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잔혹사] ①범죄심리학자들이 분석한 ‘강호순’ 심리세계

‘경찰 조롱·대담성’ 범죄 즐기는‘살인마’


“유가족에게 죄송하다” “한번 놔줘 봐요. 다음엔 안 잡힙니다” “두 아들이 ‘살인마의 자식’이 되는데 당신들 같으면 단번에 자백하겠냐” “내 범행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아들들이 인세라도 받게 하고 싶다”….
경기 서남권 일대에서 7명의 부녀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강호순은 경찰 조사에서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연일 새로운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강씨가 보여준 튀는 언행,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강씨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말한다. 도대체 강씨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살인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말의 양심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인마의 마지막 여유일 뿐일까.

수사관 능력 의심·극도의 대담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부녀자 살해 죄책감 느끼지 않고 ‘살인충동’ 느끼는 유형
범죄행위 즐기는 특성…가정파탄 등도 한몫하기도
5·6차 사이 22개월 살인 공백기…살인마 특성 지녀


경기 서남권 일대에서 7명의 부녀자를 잔인하게 살인한 강호순이 검거된 이후 언론에 노출된 그의 언행들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씨는 수사 과정과 현장 검증 때 태연하게 행동하는가 하면 수사관에게 “내가 저지른 범행을 책으로 출판해서 아들들이 인세라도 받도록 해야겠다”라는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자기반성 ‘NO’
거짓말 능수능란

검찰로 송치되기 전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왜 죽였냐는 질문에 대해) 모르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치장에선 한낮까지 코를 골며 잠을 잤다. 또 입감된 범죄자들과 과자도 나눠먹고, 수사관들과 여자이야기를 나누는 등 좀처럼 반성의 태도를 볼 수 없었던 것. 오히려 강씨가 보인 언행들은 온 국민을 경악케한 연쇄살인범이라기보다는 스타에 가깝다.

그렇다면 강씨가 보여주는 언행과 범행과정에 보여줬던 대담성 등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강씨의 행동과 언행 하나하나에 굳이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씨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의 과감한 행동을 비롯해 경찰 수사관들이 ‘쇼의 명수’라고 탄성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그의 이런 특이한 행위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이번 사건에 참여한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갑자기 수사의 의지가 사라져버리고 사건이 표류하는 듯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또 형사사법기관을 굉장히 조롱하면서 수사관의 능력을 의심하다 보니 극도의 대담성이 생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강씨가 7번째 살인을 저지른 뒤, 과거와 달리 대담하게 피해자의 돈을 찾은 대담성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강씨는 성적 욕망을 위해 사냥하듯 접근해 희생자들을 비인격적 ‘도구’로 생각했다. 또 본인이 잘못해 놓고 경찰에는 증거를 갖고 오라고 되레 큰소리치기도 했다. 이는 현재 상황에 대한 영웅의식이 강하고 죄의식은 없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경찰대학교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도 “사이코패스의 일반적인 특징은 타인의 감정이나 정서 등을 전혀 공감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며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이라며 “강씨는 사이코패스의 요소들을 거의 다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장 검증 과정과 마지막 범행에서 보여줬던 행동이 대표적인 일례다.
실제로 강씨가 마지막 범행당시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빼는 장면은 그의 심리가 어떠했는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유일하게 돈을 카드로 인출하는 장면이 CCTV에 목격됐던 것. 스스로가 체포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경찰의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경찰 수사를 조롱하는 대담성까지 보였다는 점이다.   

내적 불만 ‘축적’
겉과 속이 다르다

특히 전문가들은 강씨가 현장 검증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는 현장검증에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여자들을 성폭행한 것은 아니다. 또 돈이 필요해서 여자들을 죽인 것이라면 그녀들의 신용카드를 빼도 될 텐데…. 순간순간 나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었다”고 진술했던 것. 경기 서남권 일대에서 7명의 부녀자들을 살해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인충동’을 계속적으로 느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강씨의 이런 언행과 행동들이 그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강씨는 하사관 시절 소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특수절도 2회 등 총 9범의 전과를 기록했다. 이후 덤프트럭 운전, 스포츠마사지 등 여러 직업을 전전긍긍했고, 1992년 이후 1999년, 2003년, 2005년까지 네 차례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전처들은 하나같이 “폭력남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게다가 1995년 트럭화재, 2000년 1월 점포 화재, 2005년 장모 집 화재 등 강호순을 둘러싼 일련의 화재사건들도 보험금을 노려 방화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시각이다. 안산 반월저수지 인근에서 직접 키웠던 개를 도살해 팔면서 생활했던 것처럼 안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표 교수는 “이 같은 징후들은 강씨가 오랜 기간 동안 내적인 불만을 축적해왔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강씨의 살아온 발자취와 관련해 “성적 쾌락은 1차적인 동기였을 수는 있지만 최종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더 큰 쾌감을 얻은 것은 살인 행위와 이후 암매장을 통한 완벽한 범죄 은폐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가정 내 폭력이 있어서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평범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던 것 같고 풍파가 많았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몇몇 정신과 전문의들 역시 강씨가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영웅심리’에 빠져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강씨의 행동들이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한 정신과 전문의의 견해가 그렇다.

“외관상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좀처럼 차분함을 잃지 않는 냉혈한 기질이 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증거를 대라’고 말하는 등 지능적으로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범죄행위를 즐기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상당수 심리학자과 정신과 전문의들은 공통적으로 “속으로는 악감정을 가지면서도 실제로 그 사람 앞에서는 작전을 짜듯 좋은 모습으로 대하는 ‘반동 형성’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웃주민들이 강씨를 “평범하고 성실한 청년”이라고 평가한 것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풀리지 않는 의혹
또 다른 범행 저질렀다?


한편 강씨가 최초 살인을 했던 날은 지난 2006년 12월이며 2007년 1월7일까지 24일 동안 5명을 잇달아 살해했다. 살해 주기도 10일(2·3차), 3일(4차), 1일(5차), 10일(7차)이다. 그러나 특이할 만하게도 5·6차 사이에서 22개월이라는 공백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볼 때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는 살해된 7명의 부녀자들의 경우 유인(노래방·버스정류장)-성관계·성폭행-살해-암매장-증거 인멸 등으로 속전속결로 처리했던 김씨가 돌연 공백기를 가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즉 강씨가 연쇄 살인 뒤 냉각기를 가진 것은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표 교수는 “살인행위 이후에 살인에 이르게 된 어떤 흥분이나 동기가 사라질 만한 심리적 냉각기가 지난 뒤에 다시 또 살인을 한다는 그런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해, 또 다른 추가범행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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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