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위기의 안국약품 막전막후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안국약품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대표이사는 불법 리베이트와 불법 임상시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는 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일각에선 회사 전체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안국약품 어준선 회장

안국약품은 눈 영양제 ‘토피콤에스’로 유명한 중견 제약사로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800억원대다. 창업주는 어준선 회장이다. 어 회장은 장남과 함께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어 회장이 80세가 넘는 고령인 점을 미뤄봤을 때, 실질적 회사 경영은 장남이 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00억대
중견 제약

안국약품은 올해 창업 60주년을 맞았다. 지난 9월3일 기념식이 있었지만 이날은 어 회장의 장남인 어진 부회장이 구속된 날이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조사부는 이날 어 부회장을 구속했다. 어 부회장은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법 임상시험을 한 혐의를 받았다.

안국약품은 관련 사안을 공시했다. 안국약품은 “어 부회장은 약사법 등 위반 혐의로 현재 구속돼 수사 중”이라며 “회사는 현재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정상적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19일 어 부회장은 구속적부심을 거쳐 석방됐다. 이튿날 검찰은 어 부회장을 비롯해 안국약품 관계자와 안국약품 법인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미승인 임상시험을 하고, 비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어 부회장 등은 2016년 1월7일과 21일, 안국약품 중앙연구소 직원 16명에게 혈압강하제 약품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약품은 개발 중이었던 것으로, 실험은 투약 뒤 시간 경과에 따라 이뤄졌다.

이들은 연구소 직원 한 명당 20회씩 총 320회에 걸쳐 채혈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하 식약처) 승인도 받지 않았다. 어 부회장 등은 직원들의 피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창업 60주년, 잇단 악재 속 찜찜 
직원 임상시험 이어 리베이트 재판

이들은 같은 해 6월22일과 29일에도 연구소 직원 12명에게 항혈전응고제를 투약했다. 어 부회장 등은 직원 한 명당 22회씩 모두 264회 체혈했다.

어 부회장 등은 시험 결과를 조작한 혐의도 받았다. 이들은 동물을 상대로 한 비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2017년 5월 항혈전응고제 개발 중 비임상시험서 결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 비임상시험은 임상시험 전 단계다.

이들은 데이터를 조작, 비임상시험의 기존 시료 일부를 바꿔치기하고 재분석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안국약품은 이번 사건과 별개로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어 부회장과 안국약품 관계자들은 의사들에게 80억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원에 출석했다.


첫 공판은 지난 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서 열렸는데 어 부회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어 부회장과 공모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관계자 A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

어 부회장과 A씨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사는 “어 부회장은 공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전부 부인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또 현금 리베이트 금액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어 부회장이 A씨, B씨 등과 공모해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봤지만 금액이 다르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리베이트

공소장서 어 부회장의 현금 리베이트 금액은 56억원이다. 이 중 A씨와의 공모액은 7억원, B씨와의 공모액은 32억원이었다. 결국 모두 39억원으로 어 부회장의 리베이트 금액이 17억원 더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 전체와 공모 부분을 대체로 인정한다는 취지”라면서도 “공소사실 특정 문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공모 부분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그런 부분은 차후 증거 등을 통해 입증하고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어 부회장 등은 의약품 판촉을 목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지급을 공모했다. 이들은 의사들에게 80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의료인 68명에게 56억원 상당, 보건소 의사 17명에게 8억원 상당, 그 외 의뢰인에게 25억원 상당의 현금 리베이트와 경제적 이익,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였다.
 

▲ 어진 안국약품 부회장

재판은 30분가량 진행됐다. 재판을 마친 어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법원을 빠져나왔다. 2차 공판 기일은 다음 달 서울서부지법서 열린다.

앞서 검찰은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지난해 11월 안국약품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확보 자료를 분석하고, 안국약품 전·현직 관계자들과 수수 의혹을 받은 의사들을 조사했다.

첫 공판서
전면 부인

검찰은 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는 지난달 25일 어 부회장 등 4명을 약사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8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한 명은 구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안국약품은 이전에도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안국약품은 지난 2014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식약처는 이듬해인 2015년 안국약품에 대해 일부 의약품 판매업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어 안국약품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취소당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안국약품을 둘러싼 악재가 서서히 부상하는 모양새다. 어 부회장이 구속에 이어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안국약품은 지난달 19일 불법 임상시험과 관련, 공시를 통해 ‘구속적부심사 인용에 따른 기재정정’을 언급했다.

안국약품은 “지난 9월3일 어 부회장에 대해 약사법 등 위반의 혐의로 현재 구속 수사 중임을 공시한 바 있다”며 “9월19일자로 어 부회장의 구속적부심사가 인용돼 불구속으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국약품은 어 부회장이 구속될 당시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당사는 현재 각자대표이사 체제로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에 재판까지…좁아지는 입지
안국건강, 차남에게로 쏠리는 눈

일각에선 어 부회장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어 부회장은 불법 리베이트와 불법 임상시험 혐의를 정면으로 받고 있다. 반면 어 부회장의 동생인 어광 안국건강 대표는 큰 잡음 없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안국약품의 최대주주는 장남인 어 부회장(22.68%)으로 어 회장이 20.53%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어 대표는 2.74%에 불과하다.

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안국약품 사장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지분율을 오늘날의 22.68%까지 끌어올렸다. 어 부회장이 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안국약품을 손에 쥔 것과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3여년 뒤 어 부회장은 악재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어 부회장과 어 대표는 함께 언급되곤 했다. 일례로 장남과 차남의 경영 실적이 대표적이다. 어 부회장은 안국약품 경영을 시작한 첫 해에 기대와 달리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안국약품의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2016년 안국약품 매출액은 연결 기준 1740억원이었다. 반면 전년도 매출액은 1980억원이었다. 공교롭게도 안국약품은 2010~2015년까지 꾸준히 성장세였다.

안국약품의 2017, 2018년 매출액은 다시 상승세를 탔지만 성장폭이 작았다. 2017년 매출액은 1835억원, 2018년 매출액은 1857억원이었다. 또 매출액만 따져봤을 때, 두 해년도의 매출은 2015년에 비하면 규모가 적은 편이다.

상승세
하락세

반면 안국건강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 대표는 애초 안국약품서 근무하다가 2003년부터 안국건강의 대표를 맡았다. 안국약품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국건강의 성장세는 뚜렷한 편이다. 안국건강의 최근 5년간 매출을 보면 2014년 125억원, 2015년 182억원, 2016년 159억원, 2017년 255억원, 2018년 290억원이다. 지난 5년간 2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안국약품의 오너 2세 승계는 이미 이뤄졌지만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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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