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배고파서…’ 현대판 장발장 후일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2.23 11:05:21
  • 호수 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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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밥을 굶다니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생계 곤란을 겪던 인천의 한 부자(父子)가 마트서 우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 부자는 최근 빵과 우유에 손을 댔는데 마트 대표는 처벌을 원치 않았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은 부자에게 국밥을 사주고, 익명의 시민이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일요시사>가 생활고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던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천서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국밥을 사준 경찰이 한 말이다. 경기 침체가 악화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다. 

배고픔 
못 이겨서…

인천의 한 마트서 부자가 식료품을 훔치다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3일 인천 중부 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후 4시경 A(34)씨와 아들 B(12)군이 인천시 중구 소재의 한 마트서 우유와 사과 4개 등 1만원가량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마트 직원에게 적발됐다.

마트 대표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몸을 떨고 땀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지병이 악화돼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임대주택서 6개월간 요양을 하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마트에 도착한 경찰은 마트 대표가 처벌을 원치 않자, 이들 부자를 훈방 조치하기로 하고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사줬다. 또 경찰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은 지역 행정복지센터는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로 하고 B군에게 무료급식 카드까지 지원했다. 


사건 당일 한 60대 사업가는 경찰이 부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데려간 식당을 쫓아가 A씨에게 봉투를 건네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B군이 돈봉투를 들고 뒤따라갔으나 그는 “그냥 가져가라”며 돌려받지 않고 사라졌다. 이후 경찰은 수소문 끝에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이 사업가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또 한 여성은 사과 한 상자를 산 뒤 A씨에게 전달해달라며 마트에 두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장발장 부자를 “돕고 싶다”며 방법을 묻는 전화도 이어졌다. 계좌로 돈을 보내며 생필품을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뇨·갑상선 등 지병 악화돼 휴직
현금 20만원·사과 한상자 등 후원

SNS(사회망관계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서도 해당 마트가 어딘지 알려달라는 글과 마트를 통해 후원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후원에 대해 “누구보다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홀어머니와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라며 “지병으로 하던 일을 못 하게 된 상황서 아들이 배고픔을 호소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된 만큼 건강을 되찾고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19월 강남서도 노인이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 적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일 강남구 한 편의점으로부터, 80대 할머니가 음료수를 훔쳐 갔다는 신고를 받았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에게 체포된 할머니는 강남경찰서로 넘겨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은 전과도 없는 80대 노인이 우유와 주스 등 2500원어치를 훔쳐 절도 혐의로 입건되자, 그 속사정에 대해 알기 위해 노인의 형편에 대해 파악했다. 확인 결과 할머니는 고등학생 손자와 반지하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에 출석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경찰은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논의를 가진 후 3일 뒤 동료 형사 3명 등이 노인이 사는 지역 주민센터에 찾아가 도울 방법을 물색했다. 주민센터 직원은 “할머니 아들이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고로 
슬쩍∼

형사들은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할머니의 사정을 설명한 뒤 “손자의 학비와 생활용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설득했다. 이에 대해 직원은 “학비와 생활용품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할머니가 굶으시는 일이 없게끔 구호물품 등이 전달되도록 조치하고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광주 북부 경찰서는 최근 광주 북구 용봉동 고시텔에 사는 A(35)씨를 절도 혐의로 검거한 뒤 병원에 입원시켰다. C씨는 10월18일 오전 2시20분경 자신이 사는 고시텔을 나와 인근 마트 출입문을 부순 뒤 빵 20여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고시텔에 돌아와 훔친 빵과 컵라면을 먹던 C씨는 곧바로 경찰에 검거됐던 그는 경찰에 출석해 “배고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A씨는 좁은 고시텔서 누워 주린 배를 움켜잡고 열흘을 버텼다. 배고픔 때문에 양심과 죄책감을 내려놓은 그는 마트 출입문에 소화기를 던져 깬 뒤 음식들을 훔쳐 허기진 배를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산업용 기계의 유효기간을 체크하는 일을 해오던 C씨는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지난해 말 퇴사했다. 허리 부상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C씨에겐 가족이 없어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카드 대출로 생활을 이어갔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고시텔 안에 누워서 굶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텔 월세도 4개월이나 밀렸다. 고시텔에 살아 주소지를 증명할 수 없던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대상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를 하던 중 형사가 “왜 뭐든 해보려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끼니 굶고
취업 준비

경찰은 상담을 거쳐 C씨가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판단해 병원에 입원시켜 우선 정신적 회복을 하도록 돕기로 했다. 또 병원서 퇴원하면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주거지 마련과 구직활동 등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 한 편의점서 취업준비생이 삼각김밥, 조각 케이크 등 4500원어치를 훔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취업준비생은 같은 편의점서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준비생은 경찰 조사 과정서 “취업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며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물건에 손을 대게 됐다”고 진술했다. 

딱한 사정을 접한 일산서부경찰서 강력2팀의 한 경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취업준비생에게 2만원을 건넸다. 해당 편의점 업주도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선처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벌어진 한 달 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일자리를 구해 첫 월급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취업준비생 외근 중이던 담당 경사를 만나지 못했다. 담당 경사는 전화 통화로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집에 돌아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취준생 편의점서 삼각김밥 훔쳐
이후 2만원 빌려준 경찰 찾아와

취업준비생은 “일주일 넘게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저는 그만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담당 형사님께서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는 깊은 뉘우침을 느끼게 해줬다”며 “취조가 끝나고 딱히 벌이가 없던 저에게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거라며 2만원을 주셨고, 그 돈을 꼭 갚기 위해 한 달간 열심히 일했다”고 게시했다. 경미 범죄심사제도는 경찰이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 사정을 고려해서 처벌을 감경하거나 선처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미 범죄심사제도의 심사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18건에 불과했던 서울 지역 경미범죄 심사 건수는 지난해 1699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 대상 중 94.5%인 1608건에 대해 처분 감경이 이뤄졌고 91건만 원처분을 유지했다. 경미범죄심사위는 심사 대상으로 정해진 피의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소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원들이 감경 여부를 결정한다. 불가피한 상황이나 안타까운 상황서 발생한 가벼운 범죄에 대해 심사를 거쳐 최초 형사처분을 감경해준다.

심사를 통해 정상 참작을 받은 피의자는 형사 입건되지 않고 즉결심판으로 넘어가거나 훈방 조치된다.  


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어난 것은 우선 제도 자체가 활성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양극화 심화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고령자와 사회 취약계층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계형 범죄
점점 늘어나

통계청이 2월 발표한 ‘2018년 4·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위(하위 20%)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 비중은 2017년 4·4분기 37%서 지난해 같은 기간 42%로 늘었다. 빈곤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활용하거나 이웃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지자체에 알려주는 체계를 마련하는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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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