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선자금 노골적 '모르쇠' 이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01 0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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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시민단체, 심지어 최시중도 "대선자금이라니까!"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17일 열린 첫 공판에서 "대선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폭탄 진술을 했다. 법정진술인 만큼 대선자금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정권 말이 되면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우리 사회의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의 검찰은 왠지 수상하다. 최 전 위원장의 진술이 "대가성을 부인하는 취지일 뿐"이라며 애써 사건을 축소하려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23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구체적인 단서가 나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며 현재로서는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서 없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6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고,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쓰라며 돈을 줬다고 했는데, 여전히 수사에 착수할 단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며 "내가 고시공부를 할 때 배웠던 형사소송법을 보면 '풍문도 수사의 단서'라고 나와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이 같은 구체적인 진술이 나오는데도 여전히 (형소법과)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권 장관은 전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지난해 9월 이 대통령은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평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불과 10개월 만인 지난 24일, 최측근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최근에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까지 줄줄이 비리에 휘말리면서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야권에선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던 이명박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졌다"며 냉소를 보냈다.

현재 정치권에선 대선자금 수사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비리 수사과정 곳곳에서 대선자금의 꼬리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증거와 단서가 있다면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대선자금 수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정권 초반엔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다가도 정권 말이 되면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게 사정의 칼날을 휘둘러왔던 검찰이었다.


사건 축소 은폐 의혹 "단서가 없으니까?"
아직은 MB 눈치 봐야…국민은 '무관심'

10년 전인 2002년에도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김홍업씨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3남 홍걸씨도 최규선 게이트에 이름이 오르면서 결국 호송차 신세를 졌다. 검찰은 당시에도 엄청난 청와대의 압력에 시달렸다. 이희호 여사가 아꼈던 김홍걸씨 수사 때는 더했다. 당시 검찰에 전화를 한 사람이 박지원 비서실장(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었다. 검찰의 한 간부는 "박지원 비서실장의 불같은 전화가 걸려오는 날이면 검찰청사가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버텼다. 결국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둘이나 구속되는 전례 없는 일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렇게 단호했던 검찰이 이명박 정권 들어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검찰의 주장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 지금까지 대선자금을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구속이 됐는데도 진술 외에는 특별한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저축은행의 경우처럼 3억원 등의 소액을 가지고는 불법대선자금의 규모를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만약 대기업들이 불법대선자금을 건넸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난 2003년 일명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혼쭐이 났기 때문에 방법이 더 교묘해져서 꼬리를 잡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소시효 역시 문제다. 지난 2007년 12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공소시효는 5년에서 7년으로 늘었지만 법 개정 전인 2007년 12월 이전에 받은 대선자금은 공소시효가 5년만 적용된다. 2007년 당시 대선후보가 결정된 직후 대선자금을 본격적으로 모았다면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셈이다.

하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수사의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만약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면 공소시효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장관, 충직한 MB맨으로 불리는 한상대 검찰총장, 그리고 BBK 주임검사로 이명박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최재경 중수부장 등이 대선수사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는 커녕 현재 진행되고 있는 측근비리 수사조차도 증거물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털고 가자는 식의 수사일 뿐"이라며 "과거와 같이 검찰이 비리를 단죄하기 위해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펼치는 수사라고 보긴 힘들다"고 평가했다.

수사의지 문제


그러나 한 정치전문가는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된 준 사법기관이므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권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비리가 터지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하고 단죄를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 검찰의 뒤에는 국민여론과 언론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예를 들어 19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를 구속할 당시 검찰은 정권의 의지대로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하려고 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고교후배였고 중수부장도 권력의 의지에 따라 특수통이 아닌 공안통이 임명되어 현 정권과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현철씨 주변을 파헤쳤다. 청와대가 중수부장을 교체하면서까지 재수사를 할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도 국민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어 그는 "야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돈을 건넨 사람도,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대선자금이라고 주장하는데도 검찰이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은 국민과 언론의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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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