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영화제’ 대종상 무용론

고마해라! 욕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대종상 영화제(이하 대종상)가 코로나19 여파로 밀리고 밀리다 지난 3일 개최됐다. 대종상의 권위는 90년대부터 약 30년간 서서히 떨어졌다. 이번의 경우 개최조차 불투명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촌극이나 다름없었던 2018년에 비하면 배우 참석률이나 실수의 빈도서 나아진 측면이 있긴 하나, 국내 최고령 영화제로서의 위상은 여전히 멀기만 해 보인다. 
 

▲ ⓒ문병희 기자

‘대종상 영화제’는 1958년 정부서 ‘우수국산영화 시상제’라는 명칭으로 출발했다. 1962년 명칭을 대종상으로 변경했다. 그 과정서 국산 영화상 기간은 대종상 수상 약력서 제외다. 그런 이유로 63년의 역사를 지닌 영화제는 2020년이 56회가 된다. 

어용?

첫 단추부터 정부가 세운 영화제다 보니 공정성과는 담쌓은 후진국형 행사였다. 시상식서 수상자나 수상작에 논란이 생기는 것은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아카데미 시상식 등 권위 있는 시상식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대종상은 정도가 지나쳤다. 

과거에는 유일무이한 영화제로서 권위가 있었고, 특히 국내서 유일하게 언론사가 아닌 영화인들이 직접 꾸리는 시상식이라는 점에서 상징성 있는 시상식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한편 정부서 주도하는 관제 행사였던 탓에 ‘어용 영화제’로도 불렸다. 의식 있는 영화인에게 있어 대종상은 적폐나 다름없었다. 


특히 사회 비판적인 영화가 수상하는 일은 전무했다. 사회 부조리를 다룬다거나, 유력 인물을 비판하는 작품은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수상은 커녕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 대종상 수상작은 대부분 반공영화가 차지했다.

유신시대에는 정부 주도로 수상을 통제했을 뿐 아니라 ‘우수 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해 시상할 정도였다.

더구나 대종상 수상작을 만든 제작사는 막대한 이권이 주어졌다. 해외 영화 수입권을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과 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내놓은 영화사에 수여했다. 반공영화가 쏟아져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외화 수입권은 당시 기준으로 억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으니 대종상의 입맛에 맞는 영화가 나오는 것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1984년이 돼서 외화수입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반공영화 제작이 줄어들었다. 돈 주고 상을 구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종상의 비리는 90년대부터 만천하에 드러난다.

1996년 ‘애니깽 사태’는 영화 <애니깽> 연출자인 김호선 감독을 밀어주고자 편집조차 완성되지 않은 영화에 최우수 작품상을 수여한 사건이다. 대종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힌다. 이 영화는 영화 제작 단계부터 안기부가 후원한 영화라는 소문이 돌았고, 본선 시상식은 <애니깽>의 싹쓸이로 끝났다. 

상징적인 영화제? ‘적폐’였던 과거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오래된 시상식

인터넷이 발달한 2000년에 들어와서도 대중이 이해하지 못할 행보는 지속됐다. 2011년 <써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심은경이 불참을 선언하자, 그를 후보서 제외시키기도 했으며, 2012년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에 15개의 상을 몰아주는 기현상도 있었다. 


2015년에는 조근우 집행위원장이 시상식 전 기자회견서 “국민이 함께하는 영화제기 때문에 대리수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석이 불가능하면 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고, 대부분의 배우들은 물론 감독과 제작자 및 스태프까지 대거 불참하는 파행으로 이어졌다. 

2017년에는 이준익 감독이 모욕을 느낄 만한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가 하면, 2018년에는 대리수상 향연이 이어졌다. 특히 영화 <남한산성>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상을 수상할 때 영화와 전혀 무관한 트로트 가수 한사랑이 무대에 오르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됐다.

거론된 것은 굵직한 이슈다. 비교적 작은 잘못들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 많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대종상은 한국 영화 100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열리지도 않았다.
 

▲ 대종상 영화제에 참석했던 가수 박봄 ⓒ문병희 기자

올해만큼은 쇄신하겠다면서 개최 시기도 2월로 옮기는 등 혁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대종상은 가수 박봄의 몸매와 패션만 화제가 되며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영화제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기생충>의 주역들은 대다수 참석하지 않았다. 감동의 수상 소감 대신 하나마나한 내용의 신속한 대리수상이 빈자리를 메웠다.

칸 국제영화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기생충>은 대종상 5관왕에 올랐지만, 봉준호 감독과 정재일 음악 감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작사인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와 공동 각본가로 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가 수상을 대신했고, 배우 중에서는 여우조연상을 받은 이정은만이 홀로 참석했다. 

2011년부터 MC를 맡았던 신현준 대신 예능인 이휘재와 모델 한혜진이 진행을 맡은 것도 이색적이다. 영화상의 경우 배우들이 진행을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영화인이 아닌 다른 업계 종사자가 나온 것도 위상이 떨어진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참석자가 적어 무관중으로 진행된 올해 대종상은 더욱 쓸쓸했다. 연이은 대리수상 탓에 기억에 남는 수상 소감은 없었다. 

주요 부문인 여우주연상의 정유미, 남우조연상의 진선규 등은 불참했다. 대종상의 권위가 떨어졌을 뿐 아니라, 시상식에 임박해서 섭외하는 졸속 행정으로 인해 일정 조율이 어려워 불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올해도 대종상 측은 시상식 축하무대에 옥주현이 나온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가 불참한다는 소식에 재배포하기도 했다. 섭외 요청한 뒤 결정이 나지 않았는데도 발표한 탓이다. 이슈로 남은 건 다소 달라진 외형의 가수 박봄뿐이다. 영화인들 행사에 가수의 자극적인 내용만 회자되는 것이 대종상의 현주소다. 

그나마 배우 이병헌·이정은·정해인·진서연·김소진·박해수 및 장준환 감독 등 이름 있는 영화인들이 꽤 참석했던 점이 유일한 위안으로 보인다. 

엉성


2018년부터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출품제를 폐지하고, 개봉작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변화를 꾀했다. 올해도 시상식을 2월로 옮기면서 한 해 개봉한 영화만을 심사하며 영화계를 결산하도록 노력을 기울였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악재를 넘기는 것도,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위상을 되돌리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오래된 시상식 외에 내세울 것이 없고, 여전히 엉성함이 가득한 대종상이 재기할 수 있을지, 씁쓸함만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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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