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두 번째 골육상쟁’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 이어 조카에 뒤통수 맞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금호석유화학 오너 일가에서 골육상쟁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승계 구도에서 소외됐던 조카가 삼촌인 박찬구 회장을 상대로 칼을 빼든 양상이다. 오너 측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외부에서 우군을 규합한 조카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박찬구 회장은 졸지에 ‘형제의 난’과 ‘조카의 난’을 섭렵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전남 나주 출신인 고 박인천 창업주가 1946년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는 2015년까지만 해도 같은 집단으로 묶였던 사이다.

다툼 끝에
계열분리

금호아시아나는 광주여객(금호고속, 1948년)을 시작으로, 죽호학원(1959년), 삼양타이야공업(금호타이어, 1960년), 한국합성고무공업(금호석유화학, 1971년), 금호실업(1976년), 금호문화재단(1977년), 아시아나항공(1988년) 등을 차례로 편입시켰다.

그 결과 2000년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건설·물류·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10위권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 번 굵직한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2006년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2008년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그사이 재계 순위는 11위에서 7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급한 덩치 키우기는 현금 유동성에 독으로 작용했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면서 투입한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이 과정에서 2009년 말까지 주가가 인수 당시 주가(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 될 경우, 투자자들에게 3만원대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2008년 불어 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인해 2009년 말 대우건설 주가는 1만30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데 그쳤다. 투자자들은 풋옵션을 행사하며 대우건설 주식을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4조원을 넘겼다.

자금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금호아시아나는 인수 3년 만에 대우건설을 토해냈다. 이 과정에서 형제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그룹의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이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합병을 극구 반대했음에도 박삼구 회장은 이를 성사시켰고, 인수합병이 실패로 종결되자 두 사람은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형과 다투더니 박차고 독립
세력 키우고 가문 선봉으로 

그룹 총괄 권한을 놓고 발생한 이견 대립도 형제 간 갈등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금호아시아나는 1984년 박인천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차남 고 박정구 회장, 삼남 박삼구 전 회장 순으로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갔다. 

다음 수순은 박찬구 회장 차례였다. 하지만 박삼구 전 회장이 동생 대신 장남인 박세창 사장을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양 측의 갈등은 한층 커졌다.

박찬구 회장은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대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분리를 시도했다.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와 표면상 같은 집단으로 묶였을 뿐, 독자경영 단계에 접어들었다. 2015년 대법원의 계열분리 판결로 인해 금호아시아나와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계열분리 후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했다. 금호아시아나는 무리한 인수합병에 따른 내홍을 수습하고자 그룹 재건에 나섰지만, 다시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핵심 자회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은 매각 수순을 밟고 있으며, 사실상 돈이 될 만한 자산을 모두 내놓은 처지다. 매각 수순이 완료되면 그룹은 중견기업집단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 금호석유화학 본사 ⓒ카카오맵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외형 확장이 아닌, 내실 위주의 경영 전략을 펼쳐왔다. 이는 금호석유화학이 매년 안정적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코로나19의 여파가 재계를 강타했던 지난해에도 금호석유화학은 특수를 누리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금호석유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인 70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에서 독립한 금호석유화학은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에 처음 진입한 이래, 매년 해당항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9년 말 기준 자산총액(공정자산)은 5조6835억원, 재계 순위는 59위다.

와해된 본가
사실상 적통

내실을 다진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본업 이외의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은 ‘범금호가’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모습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상반기에 금호리조트 인수를 매듭지을 전망이다. 앞서 금호리조트 매각 주간사인 NH투자증권과 안진회계법인은 지난달 19일 본입찰에서 금호석유화학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입찰가로 2500억원 안팎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석유화학이 금호리조트 인수에 나선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금호리조트는 ▲금호티앤아이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등과 함께 금호아시아나 소유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리조트에 애정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박찬구 회장이 형제간 갈등과는 별개로 집안이 영위해온 사업을 다른 기업에 넘어가도록 둘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호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업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투영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호리조트 인수를 사촌 간 지분 정리의 신호탄쯤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금호석유화학의 또 다른 중심축인 고 박정구 회장 일가에게 금호리조트를 넘기는 형식의 계열분리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 세력뿐 아니라 고 박정구 회장의 친인척도 경영에 참여하는 이른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실권은 박찬구 회장 측이 쥐고 있지만, 고 박정구 회장 측 역시 무시 못 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 박준경 전무, 고 박정구 회장, 박철완 상무

 

실제로 금호석유화학의 단일 최대주주는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상무다. 박철완 상무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10%를 보유 중이다. 이는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6.69%)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대신 박찬구 회장의 장남(박준경 전무)과 장녀(박주형 상무)의 지분율이 각각 7.17%, 0.98%이기 때문에 박찬구 회장 측 우호지분은 14.84%로 높아진다.

잠잠하더니
불거진 내홍


하지만 평화로운 계열분리 수순을 예상했던 재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카가 삼촌을 향해 칼을 빼들면서,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구도가 형성된 분위기다. 

박철완 상무는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박찬구 회장과의 지분 공동 보유와 특수 관계를 해소한다”고 밝혔다. 지분 보유 목적은 ‘주주권 행사’로 명시했다. 사실상 박 회장의 경영권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금호석유화학에 배당 확대 및 이사 교체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 제안서도 발송했다. 자신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와 감사위원 후보 선임안을 주총 안건으로 올리라는 게 골자다.

금호석유화학은 이튿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이번 주주 제안의 내용과 최근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관계법령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현재 경영진의 변경과 과다배당을 요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철완 상무가 독자 세력 구축에 나선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재계는 경영 일선에서 소외됐던 박철완 상무가 본인의 영역을 구축할 시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소외된 조카의 반격
일촉즉발 긴장 구도


박철완 상무는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갈등이 부각됐던 2009년에 박삼구 전 회장 측에 섰지만, 이후 금호석유화학에 둥지를 틀었다. 이런 이유로 금호석유화학 개인 최대주주라는 위상과 달리, 그룹 승계 구도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7월 그룹 인사에서 승진자 명단에 포함된 박찬구 회장의 장남 박준경 전무와 달리, 박철완 상무는 배제됐다. 1978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2010년 함께 상무보로 승진했던 전례가 있다. 

박철완 상무의 노림수는 최대한 많은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단 IS동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IS동서 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 5개월간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운 IS동서 회장의 아들인 권민석 대표이사가 개인 명의로 지분 직접 매입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확보한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3~4%가량으로 파악된다. 

IS동서 측은 단순 투자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재계는 권민석 대표와 박철완 상무의 연합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게 되면 14% 안팎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확보하게 되고, 박찬구 회장 우호세력과의 지분 격차를 1~2%대로 줄일 수 있다. 이 경우 전체 주식의 50% 이상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을 얼마나 포섭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박철완 상무는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자리에 본인의 우호세력이 임명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3인, 사외이사 7인 총 10명으로 구성돼있으며, 4명의 사외이사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들 가운데 3인은 연임이 유력하지만, 장명기 이사의 경우 6년 임기 제한에 걸리는 관계로 새 인물 내정이 불가피하다.

유리하지만…
불편한 심기

그러나 박철완 상무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박찬구 회장이 주주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이 크다.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은 50% 미만으로 매우 안정적 수준이고, 건실한 실적이 주가 상승세를 견인하는 추세다. 금호석유화학이 최근 3년간 배당 규모가 꾸준히 확대하면서, 박철완 상무가 내세운 배당 확대의 필요성도 일정부분 희석된 상태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총 409억원가량을 현금배당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차등배당 정책도 도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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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