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빠지는 ‘썰’ 예능의 매력

“이 이야기 알고 있니?”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어느 자리에서건 남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지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마치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 듯,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제작된 교양형 예능이 주목받고 있다. 근현대사와 괴담, 음모론 등 장르가 다양하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 심야괴담회

MBC 장수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2002년 7월 처음 방송한 이 프로그램은 무려 20년 동안 일요일 오전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재연한 <서프라이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몰입

최근 <서프라이즈>처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하 <꼬꼬무>)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이하 <당혹사>), MBC <심야괴담회>다. 이 세 프로그램은 <서프라이즈>와는 달리 재연 연기의 폭을 최대한 줄이고, 청자의 역할을 하던 출연진을 화자로 내세운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과의 정서적 소통이 원활해질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몰입도도 높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시도를 가장 먼저 한 프로그램은 <꼬꼬무>다. 지난해 말 10부작으로 편성되며 시청자들은 물론 배우나 가수 등 유명인들로부터 호평받은 <꼬꼬무>는 지난 11일 시즌2를 시작했다. 


영화감독 장항준, 방송인 장도연과 장성규 등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세 사람이 화자다. 세 화자가 준비한 이야기를, 이들이 들려주고 싶은 지인에게 해준다. 방송인 송은이와 김이나 작사가, 방송인 김동현, 엑소 카이 등이 출연했다. 2인1조로 구성된 3개의 팀이 육상 경기에서 바통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하나의 주제를 통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듯 집중한 리스너들의 리액션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느껴질 법한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시즌1에서는 1992년 휴거, 무등산 타잔 박흥숙, 지존파, 신창원,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서진 룸살롱 사건 등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을 다뤘다. 

<꼬꼬무>가 인기를 끄는 핵심 이유는 물 흐르듯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이다. 타인의 시선을 끌만한 미스터리한 포인트부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2‧12사태를 설명할 때 “헌병대 소속 군인이 한국 군복을 입은 동료로부터 총상을 당했다. 그는 왜 동료가 쏜 총에 맞은 걸까?”라는 식이나, 지강헌 사건을 설명할 때 “탈옥수들은 왜 연희동으로 향했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일종의 ‘훅(Hook)’을 건 뒤 이야기를 깊게 해부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알고 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은 사실과 대중이 평소 생각하지 못한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게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를 초등학생이 들어도 빠져들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춘다.

<꼬꼬무>의 연출을 맡은 유혜승 PD는 “나이가 지긋한 선배들은 과거 역사를 몸소 겪으신 분들이라 상식으로 알고 계시는데, 20대에서 30대 초중반의 PD만 하더라도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제작진 역시 처음 공부하는 얘기가 많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푼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깊고 세밀하게 들추는 <꼬꼬무>
‘음모론’다룬 기획 회의 콘셉트 <당혹사>
전 세계의 괴담을 들려주마 <심야괴담회>


시즌2를 시작하면서, 역사의 큰 사건을 다루겠다고 밝힌 <꼬꼬무> 제작진이 시즌2에 선택한 소재는 12‧12사태와 실미도 사건이다. 시즌1에 비해 재미나 깊이 등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벌써부터 장수 프로그램으로 정착할 조짐이 엿보인다. 

지난 2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나온 <당혹사>는 영화감독이 마치 기획회의를 하는 듯한 콘셉트로 진행된다. 주제는 음모론이다. 현재까지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사건이 <당혹사>의 소재다. 

장진, 변영주 감독이 발제 형식으로 물꼬를 트면, 배우 봉태규와 장영남, 방송인 윤종신과 송은이, 곽재식 소설가가 이야기를 받는다. 파일럿 편성 때는 코로나19 음모론과 윤영실 실종 사건, 일본 원전 하청 영업직 직원의 정화조 살인 사건을 다뤘다.
 

▲ &lt;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gt; ⓒSBS

제작진은 두 감독에게 주요 정보를 전달한 뒤 스튜디오 뒤로 완전히 빠진다. 7명의 출연진이 음모론과 관련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리얼리즘이 기저에 깔려있다. 

2회 만에 많은 시청자로부터 관심을 받은 <당혹사>는 오는 4월 혹은 5월 중 정규 편성된다. 장경주 PD에 따르면 시즌1의 회차는 4부에서 6부 중 하나가 된다. 이후 열리는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시즌제로 방영될 전망이다. 

정 PD는 “윤영실 납치 사건은 <꼬꼬무>와 비슷한 형태라는 내부 피드백이 있었다. 정규 편성이 되면 더 확실한 취재와 넓은 이야기로 <꼬꼬무>와는 다르게 차별화를 둘 생각이다. 음모론에 더욱 초점을 맞춰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뒷면에 있는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인 <심야괴담회>는 정규 편성되며 지난 18일 첫 방송을 했다. 공모를 통해 선택된 오싹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출연진의 입을 통해 전하는 방송이다. 방송인 김구라, 김숙, 황제성, 허안나 등 예능인들을 주축으로 카이스트 출신 곽재식 작가와 역사학자 심용환이 출연한다. 

전통적인 괴담은 물론 물귀신 이야기, 고속도로 괴담, 저주, 해외에서 수집된 괴담도 전한다. MBC 시사프로그램 <피디수첩>을 꾸려온 임채원·김호성 PD가 연출을 맡는다.

쉽게

최근 불륜과 이혼 등 자극적인 소재에 얽매여 시청자들을 매혹하는 프로그램이 다수 늘어난 가운데,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제작되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호재다. 특히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심야괴담회>의 임호성 PD는 “괴담의 희생양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괴담을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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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