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⑨학력& 학창시절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8.03 17: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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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미래 위한 가장 큰 준비 "준비 된 후보 없나요?"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까지 살펴본데 이어 아홉번 번째로 그들의 '학력'과 '학창시절'을 살펴봤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움은 미래를 위한 가장 큰 준비"라고 했고,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는 인물이라면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철저하고, 유능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대선주자 7인의 학력과 학창시절을 살펴본다면 유권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대권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대통령의 딸 "공부만 열심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1964년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아들 정몽준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박 후보가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1963년 부친 박정희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음 해 박 후보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성심여중에 들어갔다. 한 학년에 두 반뿐이고, 한 반에 30명 정도의 학생이 공부를 했던 일종의 '귀족학교'였다는 후문이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2학년 때부터는 청와대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그는 불어를 잘 했고 성적이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성심여중을 수석 졸업하고 성심여고를 수석 입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심여고에서도 박 후보는 줄곧 1등이었다.

1970년 3월 박 후보는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박 후보는 대학시절 어머니를 대신해 해외 무대에 나서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외국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물론 다른 성적도 우수했다. 전 학년 C학점은 1개뿐이었고 대부분 A학점을 받았다. 평점은 4.0을 기준으로 할 때 3.82, 대학 역시 수석졸업을 했다.


박 후보는 1974년 서강대 졸업 후 곧바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평소 불어를 잘했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급거 귀국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고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다.

한편 박 후보가 여자임에도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추천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원래 박 후보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학을 전공하려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박 후보에게 전자공학과를 추천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박 후보가 사회·정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박 후보는 동기생들이 유신반대 시위를 할 때 말없이 책만 봤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시위에 딸로서 차마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대학시절은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실험실과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다 대학시절 그 흔한 미팅 한 번 못해봤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경호원들의 경호 속에 날려버린 셈이다.

김문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학생운동 투신, 25년만의 졸업

김문수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는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7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70학번)에 진학했지만 순탄한 인생은 결코 아니었다.

김 후보는 경북 영천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대구로 유학하여 경북중학교를 거쳐 1967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으로는 삼성전자 CEO를 역임하고 제4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맞붙었던 진대제가 있다.

그는 고3 때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학업의 뜻을 포기하진 않았다. 김 후보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고학으로 1970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에게 대학시절의 낭만은 없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대학 내 모임인 후진국 사회연구원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때부터 그의 대학시절은 학생운동으로 점철됐다. 김 후보는 1974년에는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돼 대학에서 제적됐다.

김 후보의 부모는 그에게 "대학은 졸업하고 데모할 수 없겠느냐"고 읍소했지만 그는 "다시 대학생이 되더라도 반독재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 제적 후 그는 노동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울 청계천 재단보조공부터 시작해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다. 1986년 인천 5·3사태와 서노련 사건 등으로 두 차례나 투옥돼 2년6개월간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 이처럼 노동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하던 그는 1994년 2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문재인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치열한 반독재투쟁에도 사법연수원 차석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3년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문 후보의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내려왔다. 문 후보는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문 후보는 경상남도에서 학력고사 전체 수석으로 경남고에 수석입학 했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방황을 하다 고교 말기에는 성적이 떨어져 끝내 서울대 입시에 실패했다.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경희대 창립자)은 그런 문 후보를 알아보고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적극적으로 입학을 권유했다. 문 후보는 경희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그러나 문 후보는 경희대 입학 후 운동권 학생으로 변신,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치열한 반독재투쟁을 벌인다. 1975년에는 결국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그 해 8월 문 후보는 강제 징집돼 특전사령부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문 후보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해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붙잡혀 있었다. 때문에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에 응시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조영식 경희대 총장은 문 후보를 위해 직접 신원보증을 서는 등 학교차원에서 당국에 간곡하게 사정을 했다.

문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 3차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사법고시 3차 면접시험 직전 안기부 직원이 문 후보에게 "과거 학생운동을 반성하느냐"고 물었지만 문 후보는 "나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끝내 사법고시에 최종합격한 문 후보는 감옥에서 풀려나 사법연수원에 들어간다. 문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도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법무부에서 아무런 임용도 되지 못한 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명처럼 문 후보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함으로써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김두관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가난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가고…"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8년 11월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생일은 59년 4월10일로 돼 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 후 5∼6개월이 지나 출생 신고를 하던 관습 때문이다.

5남 1녀의 다섯째인 김 후보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 농민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때 학생회비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해 늘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 어문계열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23만8000원이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 이후 2년간 고향 마을에서 마늘 농사를 짓다가 1979년 경북 영주에 있는 경상전문대학(현 경북전문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경북 영주와 경남 남해가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981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이듬해 군에 입대해 경기 의정부 2군수지원사령부 16보급대대에서 30개월을 복무했다. 군 제대 후에는 민주화운동에 뛰어든다. 1986년 4월 재야 운동세력의 연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간사로 활동했다. 개헌추진본부 충북지부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일로 김 후보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인정을 받는다. 출소 후 김 후보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한다. 

손학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약간 놀았지만(?) 불의는 못 참아!"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났다. 손 후보의 부모는 교사였다. 손 후보는 10남매 중 막내다. 손 후보는 1953년 시흥초등학교에 입학해 4년을 공부한 뒤 서울 매동초등학교로 전학해 졸업했다. 1959년 경기중학교에 입학, 밴드부에 가입해 트럼펫을 맡았다. 그래서 트럼펫 실력이 상당한 수준급이다. 그러나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해서는 연극부에 가입했다. 그가 요즘도 자주 연극을 보러 다니는 것은 연극반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손 후보는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약간 불량기가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올라와서 서울 아이들에게 주눅이 많이 들었으나 고등학교 때 밴드반을 하고 연극반에 합숙하면서 선배들과 술도 한 잔 하고 어울리면서 생각을 외향적으로 바꾸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3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삼성그룹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무기정학 중 데모를 해서 또 무기정학을 받아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춘천에서 칩거한 것도 이 때 강원도와 깊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학교로 돌아온 손학규는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또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1969년 군대에 입대한 손 후보는 1972년 만기제대 한 후 1973년 대학을 졸업했다.

정세균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우리 학교 '빵돌이'가 고려대를?"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전북 진안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장을 얻고 전주공고 입학한 그는 대학진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주 신흥고로 전학한다. 신흥고 시절 그는 워낙 생활이 어려워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이 '빵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법학과였던 정 후보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입주과외를 하면서 고시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선포돼 헌법을 가르치던 한동섭 교수가 유신헌법을 작성하라는 박정희 정권의 요구에 불응해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실에 충격을 받아 법관의 길을 포기했다.

정 후보는 대신 교내 신문인 '고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게 구속된 전력은 없다. 1974년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를 지원하지만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에 실망하고 쌍용그룹에 지원했다.

1978년 쌍용에 입사해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재원 시절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LA 주재원 시절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안철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학창시절 성적은 그럭저럭 중간"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은 1962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에 그는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독서는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을 치는 걸로 오해해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연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던 안 원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안 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가을에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이후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됐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안 원장은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의대 교수가 됐다. 하지만 의사생활을 뒤로하고,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시작, 안티바이러스(백신)를 개발했다. 이후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백신프로그램 연구소인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10여 년간 경영했다. CEO를 그만두고나서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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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노 차준영’에 1조 물린 DL이앤씨···손배 소송전 전말

‘에테르노 차준영’에 1조 물린 DL이앤씨···손배 소송전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 차준영 회장과 다툼 중인 1조원대 공사비 정산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2월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보도에서 소송전의 내막을 설명했다. 이에 관해 차 회장은 “허위 보도”라며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항소심 재판을 최초로 언급한 <이데일리> 보도와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통일동산 공사비 소송의 규모와 구조 자체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차준영 시티원 회장은 통일동산 사업의 손실 구조를 발생시키고 떠난 뒤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으로 변신했다. 넥스플랜은 한 채에 200억~400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사다. 18년째 흉물 방치 서울고등법원은 2026년 2월5일 선고한 항소심에서 DL이앤씨가 제기한 공사 대금 등 청구 사건과 관련해 시티원 측 항소를 기각했다. 1심 인용액 약 5184억원을 유지하면서 추가 청구액 약 45억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원금 기준 약 5229억원 규모의 채권이 인정된 것으로 나타난다. 판결문에는 기성 공사 대금, 연대보증에 대한 구상금, 대여금 채권이 각각 구체적으로 산정돼있다. 일부 채권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연 17%의 지연이율이 적용되는 구조도 확인됐다. 지연손해금까지 합산할 경우, 시티원과 차 회장의 최종 부담액이 총 1조원에 이를 수 있다. 일부 채권의 이자 기산일이 2009~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다 지연손해금까지 적용하면 실제 지급 총액은 1조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L이앤씨는 시티원과 공사비 4125억원, 공사 기간 28개월 조건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파주 통일동산 관광숙박시설 사업에 착수했다.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울렛’ 인근에 지하 3층~지상 15층 규모 관광숙박시설(1265실)을 새로 짓는 사업이다. DL이앤씨는 2006년 12월 시티원과 도급계약을 맺고 이듬해 11월 착공에 나섰다. 2008년 9월 사전청약을 실시했으나, 청약률이 9%(118실)에 그쳤다. 사전 청약자들은 잇따라 해약에 나섰고 시티원은 본 계약에 나서지 않았다. DL이앤씨는 결국 공정률 33% 수준이던 2008년 12월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 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 등 총 573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와 공사비 소송 패소 최종 부담액 1조500억원 추산 차 회장은 도급계약상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 내 공사를 완료해야 하지만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DL이앤씨가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의 5%)과 미래 분양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 등 총 5327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반소했다. DL이앤씨는 “시티원이 도급 계약상 의무인 콘도 분양을 사실상 포기해 공사 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게 돼 이에 불가피하게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차 회장은 “분양률이나 공사비 지급 여부와 무관하게 DL이앤씨에게 기간 내 공사를 완료할 책임 준공 의무가 있다”고 맞선 것이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와 연대보증에 따른 대위 변제금, 대여금 등을 합산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티원 및 차 회장 측은 책임 준공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반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사 대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현저한 사유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판단해 반소를 기각했다. DL이앤씨 측은 현재 차 회장 통장과 부동산에 대해 압류 조치를 취해둔 상태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강제집행 절차를 통한 채권 회수에 적극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차 회장은 통장 등이 압류되자, 친형인 차대영 명의 계좌를 빌려 에테르노 압구정의 분양 계약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분양금이 넥스플랜으로 이체된 사실도 거래 내역서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차 회장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로드맵은 내용증명을 통해 “본인(차 회장)은 해당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며, 5184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고, 계좌 압류나 자금 유용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문에는 거액의 채권 인용 사실이 명시돼있고, 차 회장이 사건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여한 구조가 확인된다. 상상 초월 손배 액수 <일요시사>는 앞선 보도에서 통일동산 사업 1심 판결 규모와 함께, 차 회장의 또 다른 사업지인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 과정에서 제기된 자금 흐름의 수상한 점을 다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에 따르면 시티원과 차 회장의 현재 회사인 넥스플랜은 최근 자본잠식 상태로 나타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티원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6289억원으로 자산(약 1359억원)을 약 4930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4930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은 전무한 채 판관비와 이자비용 등 비용만 쌓이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판결 확정 및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될 경우, 사업과 재무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DL이앤씨 측이 채권 보전을 위해 압류 조치를 취한 만큼, 실제 집행 단계에서 어떤 자산이 대상이 될지도 향후 관전 포인트다. 차 회장이 현재 운영 중인 넥스플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넥스플랜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5432억원으로 자산(약 5244억원)을 약 188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188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당기순손실은 약 214억원에 달한다. 매출은 분양·용역 합산 약 669억원을 기록했지만 판관비가 전년(약 131억원)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약 399억원에 달했다. 이자비용도 약 261억원에 이르러 영업손실 약 111억원을 포함한 세전 손실 약 214억원이 발생하는 구조다. 넥스플랜은 현대건설과 손잡고 가수 아이유 등 유명인들이 분양받은 강남 초고가 하이엔드 주거 단지 ‘에테르노 청담’을 완판한 데 이어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29세대 규모의 ‘에테르노 압구정(총분양 예정가액 6860억원)’을 개발 중인 시행사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시티원과 관련 계열사의 재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에테르노 분양 자금이 신탁 구조 안에서 적정하게 관리됐는지도 쟁점이다. 부실한 재무 판관비만 ↑ 통일동산은 신세계사이먼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임진각, 출판단지와 인접한 관광 요지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조성된 통일동산 지구의 핵심 숙박시설로 기대를 모았지만, 장기간 방치되면서 관광특구의 경쟁력 약화와 도시 이미지 훼손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시는 ‘부동산투자이민제 지구’ 지정, 국토교통부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공모 추진 등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시티원 측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단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DL이앤씨와 공사비 정산 갈등으로 인해 흉물로 남겨졌다. 현재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되나 특혜 논란 우려도 적지 않다. DL이앤씨는 채권 확보를 위해 관련 자산 압류 조치를 취한 상태로, 판결 확정 시 강제집행에 나설 방침으로 전해졌다. 다만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시티원의 재무 여력이 취약해 실제 채권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지역사회에서는 “더 이상 흉물 방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자유로를 따라 오두산통일전망대, 임진각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앙상한 공사 현장이 도드라지는 등 통일동산 미관을 해치고 있는 이유에서다. 시 관계자는 “채무 정리 이후 사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관광숙박시설 원안 복원, 주거·복합개발 전환, 공공 주도 방식이나 자력 재개 등 여러 방안이 가능하지만 결국 사업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창호 파주시 의원은 “2009년 4월 공사가 중단된 후 장기간 방치돼 지역의 흉물로 남아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10년 이상 방치되니 짓다가 중단된 건물들이 시커멓게 변해 점점 더 흉물스러워졌다”고 밝혔다. 차가원-MC몽 불륜설 제보 배우 데리고 카지노 동행 탄현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공사가 중단된 콘도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며 “공사 중단 건축물로 인한 도시 미관 저해, 덩달은 주변 지역 쇠퇴화가 이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과의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지만 시티원 측은 항소심 패소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시티원(회장 차준영)은 2월24일 DL이앤씨가 낸 파주 통일동산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한편, 차 회장은 영화배우 김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 회장이 워커힐 카지노 VVIP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냐는 것이다. 차 회장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 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 회장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또 자신의 친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눠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재차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 회장이다. 제보에 따르면 “차 회장이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압구정 모 샤브샤브 식당에서 식사를 접대했다”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이 관계자와 나눈 카카오 톡 대화에서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VVIP라 가능? 간 큰 회장님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