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간장 형제 간 소송 전말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21 13: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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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상표 같이 써라"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107년 전통을 자랑하는 몽고간장. 그런데 몽고간장을 만드는 기업이 하나가 아닌 둘이라고 한다. 하나는 형이, 다른 하나는 동생이 각각 다른 상호명으로 독립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도 형제 간 법적 분쟁이 벌어져 알려졌다. 상표를 함께 쓰면서 경쟁사 관계인 애매하고도 오묘한 관계. '몽고형제' 간에 벌어졌던 소송의 전말을 살펴봤다.

 

'몽고순간장' 상표 사용권을 놓고 벌어진 형제 간 분쟁에서 법원이 동생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 성낙송 재판장은 '몽고식품' 대표 김만식씨가 그의 동생 '몽고장유' 대표 김복식씨를 상대로 '몽고순간장' 상표의 독점권을 보장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비록 독립된 두 업체라 하더라도 '몽고간장'에 대해 공동상표권자로 등록돼 있는 만큼 동생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합의할 땐 언제고

실제로 두 형제는 동생이 따로 회사를 설립한 1973년 이례 39년간 '몽고간장' 상표를 공동으로 사용해왔다. 또 1986년 상호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김복식씨가 '몽고간장' 상표사용을 김만식씨로부터 보장받았고, 그 중 '몽고순간장'도 공유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 3월 김만식씨는 김복식씨를 상대로 '상표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법원에 부정경쟁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두 업체의 '몽고순간장' 상표는 초록색 상표 바탕에 흰색 글씨로 '몽고'와 '간장'이 적혀 있고, 중간에 붉은색으로 '순'자가 적혀 있어 소비자의 혼동을 불러온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1976년부터 상표를 공동으로 사용해왔고, 이후 '몽고순간장'이라는 상표 등을 공유로 등록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점 등을 볼 때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몽고간장이나 몽고순간장 자체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상표임이 인정되나, 몽고식품의 몽고순간장 상표가 일반 수요자들에게 차별되는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정에 김만식씨가 서울고법에 항소하지 않기로 해 분쟁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그렇다면 피를 나눈 형제가 어째서 간장 상표 하나로 법정 분쟁을 마다하지 않게 된 걸까? 이는 무려 107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인 산전신조(山田信助)는 마산시 자산동 119번지에 산전장유공장(山田醬油工場)을 세운다. 이것이 몽고간장 회사의 전신인 셈. 이어 1931년 당시 17세였던 김흥구(두 형제의 아버지)씨는 산전시조의 공장에 간장배달원으로 들어가 일하다 산전시조의 신임을 얻어 간장을 만드는 법과 공장을 경영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불과 4년 후 그는 어린 나이에 2인자 자리인 공장지배인에 오른다.

세월이 흘러 해방 해인 1945년 산전신조가 일본으로 도망가면서 당시 2인자이던 김흥구씨가 산전장유공장을 매입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공장명도 '몽고장유공업사'로 개명했다.

김흥구씨가 1971년 59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장남 김만식씨가 가업을 이어 받아 사장이 됐다. 차남 김복식씨는 같은 해 몽고유통을 설립하면서 몽고간장의 유통을 책임했다. 하지만 형제의 역할 분담은 오래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년 후 1973년 경기도 부천에 새로 설립된 제2공장에 동생 김복식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형제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복식씨는 부천에 자리를 잡자마자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김만식씨와 합의하에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울 몽고간장'를 설립한 후 수도권과 강원, 충청지역에 간장을 제조?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김만식씨는 '몽고장유공업사'를 '마산 몽고간장'으로 개명한 후 영?호남과 제주지역에서 간장을 판매했다.

'몽고식품' '몽고장유' 누가 진짜?
골육상잔 오해받지만 '동몽이상'


1987년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김복식씨가 '서울 몽고간장'에서 본래 상호였던 '몽고장유공업사'로 상호를 변경하자 이를 보던 김만식씨는 '마산 몽고간장'을 '몽고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한 것. 또 1996년엔 '몽고장유공업사'가 '몽고장유'로 변경되며 마침내 두 회사 모두 현재 상호명을 쓰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원조' 상호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엔 본래의 상호명 '몽고식품' '몽고장유'는 뒤로하고 한쪽에선 '마산명산 몽고송표간장'으로 '마산'을 강조하고 다른쪽에선 '오랜 전통의 맛을 지켜온 몽고진간장'으로 '오랜 전통'을 강조한 상호명을 대문에 내걸고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물론 두 업체 모두 창업 1905년과 107년의 역사를 강조하며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몽고간장은 이처럼 상호명이 비슷해서 헷갈리지만 상표명은 한술 더 뜬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몽고순간장을 포함해 똑같은 제품명을 가진 경우가 많아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도저히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 제품의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몽고간장 제품을 애용하는 소비자들도 '몽고식품'의 몽고간장과 '몽고장유'의 몽고간장을 애써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다. 재판장도 이 같은 소비자의 경향을 근거로 들어 판시했다.

그런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쪽에서 자신이 원조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1985년 9월 '마산 몽고간장'이 <경향신문>에 '몽고간장 애용자 여러분에게'라는 알림을 낸 것이다.

내용을 옮겨보면 "보도된 저질 진간장은 경남 마산에서 제조한 몽고진간장이 아니고 경기도 부천에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상호와 상표는 동일하나 경영과 생산, 판매 및 기타 제반 사항이 전혀 다른 별개의 독립된 기업이므로 애용자 여러분께서는 선택에 착오 없으시길 간곡히 당부합니다"라며 "향토마산의 80년 전통의 명산물이자 국내장유업계의 원조몽고간장을 애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부천의 몽고장유양조에서 생산된 간장에서 혼합간장을 순양조간장인 것처럼 표시한 것이 적발 돼 제조정지 처분을 받으며 언론에 언급됐다. 그래서 마산에서 생산된 몽고간장도 도매금으로 묶여 타격을 받던 시기였다.

피해라 '원조' 논란

이를 종합해보면 같은 상호와 상표를 쓰는 형제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골육상잔이라 부를 만큼의 적대적 관계는 아닌 듯하다. 상표를 함께 쓰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되어가지만 큰 탈 없이 지내왔고, 이번 소송건도 1심에서 항소를 단념해 깔끔하게 끝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번 소송건을 두고 "2011년 말 '몽고장유'측이 부산·호남·경남 지역 등에서 몽고순간장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갈등을 겪다 결국 가처분 신청에 이른 것"이라며 "상표권을 박탈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지나친 덤핑을 자제해달라는 경고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조논란 등 큰 분란을 피하고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채 각자의 길을 걸어 온 만식, 복식 몽고간장 형제. 과연 다음 세대에도 평화로운 공존이 유지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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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