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불안석 민주당의 '안철수 딜레마'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08.30 14: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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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자니 박근혜가 무섭고 잡자니 안철수가 무섭다

[일요시사=조아라 기자] 새누리당 대선후보경선이 막을 내렸다. 박근혜 후보가 84%라는 절대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역대 최고의 보수층 결집"이라고 표현했다. 이로써 박 후보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무너뜨려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 민주당의 입장이 다급해졌다. 유일한 박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금 민주당에 공식적 우군이자 잠재적 적군이다. 안 원장을 잡자니 고스란히 아랫목을 내줄 판이고, 놓자니 박 후보에게 여지없이 대권을 넘길 판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민주당의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민주당 입당 여부를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안 원장의 세력 구축이 앞으로 있을 야권연대 판을 결정할 화두로 등장하면서 수많은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의 선거캠프 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지난 20일 안 원장의 입당 가능성에 대해 "안 원장의 민주당 입당은 추석 이후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가 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2일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서 경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손부터 잡고 
막판에 '토사구팽'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언론을 통해 안 원장이 끝내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단독후보로 나오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도 매체를 통해 "후보단일화 협의를 위해서는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우선 안 원장에게 입당 요구를 하고 있지만 당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은수미 의원은 21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안철수가 뜨면 선거전략은 불필요하다. 지금 이 상황으로는 제안 자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안 원장에 대한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것을 보면 박 후보에게 대권을 넘길 수는 없다는 민주당 내 정권교체 달성 의지는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안 원장과 손을 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난관에 봉착한 분위기다. 안 원장의 민주당 입당 여부에 대해서 당내 입장조율이 어려워 마음 놓고 러브콜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당은 안 원장과의 연대구상에 대해 어떻게든 조속한 시일 내에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매체를 통해 "안철수 원장의 대선가도에서 중요한 변수는 출마시기와 민주통합당 입당 여부"라고 말했다.

김기석 민주당 의원도 "대한민국의 민주세력은 아직 취약하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이후 민주·진보세력이 선거에서 이겼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치권 세력의 결집이 승리의 단초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해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수세력을 누르고 대권을 잡았던 것도 세력규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후보단일화는 민주당의 대선 승리수단이자 필승방정식으로 여겨졌다.

민주당 "꼭 안철수 끌어들이고 판 뒤집어야"
정치권 "바보도 아니고 입당은 절대 안할 것"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는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며 첫 정권교체이자 민주 세력의 최초 집권이라는 역사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과 정몽준 후보도 집권을 위한 전략적인 접근 끝에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이뤄냈다.

비록 선거일 하루 전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정 후보가 등을 돌렸지만,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민주세력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의 요구대로 안 원장이 입당한다 하더라도 그에 관한 대책을 두고 민주당 내 신진세력과 기성의원들은 분명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안 원장과 힘의 균형을 갖춰 선진적이고 건설적인 단일화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세미나와 토론회 등의 모임을 꾸준히 가지며 대책 마련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요시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민주당의 김기석·이미경·은수미·서영교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에서는 서기호 의원이 각계 전문가들과 머리를 모으고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당내 지도자 중 소수 인사는 "안 원장을 토사구팽 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내뱉으며 다소 극단적인 전략을 계획하는 분위기다. 지난 18일 <일요시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모인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이 나눈 대화에서 안 원장에 대한 속내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안 원장을 무조건 끌어들여야 민주당이 산다"며 "어차피 안 원장은 검증에서 살아남지 못할 텐데…"라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드라마를 연출하고 국민의 이목을 끌면 반은 성공이다. 안 원장이 '경선이 불공정하다'며 뛰쳐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 무조건 민주당에서 대선후보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공동정부' 제안    
박원순 '무소속' 추천

이러한 민주당 지도부 일각의 극단적인 의견과 민주당 입장에 관한 <일요시사>의 질문에 김두관 후보 캠프의 정진우 부대변인은 "그것은 모든 정당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기성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고 보면 된다"며 "당내 일부 의원들에게는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창출보다는 조직 내 자신의 입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안 원장과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은 민주당 내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니겠는가"라며 이날 지도부 의원들의 뒷말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관해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일부 의원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안 원장과의 연대는 우선 논외로 하고 민주당 경선 흥행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 다음에 안 원장과의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번 대선을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민주당은 필패한다. 안 원장은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움직이는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다. '토사구팽식'으로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갖추며 단일화가 진행될 것이다"라며 민주당의 공식적인 태도를 밝혔다.

"전략적 접근은 민주당에게 필패"
야권연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과제


민주당 대선경선후보들의 안 원장에 대한 태도도 심한 온도차를 보이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민주당 후보들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가도 애정공세를 하며 손을 내미는 형국이다.

민주당 후보들의 안 원장에 대한 복잡한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으로 앞으로 누가 이러한 상황을 풀어내 안 원장과 손발을 맞춰 성공적인 야권단일화를 이뤄낼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후보는 얼마 전 "안 원장 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데 앞서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라며 안 원장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문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후보단일화 방식과 관계없이 단일화 합의를 위해서는 민주당 입당에 대해 사전협의가 돼야 한다"고 말해 안 원장과의 단일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손학규 후보는 언론을 통해 "지금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127석이나 갖고 있는데 '우리 혼자로서는 집권 못 한다' '공동정권으로 하자' '누구와 연대하자'고 하면 누가 그렇게 자신 없는 정당을 찍어주겠느냐"며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후 "대선 필승 손(孫)-안(安)에 있다" "안철수는 손학규와 함께 간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안 원장에게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쳤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를 두고 "손 후보가 안 원장과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시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우호적인 자세로 바뀌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두관 후보는 안 원장과의 연대에 대해 가장 날을 세운 인물이다. 김 후보는 "거머리가 득실대는 논에 맨발로 들어가 모내기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안 원장을 비난했다. 그리고 김 후보는 문 후보의 '공동정부론'을 '자포자기'라며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본 경선에 들어서자 "안 원장과 가장 궁합이 맞는 인물은 바로 나"라며 안 원장 끌어안기를 시도했다.

끌어내리려다
끌어안기 '왜?'

민주당이 안 원장과의 야권연대에 득실을 계산하면서 마지못해 손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권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2일 안 원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서 경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다수의 유권자들은 어떤 새로운 정치흐름을 원한다"며 "기존의 정당에 민주당도 크게 보면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이어 "다만 본인이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면 결국 민주당으로 입당을 하거나, 민주당 후보들과 경선을 하는 문제는 여러 유권자들의 어떤 인식하고도 관계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또한 "저도 당시에 민주당으로 입당하는 것보다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좋겠다고 많은 분들이 조언을 했고, 실제로 여론도 그랬다"고 밝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원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절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성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안 원장을 통해 해소되는 유권자의 심리가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다"며 "안 원장의 민주당 입당은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라고 박 시장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전문가들은 안 원장의 독자출마에 대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보수층이 어느 때보다 견고한 결속력을 보이는 이때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는 데 실패한다면 모든 상황은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선에서 볼 수 있다. 1987년 당시 여권 후보인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해 민주화 세력의 표를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야권표가 갈라져 노 전 대통령은 손쉽게 대권을 거며 쥐었던 것이다.

당시 두 명의 야권후보가 노 전 대통령에 맞서 단일화를 이뤄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5년 더 앞당겨 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권을 두고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5년'이라 부르고 있다.

단일화 실패하면 
박근혜만 웃는다  

이 때문에 안 원장의 단독출마와 야권단일화 붕괴는 박 후보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박 후보는 손 안대고 코를 푸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함)' 전술 효과를 보는 셈이다. 

이처럼 야권분열의 악재는 그대로 보수세력에 호재로 작용, 안 원장도 함부로 독자출마를 선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권분열로 대권을 놓칠 수 있는 만큼 이는 민주당이 경계해야 하는 필패노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 원장이 정당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조직력이 없이 정치에 나서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관계자는 "안 원장이 지지를 세력으로, 세력을 조직력으로 가시화하지 못하면 대선은 어려워진다고 본다"고 말해 안 원장의 독자출마 위험성을 경고했다.

민주당이 손해를 보면서라도 안 원장과의 단일화를 이뤄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경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하는 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는 '시민 정치 진영의 전략과 방안'이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여기에서는 박 후보에 맞서 정권교체를 이룰 후보단일화에 관한 야권의원들의 토론도 함께 진행됐다.

이날 포럼에서 김기석 민주당 의원은 "박 후보를 검증대에 올려놓으면 곧 추락할 것 같지만, 이는 착시효과일 뿐이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권이 바뀌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중의 선택은 가장 마지막에 선회하기 때문이다. 부시가 지지율이 낮으면서도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권 말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국민의 성격을 방증 한다"고 말해 정권교체에 대한 민주당의 안일함을 꼬집었다.

그는 또한 "대한민국의 세력구도를 볼 때 야당은 절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선을 앞둔 민주세력의 재집권 의지에 경종을 울렸다.

이어 "안 원장과 함께하는 야권연대에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기성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낀 유권자를 흡수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진보의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부동층에 대한 숙고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심판 아닌 미래 전망
'야권연대 시즌2' 재편해야

은수미 의원은 야권연대가 조직과 세력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우려하며 "후보단일화가 '판짜기'에 급급해 부실한 내용으로 부동층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지난 4·11 총선과 같은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라며 "모든 야권 정치인들은 공동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뜻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야권연대가 세력 간 정치싸움이 돼서는 안 된다. 보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치쟁점이 필요하다. 복지,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정의에 관한 비전을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 구정권에 대한 '심판'이 아닌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야권연대 시즌2'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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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