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상사병 걸린 톱스타 '단골 퇴마사' 김영기 법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2.13 10: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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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안 믿는 사람, 빙의 더 잘 된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최근 몇 년간 케이블TV에서는 ‘빙의’와 ‘퇴마’를 소재로 한 심령치유 프로그램을 쏟아내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퇴마사들이 등장했고 개중에는 용한 퇴마기술을 선보이며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급 퇴마사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 중 한 명인 김영기 법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귀신을 소재로 하는 영화, 이야기가 쏟아지는 요즘.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법당에서 그를 만났다. 

“15년 전 첫 방송에서 ‘퇴마사’로 얼굴을 알린 후 줄곧 방송을 통해 퇴마의식을 해왔죠. 그러다 보니 퇴마 쪽 일만 부각되었지만 퇴마는 제가 하는 일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주는 물론이고 풍수 등 보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20년간 우리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해결하고, 미래의 불확실함을 타파시켜온 퇴마사 김영기 법사. 그는 이미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사람이다.

특히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혹은 검찰·경찰 인사이동이 있는 시기면 그를 찾는 유명인들은 더욱 늘어난다. 뿐만 아니다. 연애문제로 고민하는 연예계 톱스타들의 단골로도 알려져 있다. 상사병에 걸리거나 삼각관계에 놓인 경우, 새 프로 출연이나 소속사를 옮기는 문제를 갖고 은밀히 그를 찾는다고 한다.

놀이터가 ‘산’이던 꼬마

김 법사가 사후세계에 심취하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어려서부터 사람의 운명에 관심이 많았다. 놀이터가 ‘산’이었던 그는 산속에 헤매다 바위에 걸터앉아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지? 왜 어떤 이는 부자고, 어떤 이는 가난하지? 누구는 예쁨을 받고, 누구는 미움을 받는지?” 등을 되뇌며 살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꼭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퇴마는 신을 받아서만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50%는 수행으로 만들어지지만 50%는 타고나야 하거든요.”

김 법사는 그간 살벌한 것부터 정이 흐르는 것까지,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을 해결해왔다. 그 중에는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도 있다. 김 법사는 가장 먼저 집에 우환이 있어 고민인 사례자의 할머니, 할아버지 묘지를 이장해준 것을 꼽았다.

“찾아가보니 할아버지 산소는 나무뿌리가 관통하고 있었고, 할머니 산소는 물이 꽉 들어차 있는 거예요. 당시 그 자리를 정해준 지관이 함께 있었는데 제 얘기를 듣고 방방 뛰었죠. 저는 파묘를 해서 제 얘기가 틀린다면 다 물어주겠다고 했고, 결국은 제 말이 맞았죠. 이장할 자리에 가서 정확이 160cm를 파라고 했더니 정확히 그 지점부터 까만색이던 흙이 황토색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 후 그 지관은 도망갔죠.”

‘퇴마사’인줄만 알았더니 사주·풍수 등 못하는 게 없네
귀신은 실제로 존재…“정신과 의사들과 함께 가야”

식물인간이던 사람을 깨어나게 해 준 경험도 있다. 봉천동에서 사채놀이 하던 조폭 이야기다. 그 조폭이 다니던 보살집이 있었는데 보살이 계룡산 자락에 절을 사자, 비포장도로였던 길에 자갈을 쫙 깔아줬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다음날 조폭은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아 식물인간이 됐다. 사연인 즉 돌아가신 아버지가 진노해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다.

“범인을 영시해서 찾아준 뒤 조폭의 고향을 찾았죠. 산소에 갔는데 한 노인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예요. 말을 붙였더니 자기가 여기 주인이라면서 ‘나는 이렇게 추운데 놔두고 남의 집 조상한테는 길을 깔아줬다’고 분노했죠. 노인을 달래주고 그 후 조폭은 가료를 통해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또 김 법사는 잘 알려진 대로 수많은 빙의환자를 직접 치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김 법사가 치유할 수 없던 사례자도 있었다고 한다.

특경대 출신의 빙의 사례자는 성격이 매우 포악해 가족들조차도 2~3m 떨어져야만 대화가 가능했다. 김 법사가 그의 방에 들어가 둘러보니 칼들을 여기 저기 숨겨놓았고, 옷장을 열었는데 여자 실물크기의 인형이 있었다.

인형은 눈, 코, 입은 물론이고 속옷과 옷까지 입혀뒀는가 하면 고무장갑으로 여자의 성기 모양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저녁만 되면 인형과 춤을 추고 섹스까지 나눴다고 한다.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빙의 환자가 워낙 거부감도 심하고, 공격적이라 손도 못 댄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빙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 김 법사는 영매체질이 빙의가 잘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석 같은 영을 당기는 체질이다. 이 외에도 심신박약, 영혼자체가 근본적으로 방어가 안 되고 약한 사람, 강한 충격과 집착이 있을 때도 빙의가 되기 쉽다고 한다.

“빙의가 된 사람들을 보면 몸을 덮고 있는 ‘오로라’부터가 다르죠. 일반사람들의 오로라는 밀도 응집이 잘 되어 강하다면 빙의환자들은 오로라가 얇거나 뚫려있는 경우가 많아요. 또 인터넷을 통해 빙의가 되는 환자들도 있는데, 귀신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파장을 내뿜을 때 그대로 들어오는 식이죠. 특히 포르노, 도박 사이트에 탐욕령, 색정령이 제일 많아요.”

물론 퇴마사의 퇴마의식을 들어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빙의나 퇴마의식이 현대 정신의학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초자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김 법사는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영혼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보다 앞선 영(靈)의 세계

“과학보다 앞서있는 세계를 과학이 어떻게 입증하겠습니까. 어떤 장비로 심령을 측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또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증세에 가까운 병명을 붙여 약을 주는데 이는 만성 빙의환자들만 더 키울 뿐이에요. 오히려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빙의는 더 잘되는 법이니까요. 실제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면 피해가 덜하죠. 정신과 의사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귀신은 있을까 없을까?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고, 귀신에 빙의돼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 공포로 인한 허상인지, 아니면 진짜 귀신이 들어와 영혼을 지배하는 것인지 알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퇴마사들의 의식을 통해 제2의 삶을 찾은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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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