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문 닫는 ‘아이존’ 속사정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14 10:55:42
  • 호수 1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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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못내 쫓겨나는 서울시 시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신 장애 아동들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서울서 시작한 아동 상담센터인 ‘아이존’이 임대료 문제 등 장소 확보 문제로 줄어들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학부모들은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아이존

지난 4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서 정신장애의 42%가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기에 발병하는데도 불구하고 실태 파악 및 치료 체계의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장애의 42%가 아동·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지난해 정신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19만1702명으로 전체 진료 인원(203만5486명)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치료 인프라를 마련해 정신질환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켜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정신재활 시설

남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정신재활 시설은 총 348개소인데 반해, 아동·청소년 정신재활 시설은 전국에 12개소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모두 서울지역에 밀집해 있고 그 외 지역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2006년 9월 만 6세부터 14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송파 아이존을 개소했다. 아이존은 정서·행동문제를 가진 아동 및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을 위한 서울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시설이다.  

이후 2008년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포럼’서 정신건강 문제 아동 쉼터인 아이존이 사업현황을 발표기도 했다. 이후 ▲2009년 노원, 동작, 양천 아이존 개소 ▲ 2012년 동대문, 중구, 종로 아이존 개소 등 각 지역구로 점차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2016년 임대료와 관련해 장소 확보에 따른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존 공동운영위원회는 ‘운영 장소 확보’에 관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10개소를 운영한 아이존의 운영 장소는 법인이나 시에서 소유하는 건물서 운영하는 유형, 법인서 운영 장소를 확보해 임대하는 유형 등이 있었다.

법인 확보의 경우 매월 높은 임대료 및 인상 요구, 계약 종료 등의 변수가 발생하고 있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 금천 아이존은 폐쇄 절차를 밟았다. 

이외에도 강서, 노원, 동대문 아이존 등이 현재 운영장소 확보에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장소에 대한 확보방안 논의를 진행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정신 의료기관 취약해 마련
점차 늘다 2016년부터 장소 확보 어려움

처음 아이존을 개소할 때 유지방안을 수립해 출발했다면 관례화돼 정착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송파 아이존의 아이코리아처럼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법인이 많지 않은 이상, 장소를 제공하면서까지 운영 할 수 있는 법인이 드문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이 세 지점은 서초 아이존과 같이 자치구서 운영하거나 여유자금이 있는 법인이나 개인이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이전을 할 경우에도 비용적인 면에서 이사 비용과 초기시설 비용을 법인이 부담해야 하게 됐다. 새로운 민간법인이 아이존 운영을 맡게 돼 사업이 활성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임대료에 대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대문 아이존서 이 같은 어려움이 발생했으며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서 아이존의 경우 건물주와 협의해 6개월을 연장했으나 6개월 후에는 임대료를 반드시 인상해 지급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시에서 적극적으로 장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보건소서도 시와 논의를 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그러나 운영 장소 확보에 대한 어려움으로 아이존 사업을 운영하고 수행하면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위태로워졌다.

당시 서울시는 “시설 임대료까지 운영비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인 사회복귀시설의 경우 지정후원금을 확보해 임대료를 납부하는 시설들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이존도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결국 2017년 강서 아이존도 폐쇄되고 영등포 아이존으로 바뀌었다. 2년 뒤인 2019년 노원 아이존에서도 임대료로 인한 존폐위기는 또다시 불거졌다. 

임대료 얼마?
센터 존폐위기 

지난달 27일 국민청원에 “서울시 아이존을 끝까지 책임져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노원 아이존을 이용하고 있는 학부모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노원 아이존이 폐쇄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원해주고 있던 사회법인 재단이 월세 부담에 올해 말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청원했다.

이어 “월세가 없는 공간을 마려해줄 수 있는 방안과 학부모와 아이들이 걱정 없이 센터를 이용하고 싶다”며 호소했다. 다음 법인 재단이 운영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또다시 월세로 인해 부담을 느끼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월세 부담이 없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는 “서울시와 법인회사 노원 아이존의 선생님들 덕분으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많은 아이가 회복되고 있었다. 고학년 아이들은 그나마 인근 다른 센터로 연계가 된다고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이런 센터가 없어 중간에 치료가 중단될 위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무엇보다 정신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아이존은 보통 시·구 건물, 법인 건물, 임대 건물 등에 자리를 잡는다. 노원점의 경우 임대 건물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건물 임대인이 내년부터 월세 인상을 요구했다. 현재 노원 아이존은 작은 사회복지법인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재단에선 더 나은 곳이 맡아 운영하는 것이 안정적일 것으로 판단해 올해를 끝으로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노원 아이존 관계자는 “자금은 법인재단이나 후원으로 충당한다. 후원자들에게도 임대료를 후원해달라고 하면 아무도 후원하지 않는다.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건 몰라도 임대료에 관한 사업은 후원을 받기가 참 힘들다. 특히 큰 재단의 경우는 사람들이 많은 후원을 하지만 작은 사회복지재단의 경우는 후원금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노원 아이존을 이용하는 학부모들은 SNS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존 지키기에 나섰다. 노원구 국회의원과 구청장은 주민의 요구에 따라 법을 제정하고 노원구 사업과 예산을 편성하도록 촉구하는 대회인 ‘제1회 노원 주민대회’에 참여해 요구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2006년 개소
폐쇄로 가닥

요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 노원 아이존은 정서, 행동 빛 발달장애 문제를 가진 서울시 아동을 대상으로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개입을 통해 아동들이 학교 및 가정에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취약계층의 아동을 체계적인 치료와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노원 아이존은 행복복지재단서 재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돼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에선 사업비가 책정됐으나 공간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이존이 사라지게 되면 노원의 정서 치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어떤 가족들은 치료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원 아이존을 지켜달라.’
 

이어 다른 한 학부모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함께 해보자”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한목소리를 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저학년의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노원 아이존이 폐쇄될 경우 지속해서 받아오던 자녀들의 상담이 끊기게 된다. 노원 아이존 시설장은 “아이들 치료는 딱 1년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담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시서 운영되고 있는 아이존은 총 열 군데다. 노원 아이존과 동대문 아이존을 제외하고는 월세 부담이 없는 시·구청 건물이나 위탁운영기관 건물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이 두 지점은 현재 건물주의 입장에 따라 운영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노원 아이존은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으로 행복복지재단이 운영을 포기했으며 동대문 아이존은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서울시관계자에 따르면 동대문 아이존은 이사가 확정됐다. 동대문구는 아니지만, 현재 위치서 멀지 않은 곳으로 새로운 보금자리가 확정돼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대문 아이존에 확인한 결과 “어떤 답변도 드리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강서·노원·동대문 등 불안정
행복법인재단 노원점 후원 포기

아이존 존폐 위기에 가장 아쉬워하는 이는 단연 학부모다.

A학부모는 “자녀가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아동 ADHD 증상을 겪었다. 사설 병원서 상담·치료를 진행하면 비용도 부담일 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병원에선 환자를 돈으로 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형식적인 질문만 몇 번 하다가 끝나는 치료라 끝나는 시간만 기다린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아이존 같은 경우 저렴한 비용으로 지속적인 상담이 이뤄진다. 가장 좋은 점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 교육도 함께 진행돼 아이의 부족한 점을 상담교사와 함께 치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이존 같은 경우 개인 치료, 그룹 치료 등이 있다. 사설병원과 가장 큰 차이는 상담교사와 그룹치료 아이들의 변동이 없어 아이들이 혼란을 겪는 일이 적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모님들도 굉장히 만족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존은 10년 이상 된 아동 상담센터인데도 대외적으로 홍보가 적극적으로 돼있진 않다.

B학부모는 “아이존 자체가 굉장히 좋은 곳인데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면 센터도 몇 군데 없을뿐더러 인원도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친척이나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아이존 입장서도 홍보가 너무 될 경우에는 인원을 모두 받지 못하기 때문에 홍보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송파·양천 아이존 두 곳만 정원이 40명이며 나머지 센터에선 정원이 총 30명으로 한정돼있다. 학부모들의 관심을 받는 노원 아이존은 공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정원수 적어 
홍보 소극적

한 시설 센터장은 “서울시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노원 아이존의 새로운 공간이 마련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각 구에서도 마련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법인재단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문제”라며 “노원 아이존이 폐쇄된다면 아이들은 물론 시설장,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재단이 새로 맡게 되면 3개월 운영비인 최소 3∼4억원의 자금을 써야 한다. 이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 테니 이 부분은 적어도 국가서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기적으로 아이존이 점점 줄어든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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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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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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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