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접은 한상률 국세청장

교도소 담장 위에 선 염라대왕 ‘바람 불면 안쪽으로 뚝’

정부 중추기관인 국세청이 ‘청탁과 비리’라는 광풍에 의해 뿌리째 뽑힐 지경에 이르렀다. 뇌물수수혐의로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구속된 데 이어 한상률 현 국세청장까지 3대 청장이 잇따라 뇌물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탓이다. 이로써 국세청 상층부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 또한 말이 아니다. 일손을 잠시 멈추고 향후 추이를 지켜보자는 직원들도 눈에 띌 정도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인사로비 의혹을 제기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전임 청장이었던 전 전 청장의 부인이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세청에 한바탕 광풍이 몰아쳤다. 현직 국세청장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청장으로 재직하던 전군표 전 청장이 인사청탁 명목으로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현금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검찰에 구속 수감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세청에 대한 국민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국민들은 국세청을 청탁과 비리가 만연한 집단으로 치부하며 외면했다.

한상률 현 국세청장은 이런 어려운 시기에 국세청의 수장이 됐다. 당시 국세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한 국세청장은 전 전 청장이 구속된 지 이틀 뒤인 2007년 1월8일 국세청 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으로 국세청에 많은 신뢰를 보내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정말 죄송하다.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한다”며 국세행정을 믿어 준 국민과 열심히 일해 준 직원들에게 세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이와 함께 국가 재정을 조달하는 국가 중추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각오로 국궁진력(鞠躬盡力)하자”고 강조했다. 국궁진력은 중국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좌우명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한다’는 뜻이다.
한 청장은 이후 국세청을 향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며 2008년 한 해를 국세청 신뢰도 제고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이 결과 한국생산성본부와 한국갤럽 등이 지난 8일 발표한 ‘2008년 국세행정 종합신뢰도’ 조사에서 2007년(62.5점)에 비해 9.3점이 오른 71.8점을 받는 성과를 얻었다.
지난해 11월 한 청장은 한 차례 난관에 봉착했다. 추락된 국민신뢰 회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맞이한 것이다. 이주성 전 청장이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청탁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전 청장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비리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국세청의 위상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한 청장을 비호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한 청장의 잘못이 아니라 전임 청장들의 태도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특히 과거와의 단절을 명확히 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역대 국세청장이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었지만 현재의 국세청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국세청 내부에서 일었던 과거와의 단절의 분위기도 현재는 한풀 꺾인 상태다. 전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미정 씨가 지난 1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청장인 당시 한상률 차장으로부터 ‘대가성 그림’을 전달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이주성·전군표 이어 현 청장까지 검찰행 위기
그림선물 의혹에 골프청탁 의혹까지 첩첩산중
전군표 부인   vs 한상률 청장 “나는 그런 그림 본 적도 없다”

한 청장의 이름과 인사청탁이라는 단어가 섞여 전임 국세청장의 부인의 입을 통해 거론되자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국세청장이 내부비리에 연루가 됐다면 국세청 내부의 뿌리 깊은 비리와 상납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쏟아지고 있다.
국세청장은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과 함께 4대 권력기관장의 한 명으로 우리나라 재정 수입의 85%에 달하는 130조여원의 국세를 징수하는 최고 수뇌부다.
이씨는 “남편이 재임 시절인 2007년 당시 한 차장 부인으로부터 시내 모처 음식점에서 2000만원~3000만원 상당의 그림을 전달받았다”며 “한 차장부부가 국세청 내 경쟁 상대였던 TK(대구·경북) 출신 K지방국세청장을 밀어내 달라며 그림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한 청장이 당시 차장 시절 전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고 알려진 그림은 고 최욱경 화백의 작품인 ‘학동마을’. 이씨에 따르면 당시 한 차장 부부는 K지방청장이 공직자 신분이면서도 많은 금액을 종교재단에 기부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조사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 전 청장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많은 액수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사람을 밀어낼 수는 없다고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K지방청장은 한 청장과는 같은 행시 21기로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사임 당시 국세청 내부 통신망에 ‘억울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 청장은 이씨의 주장에 대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림을 전달한 적이 없다. 완벽한 모함이다”라고 해명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전임 국세청장 부인의 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국세청은 또 한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한 청장의 그림 상납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전 전 청장의 부인이라는 점과 당시 정황이 구체적이란 점에서 이번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간에선 그동안 한 청장은 국세 행정의 투명성을 강조해 온 터라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국세청 간부를 밀어내 달라’고 했다는 증언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맞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다시 광풍을 맞은 국세청 역시 3대 청장이 잇따라 비위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청장의 인사 청탁 의혹은 그림 상납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4일에는 권력실세들에게 골프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있는 포항 지역 인사들과 골프를 치고 회식을 했던 것. 당시는 국세청을 비롯한 권력기관장들에 대한 인사와 개각설이 나돌던 때다. 더욱이 한 청장은 골프를 치면서 가명을 사용, 숨기고 싶은 무엇이 있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정치권에서는 ‘골프 회동’을 놓고 한 청장이 개각 등 공직 사회의 인적 개편을 앞두고 이 대통령의 인척인 신기옥 씨 및 이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골프회동의 참석자는 자동차 부품공장을 경영하는 김모 회장, 포항상공회의소 최모 회장, 강모 의원 등이다. 김 회장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면서 영부인인 김윤옥 씨를 ‘형수님’으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포항상공회의소 회장과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포항의 유력 인사다. 강 의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이상득 의원의 핵심 계보원이다. 사건이 연거푸 터지자 국내 주요언론들은 지난 15일 “한 청장 사의 표명”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한 청장 자신은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고, 사퇴할 생각도 없다”고 맞섰다. 청와대도 “사의를 접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세를 돌릴 수는 없었다.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일말의 도의적 책임과 국정운영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사퇴압력을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한 청장은 결국 15일 밤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는 이를 수리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단 하루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국세청 김경수 대변인은 “한 청장이 어젯밤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며 “한 청장의 사의 표명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시인한다는 뜻이 아니고 도의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세정운영 정상화를 위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 청장은 사임과 관련한 소회에 대해 “그동안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가다가 벗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다”라며 “그동안 열심히 일 해왔기 때문에 청장의 사의 표명은 부끄러워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림 상납 및 골프 청탁 의혹으로 한 청장은 취임한 지 1년2개월만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여론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청와대는 결국 한 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곧바로 후임 인선에 나섰다. 후임자로는 허병익 국세청 차장과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허용석 관세청장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외부인사로는 조용근 한국세무사회 회장,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김호업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누구?
국세행정 종합신뢰도 상승에 기여했지만…

참여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세청 수장으로 유임된 한상률 국세청장은 1953년생 충남 태안 출신으로 태안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행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국세청 국제조사담당관, 중부청 조사2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등 조직내 핵심보직을 두루 거쳤다.
국세청 소득세과장 재임 때인 지난 99년 세정개혁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아 국세행정 혁신을 주도했으며, 본청 조사국장 재직당시에도 부동산 투기와 론스타 등 6개 외국계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2006년 4월 서울국세청장에 발탁된 뒤에는 직원들과의 그룹미팅을 통해 기존 업무를 과감히 없애는 ‘일버리기 운동’을 도입, 세무서 업무량을 획기적으로 축소하는 등 업무효율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7월말에 국세청 차장으로 임명되면서 전반적인 국세행정 업무를 총괄해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사상 초유의 현직 청장 구속으로 충격을 받은 국세청 조직을 빠른 시일 내에 안정시킬 적임자로 낙점돼 국세청장에 올랐다.
한 청장은 취임 이후 국세청 조직의 신뢰회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이 결과 ‘2008년 국세행정 종합신뢰도’를 전년대비 9.3%P 올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빠른 시일내 조직 안정시킬 적임자로 낙점
노무현 정부 이어 이명박 정부서 전격 유임

국내·외 세무조사 업무에 능통하며,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 청장은 신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탁월한 위기대처 능력과 강한 업무추진력이 장점이다. 탁구와 골프 등 운동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김신구(55) 씨와의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역대 국세청장들
국세청은 비리의 온상?
역대 청장 1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불명예 퇴진

국세청은 지난 1966년 이낙선 초대청장을 시작으로 1988년 7대 서영택 청장이 내부 조직 출신으로 문민청장 시대를 연 뒤 한상률 현 17대 청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동안 절반 이상이 비리 등에 연루되거나 조직 내부 문제 등으로 사법처리 혹은 불명예 퇴진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전임 국세청장이었던 전군표 청장은 2006년 7월 국세청장에 내정된 뒤 자신의 집에서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2000만원을 받는 등 6차례에 걸쳐 현금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007년 11월 구속 기소돼 상고심에서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7947만3000원의 형이 확정됐다.
전군표 전 청장의 전임인 이주성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청탁 금품수수 혐의로 2008년 11월 구속됐다.
2003년에는 손영래 전 청장이 썬앤문 감세 청탁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됐고 1998년엔 임채주 전 청장이 국가공무원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세풍사건)로 구속됐다.
문민청장 시절 이전 5대 안무혁 청장과 6대 성용욱 청장 등 군 출신 청장들 역시 선거자금 모금 혐의로 법정에 섰다. 12대 안정남 청장도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후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포탈혐의로 물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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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