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잃은 박원순계 운명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7.20 10:14:55
  • 호수 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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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가 보이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 수장을 잃은 계파가 표류하고 있다. ‘박원순계’ 이야기다. 정치권에선 21대 총선을 통해 박원순계가 20여명으로 늘었다고 본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요시사>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계’는 선장을 잃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박원순계는 21대 국회 들어 순항할 듯 보였다. 지난 총선서 다수의 박원순계가 합류해 세를 불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홍근·남인순·기동민·진성준 의원이 총선서 승리했으며, 여기에 김원이·민병덕·윤준병·천준호·허영 의원 등 초선이 합류했다. 정치권에선 20대 국회서 10여명 정도였던 박원순계가 21대 국회서 20여명으로 약 2배가량 세를 불렸다고 본다.

분위기
좋았는데…

세부적으로 따지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범친노인 정세균계는 10여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력 대권·당권주자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NY계’는 이 의원의 ‘식사정치’ 등으로 세 확장에 성공, 박원순계와 비슷한 수준의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내부서 박원순계는 촉망받는 계파 중 하나였다.

순항할 것 같던 박원순계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돌연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생을 마감하며 던진 숙제가 계파의 존립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박 전 시장의 유고로 공소권 없음 처분 대상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곳곳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원순계 인사들은 대부분 박 전 시장과 함께 서울시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박 전 시장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경우에 따라 불똥이 박원순계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원순계가 곧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 즉 박원순계 인사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같은 신호는 벌써부터 감지된다.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박 전 시장에 대한 입장이 박원순계 내부에서도 갈리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갈래로 입장이 나뉜다.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받지 않는 일이 급선무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한순간에 초상집…20명 어디로?
각자도생이냐, 새 얼굴 옹립이냐

민주당 윤준병·진성준 의원은 앞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며 논란을 불러왔다.

먼저 진 의원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지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피해 호소인이 얘기하는 바도 물론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박 (전)시장이 (성추행)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일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장례식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장 ⓒ사진공동취재단

진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성추행 혐의 고소 사건을 정치적 쟁점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했다. 진 의원은 박 전 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의 발언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는 자신의 SNS에 “고소 진위에 대한 정치권 논란과 그 과정서 피해자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서 답한 것”이라며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윤 의원 역시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서(성추행 피해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 내용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내부서도
의견 갈려

윤 의원은 자신의 글이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했다.

자신의 글을 인용해 일부 언론서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 근무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하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안전이 조속히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자세를 낮췄다.

고소인의 상처를 헤아리는 일이 급선무라는 박원순계 인사들도 있다. 민주당 박홍근·천준호·남인순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박 전 시장의 과오를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박홍근 의원은 지난 14일 장례를 마치고 “고인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의 상처를 제대로 헤아리는 일은 급선무”라며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언급을 하는 것조차 고소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거나 유족이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 봐서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고인이 스스로를 내려놓은 이유를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정치인 중에 가깝다는 제게도 자신의 고뇌에 대해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저는 고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했다.

천준호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그의 과오에도 마음을 열고 경청하고 성찰해 극복하려 노력하겠다”며 “나에겐 누구보다 존경하는 선배였고, 친구였고, 동지였던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과 공을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단, 왜곡된 정치적 선동과 비인간적 행태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비상 걸린 
전 비서실장

대표적인 박원순계 중 한 명인 남인순 의원은 지난 1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반복되는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피해 호소인이 현재 느낄 두려움과 당혹감에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호소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 자리서 서울시에 피해 호소 묵살 및 엄폐 여부, 성평등 조직문화 저해 요소 조사 등을 위한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기구 구성을 요청했다. 국회에서는 성희롱이나 차별 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 제정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남 의원의 입장이다.

현재 남 의원은 민주당 젠더폭력대책태스크포스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계인 민주당 허영·박상혁 의원 등은 성추행 의혹에 말을 아꼈다. 대부분 초선 의원들이다. 허 의원은 서울시 비서실장, 박 의원은 정무보좌관 출신이다. 

지난 15일 서울시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만큼, 전직 비서실장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지난 2015년부터 4년 동안 서울시장 비서실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등을 비롯해, 국회 진출에 성공한 전직 비서실장 출신 박원순계 의원들에게까지 조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

전당대회 역할론 부상
GT계 모델? 손학규계?


박원순계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8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와 차기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서 일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이른바 ‘GT(김근태)계 모델론’이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을 중심으로 뭉쳤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별세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GT계’의 결속력은 흔들렸다. 한때 거대 계파였던 GT계의 당내 영향력이 약해져갔고, 결국 친노(친 노무현)에게 추월당했다. 계파의 수장을 잃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박원순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아내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남편의 뒤를 이어 국회에 입성, 구심점을 찾았다. 이는 GT계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더 나아가 GT계는 당정의 요직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장 박원순계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서 적지 않은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규모다. 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김부겸 전 의원은 박양숙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캠프 대변인으로 영입, 박원순계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박원순계가 단일대오를 이뤄 김 전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은 낮지만,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은 크다. 일각에선 내년 4월 열리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계가 뭉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손학규계’처럼 와해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손학규계는 손 전 대표의 탈당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찬열 전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따라 탈당했지만, 강훈식·전혜숙·고용진·김병욱 의원 등은 당에 남았다. 당에 남은 이들은 친문과 교류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와해 VS
단일대오

손학규계처럼 박원순계가 와해될 것이라 전망하는 쪽은 박원순계가 수평적이 아닌 방사형 구조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계파 내 인사들이 서로 인연을 맺어온 구조가 아닌, 박 전 시장을 중심으로 모인 구조라는 것. 박 전 시장이 사라진 마당에 서로를 향한 끈이 사라진 박원순계는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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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