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경험담> 신천지 포교 극적 탈출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24 07:58:04
  • 호수 12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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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풀이로 유인…3명이 붙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인터넷에 올라온 신천지 포교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다. 생생한 경험담이라며 올라온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설을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진위 여부에 대한 의구심도 남는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신천지 포교를 직접 경험한 오창민씨를 만나 피해담을 들어봤다.
 

▲ 일요시사가 최근 신천지 포교로부터 탈출에 성공했다는 오창민씨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배승환 기자

사람은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한다. ‘개명하면 인생이 확 달라질 것’이라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오창민씨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오씨는 지난해 8월10일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공터서 ‘성명학 무료 상담’이라는 문구를 보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게 화근이었다. 

무료라더니…

평소 사주풀이에 관심이 많던 오씨는 무심코 천막에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오씨는 “당시 상담해주던 A씨가 나를 보더니, 육해살과 도화살, 그리고 망신살이 꼈다는 등 안 좋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경이 쓰여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골적인 금전 요구가 없었기에 오씨는 의심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살풀이 방법을 묻자 A씨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아는 스승님을 만났다. 그 스승님에게 도움을 받은 걸 갚는다는 의미로 지금 무료로 상담을 하는 것”이라며 A씨와 따로 약속을 잡게 됐다고 했다.

오씨가 약속장소로 가니 A씨가 B씨를 데리고 나왔는데 당시 A씨는 그를 살풀이 전문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50대 중후반의 B씨는 박학다식하고 스마트한 모습으로 오씨에게 다가왔다.


오씨는 “B씨는 성경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 모습에 믿음이 가 이후 한 달가량 스터디룸을 빌려 B씨에게 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서 스터디룸 사용료만 내가 냈을 뿐 별도의 교육비가 따로 들진 않았다. 교육을 듣다 보니 성경에 관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B씨는 “원하는 종교에 맞춰 살풀이를 해줄 수 있다”며 오씨를 안심시켰다. B씨가 말하는 포인트는 하나였다. “모든 종교서 말하는 신은 한 명이다. 지역별로, 시기적으로 차별성이 있어 선구자가 달라졌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 달 반 정도 지났을까. B씨는 오씨에게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새로운 곳으로 유인했다고 한다.

오씨는 “B씨가 인문학 강의를 하느라 자신이 좀 버겁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전도사가 공개강의를 하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위치는 구로디지털단지역서 가까운 거리였고, 간판 없는 건물이었다. 특강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돈 요구하지 않고 무상 교육
관심사 파악해 짝꿍 붙이기도 

결국 9월26일 처음 강의를 듣기 시작한 오씨는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거 교회를 다녀봤지만 성경 공부가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오씨는 “수업을 듣고 나니 B씨가 괜찮냐고 물어봤다.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예전에 교회를 다녔던 곳에서 DTS라고 집중적으로 성경을 배우는 과정이 있었다. DTS 같은 거냐고 물어보니 비슷한 거라고 답변해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된 교육 내용은 성경 관련 내용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을 가지고 설명을 하자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홀린 듯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했다.

오씨에 의하면 수강생이 150명 정도 돼 강의실이 가득 찼으며, 수업에 대한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그는 “7개월 과정이 7만원밖에 하지 않았다. 매달 1만원은 학습자료 복사 비용이라고 했다. 7개월 과정은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등 3반을 다 합친 기간이었다. 특이한 점은 특강을 진행한 목사님과 1:1 상담을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배승환 기자

수업은 굉장히 타이트하게 이뤄졌다.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시작해 총 3시간으로 진행됐다. 일을 마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수업을 들으러 간 오씨에게 의지가 된 사람은 C씨였다. 

오씨는 “처음 갈 때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서 수강생 C씨를 소개해줬다. 짝꿍처럼 C씨와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금방 친해졌다. 수업을 듣고 나서 어땠는지 이야기도 같이 하고 간식도 챙겨주는 등 의지가 됐다. 그때만 해도 C씨를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으며 형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고 한다. 

수업 내용의 대부분은 비유를 통한 성경 공부였다. 포도주는 어떤 걸 의미하는지, 벼가 자라날 때 추수를 해서 창고로 가져가는 행위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등을 해석해줬다.

비유에 대한 뜻풀이가 그들만의 생각이냐고 묻자 오씨는 “그 사람만의 생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설명을 매우 잘했다. 특히 추수에 관한 내용이 정말 많았다. 구약에 나온 내용과 신약에 나온 내용이 매칭이 잘 돼있었고 성경 내용만을 설명하는 수업방식으로 신뢰감을 줬다”고 설명했다.

2주 넘게 수업을 들은 오씨에게 특별한 날이 있었다. 토요일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서 이상한 문구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추수 날을 기다리며’라는 문구를 본 오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수업을 통해 들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간판도 없는 건물서 수업
성경과 다른 구절로 특강

오씨는 “그 문구는 수업 내내 전도사님이 한 말이었다. 교육받을 당시 전도사님들은 ‘공부한 내용을 밖에 얘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들을 때만 해도 왜 좋은 걸 밖에 말하지 말라고 할까 의아해했다. 그 뿐만 아니라 필기한 노트를 밖으로 못 가져가게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심이 든 오씨는 스마트폰으로 ‘성경공부 비유풀이’라고 검색했다. 알고 보니 수많은 신천지 포교 수법 중 한 가지였다. 사주풀이를 통해 포교활동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이었다. 수강하러 온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분야가 있었다. 그런 부분을 이용해 포교한 다음 성경 공부로 이어지게끔 유도한 것이다.

오씨도 사주에 대한 관심으로 이용당한 것이었다.


오씨는 “교육 받기 전에 B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부분을 캐치한 다음 이용한 것뿐이었다”며 “짝꿍이었던 C씨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C씨에게 수업 관련해 할 얘기가 있다고 한 뒤 만나자고 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맨 처음 저에게 이름풀이를 해줬던 A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지만 이들 모두 한통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C씨를 만나 처음부터 신천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정이 생겨서 수업을 듣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자, C씨는 아쉬워하며 가끔 연락이나 하자며 오씨를 위로했다. 이때만 해도 오씨는 C씨가 신천지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C씨에게 조심스레 이들 무리가 신천지 교도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C씨는 놀라지 않았다.

오씨는 “C씨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뭔가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형(C씨)이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한다고 해도 말리진 않을 거라고 했다. 종교가 진짜고 아니고를 떠나 나를 속였다는 게 너무 짜증이 난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조치를 하려다가 참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언급은 C씨를 통해 전달하고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 이후로 전화번호도 다 차단했다”고 했다. 

정체 숨기고

이어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타로, 사주에 관심이 많아 관련 모임에 많이 나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신천지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아무런 공지도 없이 그 모임은 해체돼 황당했다.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신천지가 하는 포교수법은 굉장히 치밀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천지가 무서운 건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신천지라는 것을 알았을 땐 시간을 많이 허비한 상태”라며 “나도 한 달 반이란 시간 동안 공부한 게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주위서 비슷한 경향을 겼고 있다면 지체없이 빠져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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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