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69)도급계약에 발목 잡힌 사연

일했는데 근로자 아니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작업장 내 사고로 사망했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은 고 양모씨의 이야기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에서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에서는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에 따른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단,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산재 불승인

작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에 대한 산업재해보험 적용 여부는 근로자성과 재해의 업무상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두 가지 요건 중 근로자성이 재해의 업무상 인과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판단된다. 다시 말해 사망사고가 업무 과정에서 일어난 점이 인정된다 해도, 사망자가 근로자가 아닐 경우 산재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7월7일 오후 1시경 경기도 화성시 소재의 A사 작업장에서 지게차에 실린 유압기가 이동 중 쓰러지면서 고인을 덮쳤다. 양씨의 다리 부분이 쓰러진 지게차에 깔렸다. 양씨는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부검결과 양씨의 사인은 하복부 다발성 장기파열.


양씨는 지난 5월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A사에서 유압설비 수리를 담당했다. 이날도 오전 8시부터 작업을 하던 중 변을 당했다. 양씨가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그의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양씨의 사위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유압기에 깔려 사망
근로자성 여부 이견

문제는 산재 처리 과정에서 양씨의 근로자성을 두고 유가족과 A사의 입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당시 양씨는 A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도급계약은 수급인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도급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면서 성립하는 계약이다. 

다시 말해 양씨는 A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양씨의 업체와 A사가 업체 간 계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양씨는 1996년 개인사업자를 내고 B사를 차렸다. 유압프레스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업체였다. 유가족에 따르면 B사는 부도가 나면서 2010년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B사는 사업자등록만 유지한 채 특정 회사에 종속돼 해당 회사의 유압기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8년 초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양씨는 충남 아산 소재의 한 사업장에 출퇴근하며 유압기 및 각종 전기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A사에서의 업무와 동일하다. 

하지만 A사에서 일하던 중 사고가 일어나면서 양씨와 A사가 맺은 도급계약이 문제가 됐다.
 

A사는 ‘양씨와 유압설비에 대한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해 월 400만원의 보수로 유지보수를 한 바, 기업 간의 유지보수 계약관계에 있는 계약 당사자이며 당사의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양씨가 A사에 매일 출근하며 업무를 수행한 것이 확인됐고 또 사망사고가 업무상 일어난 일이 맞다면서도 그를 근로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가족이 양씨의 사망과 관련해 이를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하라는 취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한 사안은 ‘부지급’ 결정이 났다. 

근로복지공단은 양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A사 소속 근로자와 달리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은 점 ▲출퇴근 및 근태관리를 적용받지 않은 점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작업장소가 A사 공장 내이기는 하나 사용자에게 작업장소가 지정된다기보다 제조설비유지보수 계약서상 작업장소가 공장 내로 명시돼 계약을 이행했다고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A사 “기업 간 계약”
유족 “서로 입장 고려한 계약”

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양씨의 근로자성에 대해 계약서 중심의 형식적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단순히 계약서상의 관계만 볼 게 아니라 특수고용계약을 맺게 된 경위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가족은 “아버님(양씨)과 A사가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도급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A사는 도급계약을 통해 양씨에 대한 4대 보험료를 절감했고, 양씨는 급여로 4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유가족은 “아버님께서 몇십만원을 더 받으시려고, 그렇게 (계약)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족은 해당 계약이 외형만 도급이었지 실질은 근로계약이었다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A사는 아버님이 사업주로서 부담해야 하는 부가가치세 40만원을 포함한 440만원을 매월 아버님의 계좌로 입금했다”며 “사업자등록 유지와 세금계산서 발행 및 부가세 신고는 고령에, 사회적 약자인 고인이 회사와의 관계에서 채용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 근로복지공단 전경 ⓒ근로복지공단

유가족은 양씨가 계약 체결 후 사고발생 당일까지 A사에 상시, 정시 출근한 기록, 총 86회 가량 A사 담당자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은 기록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아버님이 현장을 순회하며 문제 있는 설비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그 장비를 고치기 위해 임의로 전원을 끄고 이동하는 등의 자율성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A사의 지시와 감독 하에 작업했지, 업무자율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어 비품이나 원자재, 작업도구 등도 모두 A사에서 제공하는 것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형식적 판단?

유가족은 “장례를 치르고 아버님이 일하셨던 공장을 찾아가 봤다. 아버님이 한여름 뙤약볕에 에어컨도 없는 공장 밖 임시 가건물에서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사인을 확실히 하기 위해 부검까지 했다. 그저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라면서 “그럼에도 A사는 지금까지 유가족에게 그 어떤 책임 있는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남편이자 아버지인 양씨를 한순간에 잃은 유가족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은 양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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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