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그 두 갈림길 ‘자산어보’

백성을 사랑한 두 영웅의 가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총망라하는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역사를 비스듬히 보는 관점으로 새 인물을 조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가 이번에 선택한 인물은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다. 이 감독의 포커스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자산어보’를 기록하는 과정으로 향한다. 제목도 <자산어보>다. 정약전의 삶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재구성해 현대인들에게 어떤 태도로 사는 것이 올바른지 소통하고자 한다. 
 

▲ 영화 자산어보 스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보인다. 자신의 신념만 내세워 타인에게 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데 전혀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온·오프라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신념을 이루는 방법을 차치하고라도, 어떤 신념이 아무리 옳다 한들,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상처받지 않으며 행복해야 한다는 가치보다 더 우월할 수 없다. 

철학적 가치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는 권력이 재분배돼 인권의 서열이 사라져 누구나 평등하며, 아무리 가난해도 삼시 세끼를 배불리 먹고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랐던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재조명한다.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 <사도>, 시인 윤동주와 그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를 그린 <동주>, 열사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 출신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를 조명한 <박열> 등 이준익 감독은 역사의 듀오를 그려내는 데 특별한 기지를 보여왔다. 

신작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의 파트너는 정약전이 지은 저서 <자산어보>에 짧게 소개된 흑산도의 젊은 청년 창대(장덕순)다. 이 감독은 섬세하고 내밀한 성격으로 어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청년이라고만 소개된 창대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역사에 분명히 기록된 두 인물의 삶을 철저한 고증으로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허구가 대거 포함됐다. 

영화는 순조 1년, 신유박해부터 출발한다. 서학(천주교)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100명이 죽고 400명이 유배된 이들 중에는 당시 집권 세력이 눈엣가시로 여긴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포함된다. 

학문과 현실 생활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의견을 공유하며, 배움의 희열을 느낀 두 형제는 유배되면서 생이별을 맞게 된다. 나주 율정점에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갈라진다. 이 헤어짐이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 될 줄은 아마도 몰랐을 테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민들과 생활하면서 당시 정부 관리들의 횡포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전환점을 맞는다. 백성을 위하는 올바른 정치는 무엇이며,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다. 

율정점에서 두 갈래로 엇갈리듯 두 사람의 백성을 위하는 방법도 갈린다. 정약용은 그간 살아온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와 행정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집대성한 <목민심서>를 기록했고, 정약전은 인간 곧은 마음이나, 권력자의 정치보다 백성이 배불리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흑산도에서 발견되는 모든 어종의 특성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 알게 된 창대와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종에서는 독보적인 전문성을 가진 창대를 발견한 정약전은 창대에게 성리학을 가르쳐주는 대신, 어종을 배우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 혹은 벗이 된 두 사람은 철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이후 창대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고 더 깊게 받아들이게 된다. 출세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던 창대는 육지로 나가 과거를 보고 정부의 관리가 된다. 매관매직이 횡행했던 조선시대 말기 부패한 조선 정부의 실상을 본 창대는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이 감독에게 따르면, 영화 속 창대는 어종의 전문성을 지닌 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내용이 허구다. 부패한 관리인 아버지의 서자와 아내에 대한 설정, 그가 출세욕에 과거를 보러 나가는 과정이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사극 대가‘ 이준익 감독 여덟 번째 시대극 
정약전을 통해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감독이 창대를 만든 이유는 <목민심서>와 <자산어보>가 가진 가치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성리학과 실학을 근간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태도와 당시 제도를 면밀하게 분석해 문제점을 써낸 <목민심서>와 어종이 언제 어디서 많이 잡히고, 어떤 맛을 내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총망라한 <자산어보>의 의미를 충돌시킨다. 

이 감독은 <자산어보>를 통해 두 저서 모두 한국 역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인정하나, 작금의 시대에 어떤 정신이 더 의미있는가에 나눠보고자 하는 듯 보인다. 

<목민심서>를 깊게 받아들인 창대의 앞날은 밝지 않게 표현했다. 이는 <목민심서>의 핵심에 가까운 제도적 완벽함도, 결국 시스템을 무시하고 있는 누군가로 인해 그 빛을 보기 힘들다는 걸 말한다. 

곧, 제도를 개선하고 올바른 관리자를 양성하고 그들의 도덕적인 행정을 통해 백성을 더 낫게 살게 하고자는 <목민심서>의 가치도 중요하나, 백성이 타인의 부패와 상관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마음으로 집필한 <자산어보>의 가치가 어쩌면 현 시대에 더 유의미한 것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인생을 통달한 듯 보이는 정약전과 그 주위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흑백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감정이 정확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흑산도 인근 섬에서 촬영하면서 공간의 절경을 카메라에 가득 채운다. 그 절경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뚫리는 느낌이다. 저예산으로 고퀄리티 장면을 뽑아내는 것은 이 감독 최고의 장기가 아닌가 싶다.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와 창대 역의 변요한, 정약전을 지원하는 가거댁 역의 이정은은 감독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세밀한 감정표현을 훌륭히 해낸다. 세 사람의 연기력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 자산어보 스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특히 설경구는 연기에 도가 튼 듯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성리학을 오랫동안 몸에 익힌 삶의 태도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배움에 대한 열망, 인생에 대한 깊은 해학이 그의 대사와 얼굴에 모두 묻어있다. 요즘 말로 ‘꼰대’의 모습까지도 밉지 않게 표현해낸다.

흑백영화인 데다가 저예산으로 알려진 이 영화에는 주요 출연진 외에도 류승룡, 조우진, 최원영, 동방우(과거 명계남), 김의성과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노개런티 우정 출연이다. 성품 좋은 감독으로 알려진 이 감독의 평소 배우와의 관계가 우정 출연의 힘으로 나타난 듯하다. 연기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쟁쟁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배우는 조우진이다. 흑산도 지역의 관리 역을 맡은 조우진은 영화 초반부 갈등의 문을 여는 것은 물론 영화가 지루할 때마다 등장해 숨통을 틔운다. 이미 숱한 작품에서 각계각층의 인물을 완벽히 연기한 그는, 탐관오리마저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분량도 우정 출연이라고 하기엔 네 번째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나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동주>나 <사도> 때처럼 영화의 절정 부분이 비교적 심심한 편이다. <동주>나 <사도> <박열>은 상상보다 더 강력한 실화의 힘이 영화에서 전달됐던 반면, <자산어보>의 하이라이트는 허구가 바탕이어서인지 앞선 영화에 비교해 힘이 떨어진다. 창대를 선택하면서 어쩔 수없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아닌가 짐작된다. 

존중과 배려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나 <자산어보>는 갑작스럽게 발발한 코로나19로 인해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정신적 가치로 전환되는 시점에 굽이치는 파도와 같은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에 되돌아보게 한다. 그 안에 누구나 배불리 먹고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창작자의 소망이 그득히 담겨 있어, 2시간여 사이에 존중과 배려도 경험한다. 우울감이 그득한 이 때에 위로와 힐링이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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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