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린 첫 승의 기쁨

포기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보상

이경훈과 샘 번스가 PGA 첫 승을 따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거둔 수확이다. 유로피언 투어에서는 데뷔 28년 만에 마수걸이를 신고한 48세 노장 골퍼가 주목받고 있다. KLPGA에서는 곽보미가 첫 승을 신고했다.

 

이경훈(CJ대한통운)이 2020 -2021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810만달러)에서 역전드라마를 연출하며 생애 첫 우승을 이뤄냈다. 이경훈은 지난달 1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맥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파72, 7468야드)에서 열린 AT&T 바이런 넬슨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8개,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달콤한 승리
주목의 대상

최종합계 25언더파 263타를 기록한 이경훈은 자신의 80번째 PGA 투어 경기에서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경훈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비롯해 2015·2016년 한국 오픈 2연패의 금자탑을 쌓았고, 2012· 2015년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에서도 한 차례씩 우승한 바 있다.

이후 2016년 PGA 콘페리 투어(2부 투어)를 통해 PGA 투어 무대를 노크했고, 2018년 콘페리 투어 상금랭킹 9위로 자신이 꿈꿔왔던 PGA 투어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3시즌 만에 기다리던 PGA 투어 첫 승을 일궈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 김시우, 강성훈, 임성재에 이어 PGA 투어에서 우승한 8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1번 홀(파4) 2위로 출발한 이경훈은 2번 홀(파4)부터 4번 홀(파3)까지 3개 홀 연속 버디로 좋은 출발을 보였다. 6번 홀과 8번 홀(이상 파4)에서 또다시 버디 2개를 잡아냈고, 전반 마지막 홀인 9번 홀(파5)에서 보기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전반에만 4타를 줄인 이경훈은 12번 홀(파5)에서 또다시 버디를 더했다. 15번 홀(파3)까지 파로 잘 막은 이경훈은 16번 홀(파4) 퍼트를 하려던 순간 낙뢰가 떨어졌다. 결국 경기위원들이 중단을 알렸다.

경기 중단은 약 2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좋은 흐름이 끊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진행된 경기에서 이경훈은 16번 홀 보기로 2위와의 간격이 2타 차로 좁혀졌다.

하지만 이 보기가 오히려 이경훈의 집중력을 더 높이는 결과로 다가왔다. 17번 홀(파3) 티샷을 홀 3m 거리에 붙인 후 절정의 퍼팅감으로 버디를 잡아냈고, 18번 홀(파5)에선 투온에 성공한 후 이글 퍼트를 홀 바로 옆에 붙인 후 버디로 우승을 확정했다.

이경훈은 이날 티잉 그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쥐고 평균 269야드(245m)를 날렸고, 페어웨이 안착률은 57.14%, 그린 적중률은 77.78%를 기록했다. 퍼트 당 얻은 이득 수는 1.851이다.

이경훈, 생애 첫 PGA 우승
번스, 마수걸이 승리 장식

경기 후 현지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이경훈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인고의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긴 기다림이었다. 감사하다”며 “우승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7월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 역시도 믿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경훈은 이번 우승으로 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올해 US 오픈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US 오픈을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에 따르면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27명의 선수가 US 오픈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고 전했다.


USGA는 다른 자격으로 출전권을 따지 못한 선수 가운데 지난달 25일 기준 세계랭킹 60위 이내에 들면 출전권을 부여한다. 이경훈은 극적으로 60위에 올라 US 오픈 출전권을 따냈다.

샘 번스(미국)도 PGA 투어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번스는 지난달 3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 하버의 이니스브룩 리조트 코퍼헤드 코스(파71, 7340야드)에서 열린 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총상금 69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3개에 버디 6개를 묶어 3언더파 68타를 쳤다.

긍정 생각
이변 연출

최종합계 17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번스는 키건 브래들리(14언더파 270타)를 3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우승 상금은124만 2000달러.

2017년 10월 PGA 투어에 데뷔한 번스는 2018년에 PGA 2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서 1승을 거둔 바 있다. 번스는 지난 2월에 열렸던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3위에 입상한 것이 이번 시즌 최고 성적이었다.

번스는 1번 홀(파5)과 2번 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우승에 다가섰다. 이어진 7번 홀(파4) 버디 후 8번 홀(파3)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11번 홀(파5)에서 다시금 버디를 잡아내며 우승에 한발 다가섰다.

14번 홀(파5)과 15번 홀(파3)에서 버디와 보기를 주고 받은 번스는 16번 홀(파4) 버디로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했으나 대세에는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다.

인고의 세월
감격의 눈물

‘48세 노장’ 리차드 블랜드(잉글랜드)가 데뷔 28년만에 유러피언 투어에서 우승하며 인간 드라마를 연출했다. 지난달 16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서튼콜드필드 벨프리골프장(파72, 7232야드)에서 막을 내린 브리티시 마스터스(총상금 185만 파운드) 최종 4라운드에서 블랜드는 6언더파를 몰아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 공동선두로 대회를 마쳤다.

귀도 미글리오지(이탈리아)와 18번 홀(파4)에서 격돌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블랜드는 파를 기록한 반면 미글리오지는 파 퍼트에 실패하며 블랜드가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477전 478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연장전에서 챔피언 파퍼트 성공으로 우승이 확정되자 블랜드는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1996년 데뷔한 프로 25년 차의 감격스러운 눈물이었다. 이전까지 블랜드의 프로 무대 우승은 2001년 유럽 2부 투어인 챌린지 투어에서 거둔 1승이 유일했다.

 

하지만 1973년 3월2일생인 블랜드는 이번 우승으로 유러피언 투어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블랜드는 2018년 유러피언투어 카드를 잃었다. 2부 투어로 내려가 와신상담 기회를 노리던 블랜드는 올 시즌 다시 유러피언투어 복귀에 성공했다.


블랜드는 “46세에 챌린지 투어에 다시 내려가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나는 함께 뛰는 선수들의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했다”며 “올해 500회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를 이루게 되면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라 전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생애 첫 승을 따낸 선수가 탄생했다. 85전 86기만에 정상을 밟은 투어 10년 차 곽보미가 그 주인공이다.

곽보미는 지난달 9일 경기도 안산 아일랜드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총상금 6억원) 최종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잡아내며 4언더파 68를 쳤다.

최종합계 9언더파 207타를 기록한 곽보미는 지한솔(25)을 1타 차이로 뿌리치고 투어 데뷔 10년 만에 감격의 생애 첫 승을 이뤘다. 지난 2010년 8월, 프로에 입문한 후 무려 11년 만에 첫 승 신고다. 그 사이 정규 투어와 2부 투어를 오가며 205개 대회에 출전했다.

블랜드, 28년 만에 유로피언 투어 승리
‘투어 10년차’ 곽보미 85전 86기만 신화

정규 투어에서는 2019년 7월 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게 가장 좋은 성적이고, 드림 투어에서는 세 차례 우승 기록이 있다. 올해도 앞서 출전한 3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 1억800만원은 지난 시즌 내내 벌었던 7930만원을 훌쩍 넘는 액수다.


곽보미는 우승 직후 “지금 너무 떨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며 “지난해 시드를 잃었으면 그만하려고 했는데, 운 좋게 60등으로 돼서 올해 또 1년만 더 하자는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곽보미는 1타 차로 앞서던 18번 홀(파5)에서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왼쪽으로 많이 휘며 카트 도로를 타고 흘렀고, 그린 주위 벙커에서 시도한 세 번째 샷은 앞쪽 벙커 턱을 맞고 그린 위로 올라가는 등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단번에
대박!

이 상황에 대해 곽보미는 “18번 홀 티샷은 제가 몸이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왼쪽으로 많이 갔는데 파 5홀이어서 안전하게 파만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했다”며 “세 번째 샷은 디벗 안에 공이 있어서 그렇게 칠 수밖에 없었고 생각대로 공이 잘 가서 다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3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던 그는 “올해 대회 때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람에 대비한 연습을 많이 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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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