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낙→이대만’ 이낙연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0 10:24:01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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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까지…역전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이낙연 대세론’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대권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민주당 안팎서 감지된다. 여야 잠룡 중 압도적 1위를 달리던 때와는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을 이유로 든다. <일요시사>는 이 의원의 딜레마를 뒤쫓았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은 유효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같은 당 김부겸 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추격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대세에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김부겸·박주민 두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을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대낙이 유효한 이유다. 

멀어지는
대권의 꿈?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미디어오늘의 의뢰로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조사하고, 지난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는 8·29전당대회 당 대표 적합도서 이 의원이 69%를 기록, 14%의 박 의원과 11%의 김 전 의원을 크게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대로라면 어대낙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대만’(이러다 대표만)을 언급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 의원이 7개월짜리 당 대표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다. 대권에 대한 비관론이다. 

이 의원은 ‘당권’ ‘대권’ 모두를 정조준하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는 대권 1년 전 대권에 도전하는 당 대표는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한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 열린다. 


즉 이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은 후 대권에 도전하려면 2021년 3월9일 전 당권을 내려놔야 한다. 7개월짜리 시한부 당 대표인 셈이다. 민주당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으로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지난 4월과 7월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부산·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내년 4월에 열린다. 당헌·당규 개정이 없다면 이 의원은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전에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미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지도부 공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한 다른 당 대표 후보들은 이 의원에게 이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어느새 지지율 반토막 ‘거품이었나’
‘엄중 낙연’ ‘부자 몸조심’ 현실로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첫 연설회서 김 전 의원은 “지금 누구나 우리 당의 위기를 말한다. 그 위기의 정점은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아니냐”며 “이미 예정된 위기, 최정점서 당 대표를 그만둔다는 것,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태풍이 몰려오는데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이 의원을 저격했다.

박 의원 역시 최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의원의 7개월 시한부 당 대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당 대표는 안정적·장기적으로 당을 이끌며 비전과 청사진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전환시대에 새로운 정책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이 의원은 좋은 분이긴 하지만, 당 대표가 되면 호흡을 짧게 가져갈 것”이라며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강조했다.


이 의원 입장에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손보는 당헌·당규 개정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의 이해찬 체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무리하게 당헌·당규를 손보다가는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앞서 유사 논란이 한 번 불거졌던 바도 있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지난 6월30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를 분리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의결했다. 잠룡의 중도 사퇴로 2년 임기가 보장된 최고위원들까지 동반 사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의결 내용대로라면, 당 대표가 조기 사퇴할 경우 임시 전당대회가 열려 기존 최고위원 임기는 종료되지 않는다.

앞서 김 전 의원은 당 대표로 당선될 시 임기를 채운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권주자 중 이 의원만이 7개월 시한부 당 대표 프레임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대권행을 돕기 위해 현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개정, 이 의원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해당 안은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된다.

만약 이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골자로 한 당헌·당규 개정에 나선다면, 이는 또 다른 논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논란은 ‘셀프 특혜’다. 본인의 대권가도를 열기 위해 당 대표직을 이용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저격에
휘청∼

이 경우 여권의 다른 잠룡들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하면 여권 잠룡은 대부분 광역지자체장들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즉 이 의원 본인만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이라는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의원은 대권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7∼31일 조사하고,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서 이 의원 지지율은 25.6%로 나타났다. 3개월째 하락세다. 

반면 ‘사법 족쇄’를 풀어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연일 상승세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지사는 동 여론조사서 19.6%를 기록했다. 5월 14.2%였던 지지율은 6월 15.6%로 상승했으며,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7월에는 20%대에 근접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2개월째 상승세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6.0% 포인트에 불과하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컨벤션 효과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컨벤션 효과는 전당대회나 대선과 같은 굵직한 정치 이벤트 과정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이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후보에 대한 언론 노출도가 상승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당선 확률이 떨어지는 정치인이 전당대회 등에 출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권자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다. 컨벤션 효과대로라면 지지율이 상승해야 한다. 이 지사는 사법 족쇄를 떨쳐냈지만, 그뿐이다.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당 대표 후보임에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전당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 지사의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기현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의원은 여의도에 재입성한 후 부동산 논란과 인천국제공항(이하 인국공) 문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등 각종 이슈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였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부동산 논란과 관련해 이 의원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는 비슷한 시기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택백지신탁제처럼 필수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제외한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소유를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러다
대표만?

이 의원은 인국공 문제에 6월 말까지 침묵했다. 그러다 지난달 1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국공 문제가 시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국토교통위원회, 또는 합동회의를 열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는 뒤늦은 입장 발표였다. 김 전 의원이 지난 6월26일 인국공 문제에 대해 “누가 뭐래도 정부와 지자체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가는 게 맞다”며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모습과 대비됐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신중 모드는 여전했다. 이 의원은 국회서 관련 질문을 받자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해찬 대표의 공개사과가 있고 나서야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과정서 질타도 받았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 역시 다른 민주당 의원들처럼 성추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서 나왔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7월 중순, 이 의원은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후보들이 말하기 부적절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 전 의원은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당헌을 존중하되, 당원들의 뜻을 물어 최종 판단하겠다”며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내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며 당헌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이 의원의 입장과 차이가 크다.

이 의원은 여의도 입성 후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여 ‘고구마 화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 의원은 직분에 충실하자는 원칙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이라고 평가한다.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으려다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신중함에…
친문 눈치 보다가?

이 의원의 이 같은 모습은 몇 개월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의원이 내각에 있던 시절 별명은 ‘사이다 총리’였다. 국무총리이던 시절 야당의 날선 공세를 품격 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에 민주당 지지층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난 2017년 9월 대정부질문 당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김성태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문 대통령이) 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비판하자, 이낙연 당시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이어 함진규 의원이 “남조선은 대화 자격이 없다. 핵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하자, 이 총리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이 대화를 말하면 구걸이라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반격했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사이다’서 ‘고구마’로의 변화는 낯설기만 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낙연 의원의 애매한 포지션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겨레>를 통해 “이 의원은 균형감 있는 정치인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부자 몸조심만 하는 인상을 준다”며 “당내 주류세력 눈치를 보자니 입장 없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자니 당내 기반이 없어 언제든지 지지율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의 ‘아킬레스 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정치권에선 줄곧 이 의원의 당내 세력이 약한 점을 약점으로 꼽아왔다. ‘NY(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 확장 중이다. 아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기상조다. 

이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계의 선택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당내 주류인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려다 보니,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인기
되찾을까?

이 의원은 변화를 예고했다. 총리 시절 보여줬던 사이다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고구마라는 별명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뚜렷한 입장을 내고 있다. 지난 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은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며 “(추 장관은)개성이 강한 분”이라고 말한 점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의원의 강점인 ‘균형감각’을 십분 발휘해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면서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전당대회 흥행 적신호, 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8·29전당대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서 흥행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초라한 당권레이스’라는 말까지 들리며 최고위원 경선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낙연 대세론’ ‘아젠다 부재’ ‘언택트(비대면) 방식’ 등 여러 원인이 언급된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으로 대표되는 대세론으로 민주당 당원들은 전당대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권의 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이낙연·김부겸·박주민 등 당권주자들은 아젠다 제시보다 친문 구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 전당대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언택트(비대면) 방식으로 치러져 후보들이 좀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해찬 대표 역시 저조한 흥행 성적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통상 후보만 참석하는 지역별 합동연설회에 동행하고 있다.

과연 이해찬 대표의 동행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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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