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43·44) 파래, 꼴뚜기젓

건강식으로 으뜸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파래 ⓒpixabay

파래

아내에게 파래 이름이 왜 파래인지에 대해 물었다. 

“색이 파래서 파래 아니야?” 

아내의 이와 같은 대답에 은근슬쩍 거들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옛날에 김들이 집단 서식하고 있는 곳에 김과 유사하게 생긴 해초가 슬며시 찾아 들어 마치 김처럼 행세하며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김들이 바다의 신을 찾아가 하소연한 거야. ‘재네들 좀 처리해 달라’고. 


바다의 신이 가만히 관찰해보니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하게 달랐거든. 그래서 파도에게 명을 내리고, 파도가 그들을 강하게 때리자 색이 파랗게 변해 김들의 서식지에서 밀려나 바닷가로 도망간 거고, 그래서 파도에 맞아 밀려왔다고 해서 파래(來)라 한 거야.”

아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어디 있긴. 근거가 없으면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임자지.”

“여하튼 결국 그게 그거 아니야?” 

파래는 한자로 靑苔(청태)로 파란 이끼를 의미한다.

태는 이끼라는 의미이다.


잎과 줄기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하고 고목, 돌, 습한 곳에 자란다.

그런 이유로 바다에서 자라는 이끼를 해태(海苔)라 총칭한다. 

파래는 필자의 설대로 파도에 너무 맞아서 그런지 생명력 아니, 저항력이 강하다.

이런 연유로 흔히 파래를 바다의 청소부라 칭한다.

실례로 1997년 7월9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을 간추려 보겠다.

「파래, 오염된 물 정화하는 바다의 청소부

제주도에 근무하는 두 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2년간 연구 끝에 해조류의 하나인 파래가 양식장 등에서 나오는 오염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진 바다의 청소부임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동안 넙치 양식장에서 파래를 거쳐 배출수를 흘려보낸 결과 화학적 산소요구량이 줄어들었고 부유물질도 감소했다. 또한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인과 질소 등도 수치가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들 물질은 오히려 파래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로 공급돼 양식장의 파래가 바다에 있는 파래보다 빨리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위 글을 읽고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파래가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래는 바다 속 영양의 보고로 칼륨, 요오드, 칼슘, 식물성 섬유소 등 몸에 좋은 성분을 고루 함유하고 있어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무기질과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과 조혈작용에도 효과가 있다. 또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어 각종 세균을 없애고 치주염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래의 속성을 살피는 중에 40년을 넘게 흡연해 온 필자에게는 어떤 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조사하던 중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파래에 함유된 비타민A가 손상된 폐 점막을 재생하고 보호해 주기 때문에 담배의 니코틴을 해독하고 중화하는 데 좋다고 점이었다.

오염된 물 정화하는 바다의 청소부
오징어 효능에 부드러운 육질 장점

꼴뚜기젓

꼴뚜기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말들이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 등이다. 한편 해학적이면서도 꼴뚜기를 상당히 비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에 대해 살펴보자.


꼴뚜기를 비하해도 너무 했다는 느낌 든다.

꼴뚜기 입장에서 살피면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이는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망둥이가 자신의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숭어를 따라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 ▲ⓒpixabay

미끈하게 생기고 힘이 좋은 숭어가 바다에서 물 위로 높이 뛰어오르는데, 바닷가 모래밭이나 개펄에 사는 볼품없는 망둥이가 숭어의 뛰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부러워하며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생겨난 말이다. 

즉 자신의 주제는 망각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무조건 따라하는 경우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데 꼴뚜기를 숭어도 아닌 망둥이에 비유했으니 꼴뚜기로서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 없다. 

왜 이리도 꼴뚜기를 비하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누군가가 꼴뚜기를 시기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 꼴뚜기가 생긴 모습이 뛰어나진 않지만 그 맛은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어머니께서 간혹 마른 멸치나 새우를 사오시고는 했는데, 그런 경우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께서 펼쳐놓은 멸치와 새우 사이에 섞여있는 꼴뚜기를 서로 먼저 찾아 먹느라 전쟁을 벌이고는 했다.

정작 멸치와 새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마치 이를 입증하듯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살펴보면 꼴뚜기를 가리켜 바다에서 나는 귀중한 고기라 하여 '고록어(高祿魚)'라 지칭하고 있다.

고록은 말 그대로 높은 녹봉을 의미한다.

어류에 그런 이름을 주었으니 그 진가는 높이 평가돼야 할 일이다. 

또 꼴뚜기 때문에 ‘못생긴 게 맛있다’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일어난다.

맛있는 과일의 경우도 새들이나 곤충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쪼아 먹거나 갉아먹게 되니 생김새가 망가지지 않을 수 없고 꼴뚜기 역시 그런 이유로 비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꼴뚜기가 왜 이렇게 비하되는지 아니, 왜 정약전은 고록어라 표현했는지 그 이유를 <문화일보>에 실린 기사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꼴뚜기는 사실 ‘화살 오징엇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일반 오징어처럼 꼴뚜기에도 지방질과 당질이 적은 반면 단백질은 풍부하다. 또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켜주는 타우린도 꼴뚜기에는 풍부하게 함유돼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오징어나 꼴뚜기가 동맥경화증을 비롯한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징어와 꼴뚜기를 비교한다면 어떤 연체동물이 사람에게 더 이로울까.

일단 성분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국립 수산진흥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꼴뚜기와 오징어 등 오징어류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taurine), EPA(아이코사펜타엔산), DHA(도코사헥사엔산)와 같은 고도 불포화 지방산과 핵산 셀레늄(selenium) 등 각종 성인병에 효과가 있는 생리기능성 성분들이 다량 함유돼있다.

또 오징어류의 지방 함량은 1.0%로 쇠고기(안심기준) 16.2%, 돼지고기(삼겹살) 38.3%에 비하여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꼴뚜기에는 오징어가 지니지 못한 강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부드러운 육질이다.

이에 따라 오징어에 비해 더 소화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꼴뚜기는 소화기능이 약한 어린이와 노년층을 위한 건강식으로 종종 추천되기도 한다.

이를 살피면 꼴뚜기가 비하되는 그 이유를 알만하다.

아울러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라는 말을 ‘꼴뚜기가 뛰니까 숭어도 뛴다’로 바꿔도 좋을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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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