다가 민주당 지도부에서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달 18일 “민주당 당헌·당규에 경선룰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씀만 드린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선 경선 연기론이 민주당 내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모양새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정 전 총리 외에 후발주자들이 대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이구동성으로 대선 경선 연기의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현실로 다가온 경선 연기 가능성, 왜?
이낙연·정세균 공개 발언으로 ‘군불’ 

대선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지난달 31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끝나고 백신 문제에 안정감이 생겼을 때 경선을 시작하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라고 밝혔다.

앞서 대선 경선 연기를 처음 공식 언급했던 전 의원 역시 경선을 미뤄야 하는 이유로 코로나19를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전 의원은 집단면역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문순 강원지사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최 지사는 지난 7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에 출연해 “지난 당 대표 선거 때 코로나19로 인원이 제한되다보니 너무 재미가 없었다”며 “대선 경선은 7~8월 휴가철에 진행되기 때문에 더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대선주자인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경선 연기를 주장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코로나19 극복 성과를 피부로 느끼고, 빛나는 경제 성적표가 가시화될 때까지 민주당의 대선 경선을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대권 출마를 선언한 양승조 충남지사도 경선 연기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양 지사는 지난 9일 대전CBS <12시엔 시사>에 출연해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선수가 룰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도부가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선수 입장에서 벗어나 말씀드린다면’이라는 전제와 함께 “역동성 있는 경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사실상 경선 연기에 힘을 실었다는 해석이다.

후발주자들이 잇달아 대선 경선 연기를 주장하자 일각에서는 ‘반 이재명 전선’의 구축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가 직접 대선 경선 연기를 주장하면서 반 이재명 연대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됐다.

후발주자
줄줄이 나서

정 전 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경선 규칙은 필요하면 고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당헌·당규 상 경선 관련 규정에 대해 정 전 총리는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며 경선 연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후보 선출은 대선 180일 전인 오는 9월10일 이뤄져야 한다. 다만 민주당에서는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종합적으로 보면 당헌·당규에 따라 경선의 시기나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됐다. 지도부가 논의를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코로나19 집단면역 시기에 맞춰 경선 흥행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정 전 총리의 발언은 곧 ‘반 이재명 연대’로 해석됐다. 공교롭게도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이광재 의원과 함께 경기도 기초단체장 17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총리는 경선 연기론을 언급했는데, 이 지사와 갈등을 겪은 바 있는 조광한 남양주시장, 염태영 수원시장, 은수미 성남시장 등이 참석했다. 경선 연기를 반대하는 이 지사의 관할 지역 단체장들과 만나며 경선 연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뉴스1>에 따르면 당시 한 참석자는 “이 지사와 갈등을 겪은 조광한·은수미·염태영 시장 등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다”며 “도내 반이재명 연대가 결성되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이튿날에도 경선 연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정 전 총리는 당무위원회 의결을 통해 경선 시기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당헌을 바꾸는 게 아니다”라며 “경선 준비위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시기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게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근거는 당헌·당규에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두관 의원 역시 해당 조항을 근거로 경선 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대권 주자
공개 언급

여기에 정 전 총리의 측근들까지 가세했다. 정 전 총리 지지모임인 광화문포럼에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 10일 “(대선 경선 연기로)당내 논란이 증폭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 지사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큰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그런 논의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 의원은 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경선을 수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당시에도 경선룰에 대한 논란이 심했는데 큰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에둘러 이 지사가 경선 연기를 수용할 것을 요청했다.


이 전 대표도 경선 연기론 쪽으로 선회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7일 경선 연기에 대해 “당내 의견이 이렇게 분분하다면 지도부가 빨리 정리해주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이어 ‘경선이 본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의 측근들도 지원에 나섰다.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선 방식을)리그전 토너먼트를 통해 역동성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경선 시기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홍익표 의원 역시 KBS 라디오에 출연해 “대선주자와 캠프들 간에 한 번 논의를 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고 전했다.

이 지사 측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이 지사를 공개 지지하고 있는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선을 두 달 미룬다고 방역 염려가 사라지고 (대선 경선)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건 불확실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라며 날을 세웠다.

이어 박 의원은 “예비후보자 등록이 불과 열흘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경선 연기론으로 당내 갈등을 촉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지층의 내홍과 실망만 키워서 당에는 무익하고 상대 당에는 호재가 되는 일”이라며 “당 지도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이미 정해진 경선 절차대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주자 측근들 목소리 높이며 장외전
본선 전략 위해 ‘반 이재명 연대’ 구축?

이 지사 지지모임인 성공포럼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당 민형배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당 대선후보 측에서 연일 경선 연기 군불을 때더니, 정 전 총리께서도 직접 연기를 거론하셨다”며 “후보등록을 두 주가량 앞두고 많이 급하셨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체통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대선 경선 연기가 이 지사에 대한 견제로 읽히는 가운데,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개헌론을 꺼내 들었다. 사실상 이 지사의 독주와 다르지 않은 오늘날 판세를 뒤집어 보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 8일 열린 ‘국민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한 기본권 개헌 토론회’에서 “토지에서 비롯되는 불공정·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 부활을 위한 개헌을 제안한 것이다.

정 전 총리 역시 이날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등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 개헌을 제안했다. 정 전 총리는 “만약 제가 다음에 대통령이 되고 4년 중임제 개정에 성공한다면 임기를 1년 단축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과 반대로 이 지사는 개헌에 신중한 모양새다. 지난달 이 지사는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들의 구휼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며 개헌보다는 민생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정 전 총리는 “지금까지 민생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고 민생과 개헌 논의는 함께 추진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휼을 위한 제도가 헌법에 담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지사에 대한 견제가 ‘경선 2위 반전 가능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 본경선에 안착할 후보들은 과반 득표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1위와 2위 후보 간의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앞서 치러질 예비경선에서 탈락하거나 중도하차하는 후보들의 표를 2위 후보가 가져올 수 있다면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반 이재명 연대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2위 반전 
노린다?

반면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박용진 의원은 대선 경선 연기론이나 반 이재명 전선에 선을 긋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지난 10일 경선 연기론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논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반 이재명 전선’에 관심이 없다. 누구 반대하면서 정치하나.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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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