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한 대에 1~2억원이 훌쩍 넘는 고급 외제차 ‘베티’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여자친구에게 수백만원이 넘는 구두도 거리낌 없이 사준다. 단짝 친구들과 VIP 술집에서 고급 위스키를 나누며 일상을 즐기고, 수억원이 넘는 여자친구의 빚도 조건 없이 갚아준다. 최근 외모, 경제력, 실력 등 성공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골드미스터의 사랑과 일상을 다룬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인기다. 그러나 이들은 ‘꽃중년 신드롬’을 낳으며 남성의 판타지를 한껏 자극한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현실성은 그다지 갖추지 않은 듯하다.
주말 밤만 되면 41살의 노총각 손모씨는 TV 앞자리가 불편하다. SBS 주말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이른바 ‘꽃중년’들과 자신의 삶에 큰 괴리감이 느껴지기 때문.
주인공 김도진(장동건), 임태산(김수로), 최윤(김민종), 이정록(이종혁)은 성공가도의 40대 초반 남자들로 직업 역시 잘나가는 건축사와 변호사, 카페 사장 등이다.
이들은 40대지만 20대 못지않은 로맨스를 즐기고 외모, 스타일, 재력 어디하나 빠지는 것 없이 독신생활을 맘껏 즐긴다. 한때 유행했던 ‘골드미스’의 남성버전인 셈.
환상 속 드라마
그러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0~40대 남성 직장인들 대부분이 ‘골드미스터’에 해당하지 않는데다, 심지어 이런 드라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3040 미혼남성 직장인 355명을 대상으로 ‘골드미스터 여부’에 대해서 설문한 결과, 80.8%가 ‘골드미스터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중에서 골드미스터가 아니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응답자는 46.3%나 됐다.
직장인 이모(36·남)씨는 “10년 전만해도 10년 후의 내 삶이 드라마에서 비추어지는 모습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겠다는 환상을 가졌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먹고, 꿈 많던 대학시절의 동경과 환상은 현실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35·남)씨도 “모든 40대 중년남자들이 저렇게 화려하고 부유하거나, 또는 하루하루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의 중심에서 살고 있진 않은데”라며 “왠지 이건 보는 사람들에게 40대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진 않을까, 또는 지금 이미 40대 초반이지만 난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하게 될까 하는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자동차, 소유 자산 등을 비교할 때’(44.4%, 복수응답)가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39.8%), ‘성공한 골드미스터 이야기를 들을 때’(31.6%),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29.3%), ‘사람들이 골드미스터로 착각하며 대할 때’(15%), ‘업무능력, 성과를 비교할 때’(14.3%), ‘이직을 결심했을 때’(14.3%), ‘시도 때도 없이 항상’(12.8%) 등이 있었다.
30~40대 남성 직장인…꽃 중년 아니라 스트레스
“자동차, 소유 자산 등을 비교할 때 제일 피곤해”
직장인 기모(32·남)씨는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지만, 연봉은 뻔하고 부모님에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 모두 욕심이 돼버리는 것 같다”며 “주변에 탄탄대로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고 ‘난 왜 이것밖에 안되는지’ 자책하다 결국 술로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으로는 ‘친지, 가족’(25.6%)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외에도 ‘동호회 등 각종 모임’(19.5%), ‘친구’(17.3%), ‘직장 동료’(15.8%) 등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겪는 직장인은 74.4%였으며, ‘무기력증’(33.3%, 복수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대인기피’(21.2%), ‘두통’(21.2%), ‘우울증’(19.2%), ‘체중증가’(15.2%), ‘위염’(10.1%), ‘탈모’(10.1%), ‘피부 트러블’(10.1%)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38.7%는 골드미스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 노력으로 ‘자기계발을 한다’(25.2%)를 첫 번째로 꼽았다. 계속해서 ‘업무 능력을 키운다’(20.7%), ‘재테크를 열심히 한다’(16.2%), ‘이직을 준비한다’(13.5%), ‘외모관리를 한다’(9.9%), ‘인맥을 쌓는다’(6.3%) ‘학업을 계속한다’(5.4%) 등의 응답이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달라
현재는 아니지만, 앞으로 본인이 골드미스터가 될 가능성을 묻는 말에 평균 ‘40%’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은 아니라서 스트레스 받고 있지만 언젠간 ‘나도 가능성 있다’며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50%’(22.3%), ‘10%’(18.4%), ‘20%’(16.3%), ‘30%’(14.3%), ‘100%’(8.2%) 등의 순이었다.
직장인 박모(31·남)씨는 “아직은 가능성이 있고 발전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며 “물론 신사의 품격 드라마가 환상을 심어주는데 한 몫 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공감가고 현실적인 드라마들이 나와 미혼과 기혼자들의 마음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