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잃은 박원순계 운명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7.20 10:14:55
  • 호수 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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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가 보이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 수장을 잃은 계파가 표류하고 있다. ‘박원순계’ 이야기다. 정치권에선 21대 총선을 통해 박원순계가 20여명으로 늘었다고 본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요시사>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계’는 선장을 잃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박원순계는 21대 국회 들어 순항할 듯 보였다. 지난 총선서 다수의 박원순계가 합류해 세를 불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홍근·남인순·기동민·진성준 의원이 총선서 승리했으며, 여기에 김원이·민병덕·윤준병·천준호·허영 의원 등 초선이 합류했다. 정치권에선 20대 국회서 10여명 정도였던 박원순계가 21대 국회서 20여명으로 약 2배가량 세를 불렸다고 본다.

분위기
좋았는데…

세부적으로 따지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범친노인 정세균계는 10여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력 대권·당권주자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NY계’는 이 의원의 ‘식사정치’ 등으로 세 확장에 성공, 박원순계와 비슷한 수준의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내부서 박원순계는 촉망받는 계파 중 하나였다.

순항할 것 같던 박원순계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돌연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생을 마감하며 던진 숙제가 계파의 존립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박 전 시장의 유고로 공소권 없음 처분 대상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곳곳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원순계 인사들은 대부분 박 전 시장과 함께 서울시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박 전 시장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경우에 따라 불똥이 박원순계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원순계가 곧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 즉 박원순계 인사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같은 신호는 벌써부터 감지된다.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박 전 시장에 대한 입장이 박원순계 내부에서도 갈리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갈래로 입장이 나뉜다.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받지 않는 일이 급선무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한순간에 초상집…20명 어디로?
각자도생이냐, 새 얼굴 옹립이냐

민주당 윤준병·진성준 의원은 앞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며 논란을 불러왔다.

먼저 진 의원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지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피해 호소인이 얘기하는 바도 물론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박 (전)시장이 (성추행)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일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장례식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장 ⓒ사진공동취재단

진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성추행 혐의 고소 사건을 정치적 쟁점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했다. 진 의원은 박 전 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의 발언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는 자신의 SNS에 “고소 진위에 대한 정치권 논란과 그 과정서 피해자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서 답한 것”이라며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윤 의원 역시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서(성추행 피해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 내용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내부서도
의견 갈려

윤 의원은 자신의 글이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했다.

자신의 글을 인용해 일부 언론서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 근무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하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안전이 조속히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자세를 낮췄다.

고소인의 상처를 헤아리는 일이 급선무라는 박원순계 인사들도 있다. 민주당 박홍근·천준호·남인순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박 전 시장의 과오를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박홍근 의원은 지난 14일 장례를 마치고 “고인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의 상처를 제대로 헤아리는 일은 급선무”라며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언급을 하는 것조차 고소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거나 유족이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 봐서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고인이 스스로를 내려놓은 이유를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정치인 중에 가깝다는 제게도 자신의 고뇌에 대해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저는 고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했다.

천준호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그의 과오에도 마음을 열고 경청하고 성찰해 극복하려 노력하겠다”며 “나에겐 누구보다 존경하는 선배였고, 친구였고, 동지였던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과 공을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단, 왜곡된 정치적 선동과 비인간적 행태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비상 걸린 
전 비서실장

대표적인 박원순계 중 한 명인 남인순 의원은 지난 1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반복되는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피해 호소인이 현재 느낄 두려움과 당혹감에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호소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 자리서 서울시에 피해 호소 묵살 및 엄폐 여부, 성평등 조직문화 저해 요소 조사 등을 위한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기구 구성을 요청했다. 국회에서는 성희롱이나 차별 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 제정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남 의원의 입장이다.

현재 남 의원은 민주당 젠더폭력대책태스크포스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계인 민주당 허영·박상혁 의원 등은 성추행 의혹에 말을 아꼈다. 대부분 초선 의원들이다. 허 의원은 서울시 비서실장, 박 의원은 정무보좌관 출신이다. 

지난 15일 서울시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만큼, 전직 비서실장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지난 2015년부터 4년 동안 서울시장 비서실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등을 비롯해, 국회 진출에 성공한 전직 비서실장 출신 박원순계 의원들에게까지 조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

전당대회 역할론 부상
GT계 모델? 손학규계?


박원순계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8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와 차기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서 일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이른바 ‘GT(김근태)계 모델론’이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을 중심으로 뭉쳤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별세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GT계’의 결속력은 흔들렸다. 한때 거대 계파였던 GT계의 당내 영향력이 약해져갔고, 결국 친노(친 노무현)에게 추월당했다. 계파의 수장을 잃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박원순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아내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남편의 뒤를 이어 국회에 입성, 구심점을 찾았다. 이는 GT계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더 나아가 GT계는 당정의 요직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장 박원순계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서 적지 않은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규모다. 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김부겸 전 의원은 박양숙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캠프 대변인으로 영입, 박원순계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박원순계가 단일대오를 이뤄 김 전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은 낮지만,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은 크다. 일각에선 내년 4월 열리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계가 뭉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손학규계’처럼 와해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손학규계는 손 전 대표의 탈당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찬열 전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따라 탈당했지만, 강훈식·전혜숙·고용진·김병욱 의원 등은 당에 남았다. 당에 남은 이들은 친문과 교류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와해 VS
단일대오

손학규계처럼 박원순계가 와해될 것이라 전망하는 쪽은 박원순계가 수평적이 아닌 방사형 구조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계파 내 인사들이 서로 인연을 맺어온 구조가 아닌, 박 전 시장을 중심으로 모인 구조라는 것. 박 전 시장이 사라진 마당에 서로를 향한 끈이 사라진 박원순계는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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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