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테마기획>봄을 찾는 사람들① 재기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

“휴식은 끝났다” 여의도 점령 작전 ‘큐’



재보선 지역구 4곳 확정 … 선거법 위반 10곳 넘을 수도
박희태·손학규·정동영 ‘여의도 재입성 플랜’ 가동 중?
이재오 입각설·재보선 출마설 거론 ‘복귀는 당연한 수순’

“봄날을 찾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무난히 복귀할 수 있을까.”
최근 4월 재보선 열풍이 몰아치면서 원외에 있는 여야 거물급 인사들의 복귀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번 4월 재보선은 거물급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이기 때문이다. 또 여야가 ‘인물부재론’에 시달림에 따라 이들의 복귀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대신 단서조항이 붙는다. 여당은 이명박 정부 성공, 야당은 당내 입지 구축을 위한 행보를 보여야 된다는 것. 이 때문에 4월 재보선을 위해 거물급 인사들이 조심스레 ‘출사표’를 준비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거물급 인사들이 정치재개를 통해 ‘여의도 재입성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4월 재보선은 거물급 인사들이 전략 공천을 통해 여의도 재입성을 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수도권 지역의 경우 거물급 인사들 간의 ‘빅매치’까지 성사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야 인사들도 이를 전면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당내 분위기와 거물급 인사들의 출마 의사가 중요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첫 중간평가”라며 “여야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거물급 인사들을 대거 전략 공천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치 부활 기지개 펴는 중
거물급, 재보선 출마설 솔솔

실제 4월 총선은 이명박 정부로선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장이자 2차 입법투쟁 성패가 달렸기 때문. 게다가 향후 정국 주도권 확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각 당에선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거물급 인사들의 정치재개는 당내 ‘구심점’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기 위한 행보로 비쳐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의도 재입성’을 통한 정치복귀 노림수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4월 재보선 일정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원외 여야 거물급 인사들은 대거 ‘여의도 재입성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위해 활발한 물밑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측근들을 통해 ‘복귀 군불때기’에 나선 형국이다.

현재까지 4월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총 4곳. 그러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판이 끝나면 많게는 10곳이 넘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천 부평을(구본철 한나라당 의원), 경북 경주(김일윤 무소속 의원), 전주 덕진(김세웅 민주당 의원), 전주 완산갑(이무영 무소속 의원) 등 지역의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돼 4월 재보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반면 1·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구도 적잖다. 서울 금천(안형환 한나라당 의원), 경기 수원 장안(박종희 한나라당 의원), 경기 안산 상록을(홍장표 한나라당 의원), 경남 양산(허범도 한나라당 의원), 울산 북구(윤두환 한나라당 의원), 충북 진천 괴산 음성(김종률 민주당 의원), 강원 강릉(최욱철 무소속 의원) 등이 4월 재보선 지역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이밖에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출마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서울 은평을(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은 10월에 재보선이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로 인해 정치권의 4월 재보선 열기는 극에 달했다. 여야에서는 벌써부터 해당 지역에 조사단을 보내 분위기를 점검하는가 하면, 거물급 인사들 역시 표밭을 일구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이목희 전 민주당 의원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역시 3월 귀국설이 가시화되면서 10월 재보선 가능성이 농후한 서울 은평을 출마설이 회자되고 있다. 게다가 ‘정무장관’ 등 각종 입각설이 난무하고 있어, 정치재개를 위한 활발한 행보가 예상된다.

그러나 거물급 인사들이 넘어야 할 산은 멀고도 험하다. 4월 재보선 출마에 ‘출사표’를 던진 인사들은 반드시 승리를 일궈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따른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재개는커녕 ‘낙동강 오리 알’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막후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 대표의 경우 사실상 이미 오래전부터 4월 재보선 출마설이 회자되어 왔다.


박 대표는 원외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거대여당의 수장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적잖은 마음고생도 있었다. 때문에 박 대표는 대표직을 걸고 4월 재보선에 출마해, 명예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인천 부평을, 경남 양산 출마설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거물급 재보선 ‘빅매치’
넘어야 할 산 많다

여권 역시 박 대표가 당 대표직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인천 부평을에 출마해 침체되어 있는 당 분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다. 그래야만 수도권 주변의 다른 재보선 지역에도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이 지역 출마를 권유하는 당내 여론이 상당하다.

반면 경남 양산에 출마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여당 대표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에 출마하면 공연한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여당 안팎에서는 ‘박희태 부평을 출마설’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박 대표에 맞설 대항마는 과연 누구일까. 지난 총선에서 석패한 홍영표 민주당 당협위원장과 홍미영 전 의원이 입후보를 준비하고 있지만, 여당 대표가 나선다는 점에서 거물급 인사를 전략공천할 공산이 커 보인다. 정동영 전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이 ‘박희태 대항마’로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다시 낙선할 경우 정치적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적은 전주 덕진 출마설이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당내에서는 인천 부평을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정 전 장관이 수도권에 출마해 당을 위해 헌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이 전주 덕진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전주 덕진에 출마한다면 당내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대권 꿈도 접어야 한다”며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출마가 절대적이다”라고 귀띔했다.

야권의 거물급 인사로 손꼽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4월 복귀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4월 재보선 출마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실제 손 전 대표는 측근 인사들에게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무작정 출마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전달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두문불출’ 행보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재보선 지역의 여론을 탐색해보자는 측근들의 제안을 거절할 정도다.

손 전 대표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4월 재보선 출마설은 좀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속담처럼 출마를 할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원 장안 출마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민주당이 인물 부재론을 심하게 겪고 있는 만큼 민주당 거물급 인사인 손 전 대표를 수도권으로 전진 배치시켜 여당의 거물급 인사와 빅 매치를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여권에서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수원 장안에 도전, 화려한 컴백을 시도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연초 개각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후임으로 ‘강재섭 총리설’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미 수포로 돌아간 상태다. 이 때문에 야당이 손 전 대표를 수원 장안에 출마시킬 경우 강 전 대표를 전략 공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여당의 중론이다. 결국 대구가 텃밭인 강 전 대표의 수원 장안 출마설이 불거지는 것은 ‘손학규 대항마’로 띄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동교동계 핵심 인물인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기축년을 맞아 화려한 복귀를 노리고 있다. 지난 14일 민주당에 전격 복당한 데 이어 전주 완산갑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한 전 대표의 출마는 주군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이른바 ‘DJ 막후 역할론’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판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때문에 한 전 대표가 전주 완산갑에 출마, 승리를 쟁취한다면 한 전 대표와 DJ의 정치재개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봄날을 찾는 사람들’ 중 하나다. 이미 3월 귀국 의사를 밝힘에 따라 거물급 인사 중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는 당내 권력구도 변화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활동 재개 여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귀국 후 휴식기를 가진 뒤 입각 또는 서울 은평을 재보선 출마 등을 통해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얘기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실제 이 전 최고위원이 1·19 개각 이후 청와대에 대한 당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친이계와 친박계 갈등, 친이계 권력투쟁 등으로 인해 ‘좌장’ 역할은 힘들다는 것. 따라서 ‘암중모색’ 후 정치재개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또 1·19 소폭 개각으로 6월경 국무총리를 포함한 대폭 개각 가능성이 거론됨에 따라 이 전 최고위원이 빠르면 6월을 기점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원대한 정치포부 성사 여부
정치권 최대 관심사 급부상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전 최고위원이 입각 대신 재보선 출마를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도 거론되고 있다. 친이계 한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은 정치 아니면 할 게 없다. 따라서 10월 서울 은평을 재보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상 이 전 최고위원은 3월 귀국을 기점으로 향후 어떤 식으로든 정치재개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지난 4월 총선에서 패배한 인사와 정치 재개를 ‘암중모색’하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 화려한 복귀를 꿈꾸고 있다. 이들의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과연 성사될 수 있을지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려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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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