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성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30대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한적한 오전시간 주부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사이 몰래 침입해 주부를 성폭행하려했고, 반항하자 목숨까지 빼앗았다. 최근 성폭력 전과자가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전자발찌 실효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자발찌는 과연 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 실태를 들여다봤다.
서울 광진구의 한 주택가. 아침 9시를 넘긴 시간. 가정주부 이모(37)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골목길을 걸어 나왔다.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간 이씨. 얼마 후, 이씨 집에서는 심상치 않은 싸움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웃주민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씨 집에서 흉기를 든 채 뛰쳐나오는 한 남성과 맞닥뜨렸다.
밤새워 ‘야동’ 본뒤
성폭행 결심…
서울 광진경찰서는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하고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서모(42)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직장에서 대체휴일이던 지난 20일 새벽 3시께 일어나 3시간 가량 자신의 컴퓨터로 음란 동영상과 사진 등을 본 뒤 소주 1병을 마시고 오전 9시쯤 흉기와 청테이프 등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이후 오전 9시30분께 광진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들어가 가정주부인 이씨의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이씨가 강하게 저항하자 머리, 옆구리 등을 20번 정도 때렸다.
이후 이씨가 현관으로 도망가자 뒤따라가서 흉기로 목을 찔렀다. 이씨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낮 12시40분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서씨의 잔혹범죄로 4살 5살의 남매는 한순간에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전과 12범 출소 10개월 만에 또 사고
성범죄 재범 사례 보니 ‘허점투성이’
서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 두 명을 통학 버스에 배웅해 주러 집을 나서면서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틈을 노려 집에 들어가 숨어서 기다렸다. 또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했던 점을 보아 치밀한 계획 하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서씨는 지난 2004년 4월 서울의 한 옥탑방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7년6월을 복역하고 작년 10월 만기 출소한 뒤 전자발찌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10개월만에 재범하면서 출소자 관리의 허술한 단면이 노출됐다.
그가 범행을 하는 동안 차고 있던 전자발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낮에 성범죄자를 물색하며 활보했지만 보호관찰소에 감지된 이상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여자가 필요해
마누라 노릇 좀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서씨뿐만이 아니다. 지난 2일 울산에서는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60대 여성의 집에 들어가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고 지난 3월 서울에서는 전자발찌를 부착한 김모(36)씨가 자신을 방송사 PD로 속여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려다 실패하자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달 30일 부산에서는 초등학생인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감옥에 다녀온 아버지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또다시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김모(51)씨는 18일 밤 8시께 부산 영도구 자신의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딸(17)의 방에 들어가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니가 마누라 노릇해라”면서 딸을 성추행하는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2005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의 아내는 술에 취하면 행패를 부리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1995년 집을 나갔고 딸보다 2살 많은 아들은 집에 정을 못 붙이고 밖으로 돌았다. 그 틈을 타 김씨는 또 다시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수원에서는 성범죄로 6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40대 남성이 전자발찌를 차고 동생의 아내를 성폭행하려다 구속됐다.
곽모씨는 21일 오전 2시께 친동생 부부와 함께 술을 마신 뒤 동생 집으로 함께 들어가 잠을 자려했으나 친동생이 먼저 잠들자 제수인 A씨를 수원시 한 모텔로 유인해 얼굴 등을 때린 뒤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소한 지 불과 21일 만이었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전자발찌 착용 중에 성폭행 및 성추행을 한 정모(53)씨를 구속했다. 강간혐의로 2010년 10월 출소한 정씨는 서울 강남의 한 종교시설에서 신도 및 신도의 자녀들과 함께 살아왔다.
정씨는 이곳에서 2월 초 함께 사는 이모(10)양을 성추행하고 김모(47·여)씨를 수차례 성폭행했다. 정씨의 발해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의 범행은 다른 신도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이처럼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 전과자가 출소 후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자발찌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피부착자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24시간 추적할 수 있어 재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음먹고 저지르는 범죄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위치추적 기능 뿐인
전자발찌의 한계
전자발찌는 성폭력범에 대한 위치추적과 보호관찰관의 밀착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억제하는 제도로 2008년 9월 도입됐다. 현재 성폭력과 살인전과로 1030명이 전자발찌를 차고 있고 이 가운데 약 60%가 성범죄 전과자들이다.
전자발찌 착용자들은 위치추적 중앙 관제센터에서 24시간 위치와 이동경로가 추적된다. 이는 전과자를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들어 재범률을 떨어트리는데 제법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실제 성폭행 사범의 경우 전자발찌 도입 전 3년간 재범률이 14.8%였지만 도입 후 재범률은 1.67%로 90% 가까이 감소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성과는 있어 보이지만 위와 같은 사건들을 놓고 보면 분명히 한계도 존재한다.
먼저 ‘준수사항 위반 경보’다. 이는 전자발찌를 강제로 훼손하거나 초등학교 주변 같은 출입제한 구역에 들어갈 경우에만 관제센터에 경보가 울릴 뿐 평소에는 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정도만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여서 구멍이 있다.
거주지 주변에서 범행…위치추적뿐인 무용지물
범죄자 '인권' 보다 “강력한 법적 장치 시급”
전문가들은 “전자발찌가 전과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발찌의 기본 기능이 대상자의 위치 추적에 그쳐 범행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위치 추적을 아무리 정확하게 한다고 한들, 실제 범행을 막지 못한다면 전자발찌는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대낮이나 자신의 주거지 근처에서 범행을 저지를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전자발찌의 헛점이다.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 전과자가 이동을 할 경우 위치추적이 되면서 예방할 수 있지만 거주지에 함께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거나 거주지 주변에서 대상자를 탐색할 경우 사전에 범죄를 인지할 방법이 없다.
이에 시민단체 등에서는 일부 범죄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전자발찌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제기해 왔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전자발찌에 카메라가 달린 것이 아니어서 이동경로 이외에 행동을 파악할 수는 없다”며 “전자발찌는 재범을 막는 보완재기 때문에 완벽히 범죄를 막기는 쉽지는 않지만 효능을 보완해 더욱 억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절단이 어렵고 와이파이 기능을 장착해 위치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전자발찌를 올해 말까지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 미워하지 말자?
그렇다면 실질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한 네티즌은 전자발찌에 ‘전기충격’의 기능을 넣으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제시해 많은 네티즌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글쓴이는 전자발찌의 전기충격을 가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누고 “일정 수준 이상의 흥분에 오르면 심박수가 오르는데 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통증 이라는 1차적 방법과 원하는 사람에게 리모콘을 판매하여 이를 누를 경우 전기 충격기 수준의 쇼크가 오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물론 전자발찌는 전과자들에게만 한정된다는 점에서 초범들에게는 효과가 없겠지만 잡히면 저 정도 수준의 전자발찌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예방효과도 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착용자들의 전자발찌에 충격기능을 넣는 막대한 비용부담과 인권침해요소가 많을뿐더러, 관리인력 측면에서도 실현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남은 방법은 재범 위험이 있는 성범죄 전과자들을 좀 더 면밀히 감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반인륜적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어설픈 생각보다는 보호관찰을 높이고 화학적 거세방안을 도입하는 등 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접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