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의 마지막 기자회견 

몰락한 홍콩영화를 기억하다

[일요시사 연예부] 함상범 기자 =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이은 4관왕을 거둔 영화 <기생충>이 약 10개월의 여정을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약 10명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참석한 기자회견은, 지난 10일의 감동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 기자회견서 발언하는 봉준호 감독 ⓒ문병희 기자

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서 <기생충> 팀의 마지막 기자회견이 열렸다. 명함과 ‘프레스 카드’를 주고받는 사이 다량의 마스크가 쌓인 박스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명 이상 급격히 늘면서 공포심도 확장됐음에도,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봉준호 감독을 위시한 제작진과 배우진을 취재하려는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호텔의 세미나장이 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임에도 기자회견 1시간 전인 10시부터 현장은 빼곡하게 차있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사적인 사람들의 집합으로 이뤄지는 결과물인 영화는 특성상, 국가 대표적인 성격을 띠기 어렵다. 하지만 <기생충>이 약 10개월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은 국내 영화팬 모두에게 감격을 전달했다. 그 안에서 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제작진과 배우진 역시 오스카 작품상 시상서 ‘패러사이트’(Parasite)가 울린 감동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습이었다. 애써 침착해 지려고 노력하는 얼굴들 사이서 당시의 벅찬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감독과 배우들의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부터, 직접 얽혀있어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기자회견장에서 오갔던 ‘중요한’ 발언을 모아봤다.

- <기생충>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반지하’와 ‘짜파구리’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대만 카스테라’ 등 한국적인 요소가 굉장히 다분한 <기생충>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서 사랑을 받았다. 작품의 예술성을 중시하는 칸 국제영화제는 물론 대중성의 메카인 아카데미 시상식도 <기생충>의 손을 들어줬다.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봉 감독과 배우들이 생각한 ‘폭발적인 열광’의 뿌리는 무엇일까. 

▲봉준호 :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만드는 스토리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었다. 이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스러운 점도 있지만 현대사회의 빈부격차가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이 있다. 

단 1cm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정면돌파해야 되는, 아울러 그러려고 만드는 영화가 <기생충>이다.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하고 싫어할 수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이정’을 입혀서 혹은 데코를 하면서 달콤하게 포장된 채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현 시대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다. 대중적인 측면서 위험해보일 수 있어도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마무리할 때도 그렇게 했다. 

국내서도 1000만 관객 이상이 호응을 해줬고,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와 베트남, 일본, 영국서도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인기를 모았다. 그 부분이 기뻤다. 이런 저런 수상 여부를 떠나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 기쁘다. 왜 그랬는지는 시간을 둬서 분석해봐야 될 것 같다. 그게 제 일은 아닌 거 같다. 평론가나 기자, 관객이 해주실 것 같다. 저는 빨리 다음 작품을 위해 한 줄 한 줄 써내려갈 생각이다. 
 

▲ 기자회견에 앞서 기념촬영 갖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및 배우들과 스태프 ⓒ문병희 기자

▲이정은 : 칸에 갔을 때, 제 생각이지만 과거에 대한 회상 대신 현 시대를 짚는 영화들이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젊은이들의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동시대적인 문제를 굉장히 재미있게 그렇지만 심도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선과 악이 없는데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게 우리 인간 군상과 흡사해 놀랍다. 아카데미 캠페인이 경쟁구도 같지만 동지적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감독님이 인기가 있는 건, 시상식서 보여준 인간적이고 넘치는 유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오스카 무대에 선 배우들의 전율은?

봉준호 감독 뿐 아니라 배우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등은 미국 내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당시 모든 배우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일부 회자되기도 했다. 전율과 감동이 가득했던 그 순간, 배우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조여정: 무대에 서 있을 때 제 표정으로 만든 영상도 봤다. 저희만 한국 사람이고 타지서 무대에 올라가 있는 걸 보면서 ‘영화의 힘은 대단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봉 감독님이 수상소감서 말씀했듯이 영화가 한 가지 언어라는 게 체감이 됐다. ‘감독님의 영화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접근했으면 이게 다 통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굉장히 자랑스럽게 무대에 서 있었을 수 있었다. 

▲송강호 : 그 당시 제 얼굴이 계속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제가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칸 국제영화제’ 때 너무 과도하게 해서 감독님의 갈비뼈 쪽에 실금이 갔었다. 뺨을 때리기도 했고, 뒷목을 잡기도 했다. 아카데미에서는 갈비뼈만 피해갔다. 

- <기생충>은 어떤 드라마로 탄생할까?

<기생충>은 미국 HBO와 손을 잡고 약 6부작의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빅쇼트>와 <바이스>로 이름을 알린 아담 맥케이 감독과 봉 감독이 공동 제작한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봉 감독이 꼭 넣고 싶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봉준호 :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아담 맥케이 감독과 몇 차례 만나서 얘기도 나눴다. 애초에 갖고 있었던 주제 의식과 빈부격차를 블랙코미디와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시즌1, 2로 가는 게 아니라 5∼6개 애피소드로 밀도 있는 TV시리즈로 만들려 한다.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의 캐스팅 언급이 나왔는데 공식적 사안이 아니다.

- 봉준호에게 번아웃이란?

지난해 5월부터 지난 2월까지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한 봉 감독을 향해 일각에서는 ‘번아웃’의 우려가 있다. ‘감독과 배우를 갈아 넣은 스케줄’을 지나친 봉 감독의 건강은 괜찮을까?
 

▲봉준호 감독 : 제가 2017년 <옥자> 찍고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생충>을 찍고 싶어, 없는 기세를 다 긁어모아 찍었고, 촬영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긴 세월인데 행복하게 마무리돼 다행이다. 

- ‘제2의 봉준호는 없다’에 대하여…

<기생충>의 성공과 함께 일각에서는 ‘제2의 봉준호가 없다’고 말한다. <기생충>처럼 양극화가 뚜렷한 현 영화계 현실에 일침을 놓는 것. 한국 영화계에 기리 남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봉 감독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봉준호 : 저도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들고 왔을 때, <기생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냉정하게 질문해본다. 

제가 1999년 데뷔했다. 20여 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작품, 모험적 시도를 하기 뭔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그냥 독립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와 산업이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을 찍는 시절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의 다이내믹함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되는 지점이다.


90년대 홍콩영화산업이 어떻게 쇠퇴해갔는지 저희가 기억을 명확히 갖고 있다.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많은 재능들이 이곳저곳서 꽃피고 있기에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 희망적으로 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