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16범’ 조세형 파란만장 도벽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6.17 10:41:54
  • 호수 1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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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못 씻고…좀도둑 된 대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조세형이 아직 손을 못 씻고 제 버릇 남 주지 못했다. 또 도둑질을 했는데 벌써 16번째였다. 그의 나이는 올해 81세다.
 

▲ 조세형

1970~80년대 고위 관료와 부유층의 집을 털며 ‘대도’라는 별칭을 얻은 조세형씨가 또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1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조세형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세형은 지난 1일 오후 9시경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 1층의 방범창을 뜯고 침입해 소액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아 출신
10대 때 절도

경찰은 조세형이 훔친 금액은 몇만원에 불과했지만, 상습법인 점을 감안해 구속한 것으로 밝혔다. 조세형이 절도 혐의로 수갑을 찬 것은 16번째다.

조세형은 1938년 전북 전주서 태어났다. 고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도둑질에 눈을 떴던 조씨는 5세 때 남의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은수저를 훔친 것이 첫 도둑질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16살 무렵 본격적인 도둑질을 시작했고, 이후 20차례 교도소에 들락거렸다. 1970년대 조세형의 범행을 기록한 판결문을 살펴보면 ‘조씨는 뒷담을 넘고 베란다를 통해 2층 방에 침입했다. 뒷담을 넘고 그 집 안방 쇠창살을 드라이버로 뜯어냈다’고 기술했다. 


당시 조세형은 “어릴 때 배를 채우기 위해 훔쳐 먹다보니까 절도 습관이 몸에 뱄다”고 말한 바 있다. 

법원 판결문에 나온 절도 기록도 다양하다. 36세이던 1974년 5월15일 오후 8시쯤 서울 신당동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 침입해 녹음기 한 대 등 모두 5만4100원 상당을 훔쳤다. 1975년 1월31일에는 서울 중구 필동 한 가정집에 들어가 다이아몬드 반지 등 105만원의 상당을 훔치기도 했다.

같은해 2월 조세형 서울 종로구 명륜동 양모씨 집 창문을 뜯고 침입해 금고를 드라이버를 부수고 현금·수표·금·비취목걸이·다이아몬드 반지 등 2600만원어치를 훔쳐 내연녀를 통해 70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다세대주택 방범창으로…
고작 몇 만원 훔치고 수갑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언론서 조세형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대판 홍길동, 대도 등 다양한 별명이 붙으면서 단순한 잡범이 아닌, 의로운 도둑의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1982년 12월 형사들은 “그는 유명인사의 집만 골라 값비싼 귀중품을 훔치는 간 큰 도둑이었으며, 돈을 쓰는 것도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뿌렸다는 게 주변인들의 얘기”라고 말한 바 있다. 

1983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훔친 5.75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5공 시절 고위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야당은 정부를 공격할 거리를 찾다가 들고 일어나자, 5공에 반감을 갖고 있던 대중은 그를 강자를 노리는 대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세형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서 ‘권력층을 대상으로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왕에 범죄 하는 것 큰 집 들어가야 가지고 나올 것도 있을 것 아니냐”며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청와대 경호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신모씨였다”고 답했다. 

조세형은 “거기서 여러 가지 수십억원어치 보석을 들고 나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물방울 다이아였다”며 부유층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이어 “솔직히 정상적인 수입으로 그렇게 했겠냐”며 “나보다 더 도둑놈들이고 부정축재로 쌓은 것이겠지”라고 덧붙였다.

조세형이 부유한 큰집을 노렸던 것은 허를 찌른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 초반의 큰집은 의외로 문단속이 허술한 경우가 많았고, 집이 크면 한쪽 방에서 웬만한 소리를 내도 발각되는 일이 드물고, 큰 집일수록 낮에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유층 털어
사회적 이슈

당시 조세형은 부유층의 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민들은 통쾌하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경찰과 사법당국은 긴장했다. 결국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졌고 182년 11월 조세형은 경찰에게 최포된다. 체포될 당시에도 조세형은 절도 전과 11범이었다.

1982년 11월에 체포된 조세형은 1983년 4월 결심공판이 열리던 날 탈주를 결심한다. 10여차례에 걸쳐 5억여원 절도 혐의로 기소된 그는 탈주 계획을 세운다. 법정에서 구치소로 돌아가기 전 피의자들은 구치감서 대기한다. 조세형은 구치감에 머무는 동안 경비가 허술해지는 순간을 노렸다.

담당 교도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구치감 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와 한쪽 수갑과 포승줄을 푼 뒤, 복도 환풍기를 뜯고 탈출한 것이다. 조세형은 탈주한 뒤 서울역, 후암동, 장충동 등 도심 일대를 활보했다. 또 5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과 현금, 옷가지를 훔치는 대담함도 보였다. 

1983년 4월19일 오전 10시쯤 서울 장충동 주택가 골목. 18세 청년은 수배범을 발견하고는 10여분간 미행한 후,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을 발견한 조세형이 가정집으로 뛰어들어 지붕을 타며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이미 장충동 일대에 포위망을 쳐놓은 상태였다.
 

10여분 동안의 추격전 끝에 경찰과 조세형은 막다른 곳에서 대치했다. 조세형이 한 가정집에 침입해 집주인의 아들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조세형의 손에는 드라이버와 쇠톱이 들려 있었다. 경찰은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 얼마 후 조세형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쏘지 마라. 자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스총을 발사했고, 조세형이 흠칫하며 인질을 놓친 사이 권총 한 발이 발사됐다. 영화 같은 ‘대도 탈주사건’이 6일 만에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또…또…
의적 미화?

조씨는 체포 후에도 화제가 됐다. 바로 다음과 같은 절도 다섯가지 원칙 때문이었다. 첫째, 나라 망신을 주지 않기 위해서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겠다. 둘째, 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판검사 집은 들어갔더라도 그냥 나오겠다. 셋째, 연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넷째, 가난한 사람 돈은 훔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서 사용한다. 


조세형의 검거는 당대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조씨에게서 압수된 현금이나 수표, 귀금속 등을 도난당했다는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난당한 금품 회수보다도 ‘탐관오리’나 ‘졸부’라는 손가락질과 뒤따를 세무조사를 더 두려워서 한 탓이다.

상류층 부패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조세형을 의적이라며 추켜세웠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대중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당시 이해구 치안본부장이 “조세형은 훔친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와준 적은 없다. 술집 등에서 호스티스들에게 돈을 마구 뿌려 횡재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발표했다.

조세형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나눠줬는지는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거의 없다.

최중락 전 총경은 “나눠주길 뭘 나눠주나. 자기 먹기도 바쁜데. 내가 보기에는 없었다. 항상 붙들리면 그렇게 얘기했다. 자기 미화하려고…”라고 말했다. 그를 옹호했던 한 법조인도 “그가 일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정상참작을 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며 “‘도둑질 했지만 베풀어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70~80년 부유층 털어 유명
신앙 등 제2의 삶도 공염불


조세형의 전력도 기부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도둑질을 하면 여성과 함께 호화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1982년 검거 직전엔 부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파리 클럽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출소한 조세형은 보안업체서 수당을 받으면서 자문위원 일도 하고 대학 강의도 했다. 교회서 간증 요청을 받아서 신앙 활동하기도 하고 또 선교 단체 설립한 후에 사회사업도 시작하면서 개과천선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전과자들을 종교로 인도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활동도 하면서 절도와는 연을 끊는 듯 했다. 하지만 조세형은 선교활동을 떠난 일본 도쿄 시부야 주택가서 빈집 세 곳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징역 3년6개월형 선고를 받는다. 조세형은 수형 생활을 모범적으로 해 감형을 받았고, 2004년 3월에 다시 출소했다. 2005년 서울에 있는 한 치과의사 집에 들어가서 금품을 훔쳐 징역 3년 선고받았다. 2008년 출소하고 2년이 지난 2010년에도 장물 사건과 관련해 또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에는 70대의 나이에 노루발못뽑이 등을 이용해 강남 고급 빌라를 털다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출소 5개월 만인 2015년 용산의 고급 빌라서 재차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진짜 여든까지
다시 도둑질

손수호 변호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조세형 본인이 의적이었다면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경찰이나 법원이 공식적으로 대도나 의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며 “대도, 소도 둘 다 없으며 오로지 절도만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자발찌 무용론 “길게 채우면 효과 없다”

재범 우려가 있는 범죄자 신체에 5년 넘게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경우 재범률이 오히려 올라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으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을 약 90% 떨어뜨렸다고 발표한 내용과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장기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으로 파악되면서 보다 정교한 정부의 감독과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형사정책학회의 학술지 ‘형사정책’에 실린 ‘전자장치 부착제도의 효과성에 대한 재검토’ 논문에 따르면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기간을 선고받은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선고기간이 1년 이상 5년 미만인 경우 2531명 중 123명(4.9%)이 재범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5년 이상 10년 미만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는 1682명 중 183명(10.9%)이 재범을 저질러, 재범률이 1∼5년 부착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 10년 이상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도 1028명 중 71명(6.9%)이 재범을 저질렀다.

5년 이상 부착자들의 경우, 분석 대상인 전체 8430명 중 378명(4.48%)인 재범률 전체 평균을 앞지른 만큼 논문은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역효과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착 선고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재범률은 3189명 중 1명(0.03%)에 불과했다.

논문은 1년 미만 전자장치 부착기간 선고가 주로 재범 위험성이 약한 가석방(가출소, 가종료 포함) 범죄자에 집중됐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5년 이상 채우면 재범률 증가
1~5년 부착에 비해 2배 이상

따라서 해당 논문은 전자발찌 제도에 대해 “‘단기 충격요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논문은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 전인 2004∼2008년 14.1%에 달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이 제도 시행 후 2009∼2017년 1.9%까지 떨어졌다며 내세운 운영 성과 발표에 실증적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논문은 전자감독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성폭력·살인·강도 등 범죄자 8430명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에 따른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다.

전자감독제도 도입 당시 최대 5년이었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은 지금까지 4차례 개정을 거쳐 가중처벌을 적용할 시 45년 상한으로 늘었다. 

강민구 변호사는 논문서 “전자감독제도 제정법대로 5년 범위에서 재범 위험성에 따른 전자장치 부착기간을 선고해야 한다”며 “전자장치를 단기 충격요법으로 사용해 줄어든 관리인력으로 1대1 전담 보호 관찰관제도를 확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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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