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박근혜 필패론'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21 12: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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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한계? "이대로 본선 가면 반드시 진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 '박근혜 필패론'이 나돌고 있다. 지금껏 '대세론'을 점하며 부동의 지지율 1위를 고수해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선 본선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비록 새누리당 공천헌금 파동을 겪으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지지율이 밀리기는 했지만 박 후보가 대선에서 '필패' 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난 10일 새누리당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김문수 후보가 박 후보의 지지자에게 멱살 잡힌 것을 빗대) 그야말로 멱살 잡힐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판에는 귀를 틀어막고 상대편의 멱살까지 잡는 박 후보 진영의 독선이야말로 필패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필패론, 현 상황에서 그것은 과연 어느 정도 믿을 만한 논리일까?

박근혜 후보가 당초 예상대로 무난히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20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고, 박 후보를 제18대 대통령후보로 공식 선출했다. 

사실 박 후보는 그동안 무려 4년여 넘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다. 이미 집권여당의 잠재적 대선후보였던 것이다. 그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를 위한 촛불시위' 정국을 거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 등 온갖 풍파를 이겨냈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은 박 후보의 독무대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과반을 넘기며 원내 1당을 유지했다. 총선 3~4개월 전만하더라도 100석도 건지기 쉽지 않다는 비관론에, 선거과정에서 총리실의 민간인사찰 파문 등 현 정권에 대한 악재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기사회생의 승리를 놓고 정치권은 '박근혜의 힘'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박근혜의 힘?
매에는 장사 없어

정재계에선 사실상 차기 대선에서 박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 하며 이미 줄대기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여가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는 난데없이 '박근혜 필패론'이 떠돌고 있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박근혜 필패론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필패론의 첫 번째 이유는 각종 네거티브에 대한 박 후보 측의 대응방식이다.

탄대로 같았던 박 후보의 대선가도는 최근 각종 측근비리와 역사인식 등을 비롯한 네거티브에 가로 막혔다. 당내 경쟁자인 김문수 후보가 지난 10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 후보의 지지자에게 멱살이 잡히는 수모를 당한 것도 김 후보가 그동안 4·11 총선 공천헌금 파문과 정수장학회 의혹 등을 거론하고 홍보 동영상에 박 후보와 최태민 목사가 나란히 앉아있는 장면을 트는 등 집요하게 박 후보를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선거캠프에서는 공천헌금 파문에 대해서는 개인적 비리로 선을 긋고, 나머지 네거티브에 대해서는 답변할 가치도 없는 사실무근의 주장이라는 입장이지만 친박계의 한 의원은 "실제로는 박 후보가 네거티브 공격에 굉장히 민감해,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네거티브 공격에 '휘청'…경선 흥행은 '참패'
굳어진 대세론에 캠프 내 권력다툼까지?

정치전문가들도 "상대편으로부터 계속 공격을 당하는데도 확실히 아니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는 현 상황이 길어지면 아무리 지지층이 견고한 박 후보라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네거티브보다 더 큰 문제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의 대응방식이다. 일례로 공천헌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을 지난 16일 제명하긴 했지만 이미 공천헌금 의혹이 최초로 불거진 후 14일 만의 일이다. 사실상 공천헌금 파동이 잦아드는 시점이었기에 일각에서는 "집이 다 타버린 후 물을 뿌린 꼴"이라는 말도 나왔다.

또 수사가 진행될수록 친박계 인물들이 줄줄이 연루되어 박 후보의 책임론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무조건 개인적 비리로 선을 긋고 은근슬쩍 사건을 덮으려는 듯한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김 후보는 박 후보를 겨냥해 "민심은 법 이상의 것을 요구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안이한 대세론
무서운 민심

필패론의 두 번째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유지해온 대세론이다. 지난 4·11 총선을 보면 의석수에서는 새누리당이 승리했지만 총득표수에서는 오히려 야권에 뒤졌다. 승리요인도 '박근혜의 힘'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야당의 '공천 잡음'과 '한미FTA 폐지 주장' '제주 해적기지 발언' 그리고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과거 막말에 이르는 '자살골' 덕분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승리에 도취한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은 위기를 실감하지 못했다는 점이 필패론의 골간이다. 박 후보가 '불통'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감수하며 경선룰을 밀어붙인 자신감도 오랫동안 굳혀온 대세론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들이 각종 의혹들을 해소하기보단 대세에 지장을 줄만한 사안은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모두 대세론을 너무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임태희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현 상황에 대해 "경고등이 들어왔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것"이라며 새누리당 경선일정의 연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박 후보의 경선 캠프 내부에서 본선용 인적배치를 두고 권력다툼이 펼쳐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라 나오면서 박근혜 필패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국민들의 이목을 모을 이벤트의 부재다. 새누리당의 대선 경선일정은 런던올림픽 기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당내에서도 올림픽 기간 중에 경선을 치르는 것에 반대가 많았지만 경선은 강행됐고, 예상대로 흥행은 저조했다. 그나마 경선이 끝나고 나면 새누리당에서는 더 이상 국민들의 이목을 모을 이벤트가 없다.
반면 야권인 민주통합당에서는 오는 9월16일 최종후보를 선출하게 되는데 만약 1위 후보가 과반수를 넘지 못할 경우엔 9월23일 1, 2위 후보 간 결선투표까지 치르게 된다. 2위 손학규 후보가 약진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대형 이벤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서운 야권 바람 
국민관심 독차지

게다가 최종적으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과정까지 남아있다. 정치전문가들은 최소한 오는 11월까지는 야권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이벤트는 지지율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세라 불리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을 수 있었던 것도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았던 국민경선 과정 때문이었다.

네 번째 이유는 새로운 악재의 등장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박 후보가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방어는 아무리 잘해도 방어일 뿐이다. 방어만으로는 지지층의 확장을 이룰 수 없다. 앞으로의 대선정국에서 또 다른 돌발악재가 발생한다면 박 후보는 대선정국 내내 주도권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박 후보는 현 정부와 거리를 두고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해왔다고 말하지만 여당은 여당인 만큼 정부의 실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게다가 방대한 조직을 자랑하는 박 후보는 내부에서 또 누가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도 끊임없이 박 후보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민주통합당이 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이 다시 급부상한 것과 관련, 당 차원에서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면서 박 후보가 또다시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대선가도, 최대의 위협은 '돌발 악재'
"대응 늦었다" 공천헌금 공포도 '여전'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숙적이었다. 60~70년대에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겪으며 줄기차게 유신정권을 반대해왔다. 그러던 중 장준하 선생은 1975년 등반을 갔다가 사망했으며, 경찰은 실족사로 발표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의 실족사에는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모두 묵살됐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친일파 박정희에 의해 독립군 장준하가 타살됐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불가한 일"이라며 날을 세웠다. 앞으로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이 어떤 식으로 발전될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잔펀치가 누적되면 박근혜 필패론은 점점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이유는 안철수란 탈출구의 존재다. 지난 2007년 제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BBK의혹 등으로 큰 곤혹을 치렀음에도 정동영 민주당 후보와의 최종대결에서 승리했다.
당시 20~40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좋다'는 의견보다는 '그나마 낫다' 또는 '아예 표를 주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대안의 부재는 곧바로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이 후보는 정 후보를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531만7708표 차이로 따돌리며 당선됐지만 투표율은 63%로 역대 최악이었다.

필패론 현실 되나?
쇄신만이 살 길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안철수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한국 정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되면서 안 원장이 급부상하게 된 것"이라며 "대안이 없을 땐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일단 대안 생기고 나면 무섭게 결집하며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또 다른 정치전문가는 "'대세론'과 '필패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아직까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박 후보의 필패를 예상하기엔 이르지만 대세론에만 도취되어 필패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항간에 떠도는 박근혜 필패론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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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